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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t Aug 06. 2024

집에 가볼래?

브랜드의 명성이나 국적과는 상관없이, 차에 박혀있는 로고만으로 그 사람을 유추해 보는 건 내 습관 중 하나였다. 설령 그런 외제차라고 불리는 것보다 국산차가 효능면에서 더 나을지는 몰라도 문제는 희소성이었다. 그도 그런 희귀성으로 푸조를 선택한 것이었다.


아까 모임자리에서 말을 섞지 못해서인지 그는 물어왔다.

"무슨 일 해요?"

"ODA 업무하고 있어요. 오빤요?"

"대학원에서 AI 하고 있어요"

"와, 멋져요. 저도 회사 그만두고 공부 더 하고 싶어요"

"하면 되죠"

"근데 돈도 벌어야 하고 학비도 당장은 없고.."

라고 말을 얼버무리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돈을 벌지 않고 공부를 해도 되고 (당시) 일반적이지 않은 차를 몰며 혼자 살기엔 꽤 큰 오피스텔에 사는 사람의 여유였다. 항상 내가 끌리는 건 타인의 여유였다. 눈앞의 것에 몰두하며 마치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할 만큼 조급한 태도의 사람을 보면 나는 그 사람을 관찰하면서 더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반대로 어떤 것에도 성급히 움직이지 않는 자세의 사람을 만나면 대개 그 사람이 궁금해졌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울역에 도착했고, 그는 내려주며 핸드폰을 내게 내밀었다. 그의 핸드폰에 내 연락처를 입력하고 나니 그는 말했다.

"잘 가요. 연락할게"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했지만, 그가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와 며칠간의 연락 후 만난 곳은 압구정이었다. 그는 학교와 가까워서 자주 간다며 약속장소를 압구정의 한 바로 정했다. 지도를 찾아보니 씨네드셰프 옆에 있는 가게였다. 가게는 조도가 낮고 테이블 간격이 꽤나 떨어져 있어 독립성을 담보해 주었다.


"얼마 전에 MRI를 찍었는데 비용이 꽤 비싸더라고"라고 그는 말하며 사고가 났었다고 했다.

"지금은 괜찮아요?"라고 묻자 그는 치료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집 이야기를 했다.

"오피스텔이 혼자 살기엔 꽤 괜찮아. 한번 가볼래?"라고 그는 청유형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겐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보통 지인이 얽혀있지 않는 상태로 만난 낯선 남자들은 그런 말들을 던지곤 했다. 우리 집에 갈래? 고양이 있는데. 털끝 하나도 안 건드릴게.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 그 통속성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저 말을 했을까. 그리고 그런 말에 따라간 사람은 몇일까. 결국 나도 그런 말을 하는 상대에 지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들은 가벼운 장소에서 만난 사람에 대한 불신감을 늘리기에 충분했지만, 동호회라든지 펍이 아니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종교를 믿기엔 무신론자였고 봉사활동을 하기엔 세속적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결국 실망하고 집에 갈 각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준수한 외모나 모든 여자들이 쳐다보던 그 순간들이 약간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헤어지면서, '그는 다시는 못 보겠네'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도 연락이 간헐적으로 왔지만, 5시간 후의 답장이나 되물음이 없이 단답으로 이어지는 대화 끝에 그도 결국 연락이 0에 수렴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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