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1학기가 끝나고 난 방학에는 보험사에서 일을 했다. 강남의 AIA에서 영업지원직을 하게 되며, 내 인생이 이런 초라한 일로 그칠 까봐 겁이 났다. 설계사들의 겉모습은 그럴듯 했지만, 그건 날개를 활짝 편 공작같았다. 펼친걸 접으면 다들 물밑에서 쉴새없이 발길질 해야 하는 백조였고, 그런 허황된 그들이 가져온 계약 서류들을 정리하는게 내 일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맛있는 식사 같은건 좋았지만, 그런 일을 계속 하면서 지내는 건 원치 않았다. 남들에게 내 직업을 소개할 때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일하던 언니들은 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역시 방학이 끝나자 다시 학교로 복귀했다.
점점 초조해져 갔다. 주변에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올수록, 더욱 촘촘하게 이력서를 보완하고 제출했지만, 어떤 가시적 성과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마케팅 수업을 같이 들었던 선배들은 정유사, 언론사, 증권사 등으로 어느새 착착 취업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쓴 글을 보면 '벌써 12년 1월이 갔다. 불안하다. 들어오는 것 없이 미래에 투자만 하는 것도. 속하여진 데가 없다는 것도. 더 좋아질 수 있을까?' 이런 것들 뿐이다.
과거의 글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는데, 사실 '지금 원하는 건 그때도 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 작가를 꿈꾸고 있지만, 과거에도 '이상문학상에서 심지어 경영학과를 나오고도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고 썼다. 그리고 '학동에 갔는데 해당 건물에는 ELLE사가 있었다'라는 것들도 에디터라는 직업을 꿈꾸었던 적이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도 '남들이 하니까 CPA를 해야겠다.'라며 신촌의 학원가를 전전한 적도 있다. 그건 지금도 반복된다. '좋아보이니까 로스쿨을 가자. PSAT을 공부하자'라는 것들은 20살때부터 지겹도록 반복된 것들이었다.
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욕망은 (결핍된) 대상과 (욕구하는) 주체의 이항관계가 아니다. 욕망은 삼각형이어서, 우리는 대상 자체가 아니라 타인이 욕구하는 것을 욕구한다고 했는데 그게 딱 나였다.
현대차, 신한금융투자, 캠코, 산업은행, 조선일보, 토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200개가 넘는 원서를 넣었지만 졸업할 때 아무데도 취업하지 못했다. 휴학을 해서 적을 남기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졸업을 원했다. 졸업식 날 사진에 박제되어 있는 나는 우울한 표정이다.
졸업하고 남들은 새로운 직장에 속해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2월, 도서관에 쳐박혀 끊임없는 원서지원을 했다. 아무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정규직만 바라보던 눈을 낮춰 인턴에 지원했다. '불합격입니다. 불합격입니다.' 지겹도록 받아온 거절 메일이었는데 한줄기 빛이 들어왔다.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