그가 명절에 했던 전화들도 그녀 몰래 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안부를 묻는 의례적인 대화를 통해 '나와 인연을 이어가고 싶단' 은연중의 속내를 알았다. 용산에서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내가 그를 생각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솔직해야 할 것 같았고, '나는 이제 연락 못할 거 같아'라고 하자 그는 이유를 물었다. '네가 좋아져서 안 되겠다'라고 하자 '그럼 연락을 안 해야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도 내가 좋다고 했다. 내가 '네가 점점 더 좋아지면 어떻게 해?'라고 하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명절에 걸려오고 했던 그의 연락이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게 하는 전화임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대체재가 되기도 싫었다. 그가 그녀를 만나면 '(연락 기록에서) 지워져야 하는 나'도 싫었다.
그는 그러고 나서 2주 뒤쯤 전화를 했다. 그는 그녀와 헤어지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더니 손목을 그었다고 했다. 그녀를 데리고 응급실에 다녀온 그는 지친 거 같았다. 그를 묶어두고 싶어 자신을 해함으로써 그를 잡으려 했던 그녀와, 해결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 곁에 남아있는 그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날 미치게 만들었다. 그건 내 손을 떠난 문제였다.
그는 부모님께 그녈 소개했지만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을 했다. 그녀에 대한 확신이 없어도 그녀 옆에 있는 게 사랑이 아님을 그도 알고 그녀도 알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연민이 큰 게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내가 그 상황이라면 그녀와 헤어지고 그녀가 만약 죽더라도 일말의 죄책감 없이 살아갈 테지만, 그는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