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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ug 09. 2024

고마웠어 그동안

역시나 석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는 함흥차사였다. 지난 경험으로, '왜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을 안 써?'라고 대답하면 대개 상대방은 거리를 두려고 하거나 오히려 도망갔다. 그래서 그런 그를 이해하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 일 때문에 그렇게 연락을 할 수 없었는지, 그 일의 경중과 구체성을 통해 파악했으련만 그때는 '그는 나와 달리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는 사무직과는 시간의 활용성이 현저히 다르다'라고 혼자 판단을 내렸다. 그에게 '날 납득시켜 줘'라고 말하는 건 연인사이에 명확히 요구해야 하는 것이고, 그럴 수 있는 문제였지만 그때는 감히 내가 그에게 요구를 할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는 내게 믿음을 주지 않았지만, 그러지 않아도 내가 믿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아집 혹은 치기이기도 했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 이게 옳지 않은 거라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았다. 그런데 매달리게 될 내가 싫었고, 매달리면 떠난다는 것을 지난 연애를 통해 체득했었다. 이런 내가 너무 초라했다. 아이도 아니고 자꾸만 사랑을 갈구했다. 온전히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고 싶었고 그 사람이 일 때문에 너무 바쁘더라도 나만 봐주었으면 했다.



다음 일요일에 한번 더 그가 우리 집으로 왔고 영화를 봤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상대와는 온전히 상대방의 물음에 단답으로만 답했었는데 그와 있을 땐 내가 질문을 하고 내가 말을 했다. 그가 너무 좋았다. 만날 때마다 키스를 해주는 것도, 꽉 안아주는 것도, 이 세상에 그와 나만이 있는듯한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것도 너무 좋았다. 그런데 연락이 잘 안 됐다. 바빠서라고 했다. 집에 오면 너무 피곤해서 그냥 잠들게 된다고 했다. 이해하려고 했다. 근데 그럴수록 그를 소유하고 싶었고 이해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는 만큼 당신도 날 생각한다면 잠깐이라도 연락을 해야 하잖아.



그는 연애를 4년 동안 안 했다고 했다. 어차피, 나도 짧은 연애만 해왔으니까 동병상련이라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주는 사랑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그만큼의 피드백이 없으니 불안했다. 그 초조함, 을 무엇이라 정의할 순 없다. 나는 그를 사랑하는지 몰랐다. 그렇지만 많이 아꼈다. 일을 하는 중간에도 그를 생각하면 힘이 났다. 연락이 없어도 잘 살고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고, 그와 다음 쉬는 휴일에는 무엇을 해야지 할 것들이 화수분처럼 피어났다. 그런데 그는 그럴 시간이 없었다.



오월 초까지 바쁘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주말, 그러니까 그를 온전히 생각하게 되어서 어떠한 약속도 잡지 않고 금, 토, 일을 보내는 데 나는 죽은 것처럼 잠을 잤다. 온전히 깨어서 연락이 없을 그를 기다리는 게 힘들었다. 잠을 자고 있는데 아는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받지 않았다. 그에게 연락이 왔다.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지금 지방에서 올라갈 것 같은데 외박이 가능하지 않냐며 물었다. 외박 따위. 핑계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잠깐만 보고 싶었다. 그 긴 밤을 섹스로 점철하는 것보다 잠깐 보고 그 애틋함을 느끼는 게 더 좋았다. 그는 서울에 올라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다.



일요일에는 연락을 먼저 안 했다. 아니 애초부터 누가 먼저 연락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연락해도 피곤하다며 잠드는 그였으니. 그런데 밤에 연락이 왔다. 지금 매형을 만나고 집에 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 아니 선약이 있다고는 했다. 내가 묻지 않았지. 그런데 그 순간 참고 있던 눈물이 나오며 그만하자고, 내가 너무 힘들다고 고마웠다고 그랬다. 사실 어제부터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고마웠어 그동안'이라는 일곱 글자를 모바일에 끄적거리며, 그러면 그가 너무 당황스럽고 갑작스러울까 봐 결국엔 쓰지 않았지만. 고민을 많이 했다. 그와 내가 처음 시작할 때 나는 처음 시작하는 게 너무 두렵다고 했다.





일 년 전 만난 학교 선배는 달랑 카톡으로 내게 이별을 고했었고, 너무나 어이가 없고 내팽개쳐진 마음에 답장을 하지도 못했었다. 그때의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많이도 생각했다. 오히려 뒷일을 생각했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자 안도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나의 답장이 언제 오나 며칠이고 일주일이고 기다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는 그도 나도 서로 연락을 안 했다. 그렇지만 너무 많이 힘들었다. 만난 기간은 한 달이 안되었었는데 나는 한 달이 넘어도 힘들었고, 일 년이 지나도 가끔 힘들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를 좋아했던 기간이 사 년에 걸쳐서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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