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항상 이별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차라리 때리는 사람보다 맞는 사람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 흥분했고, 무절제했으며, 너무 감정에 깊이 휩싸여있었다. 그래서 울면서 이별을 고했다. '헤어지자'라는 말은 안 했다. 그런데 그만하자고 했다.
그는 끝까지 미안하다고 했다.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거나 적반하장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처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감동을 받았다. 이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는 사람이구나.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갔고 급속도로 끌렸었다. 그렇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쉽게 했다.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너무 많이 했고, 결국엔 그 말이 의미가 없어졌다.
'미안해'
다시 '미안해'
그래서 나는 슬펐다. 이 사람은 앞으로도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되겠구나.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결국엔 마음속 깊은 곳에 응어리가 남겠구나.
그만하자고 했을 때. 절대 쉽게 한 말이 아니었다. 유리가 깨져서 다시 붙이면 절대 첫 모습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러면 너무 쉽게 다시 깨질 걸 아니까 그 말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해야지 했었다. 근데 난 참을 수가 없었다. 날 외롭게 만드는 그를, 자꾸 미안하다고 하는 그를, 너무나 쉽게 내 뇌리를 잠식한 그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말보로를 피우면 자꾸만 그를 생각하게 된다. 담배를 끊는 것과 함께 그를 보내기로 집에 올 때까지만 해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안 됐다. 난 다시 담배를 샀고 술을 마셨고, 다시 나를 혹사시키면서 내 마음속도 그로 인해 혼돈이 되었다. 항상 나를 사랑하는 법보다 아프게 하는 방법을 먼저 알았다. 아프게 하는 게 사랑하는 건 줄 알고. 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망가뜨리고.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픔을 받는 게 사랑인 줄 알고 더 파국으로 치닫고 더 나를 잃으려고 하고. 그래서 그는 결국 떠났다.
그의 연락처를 지웠다.
그의 연락처를 핸드폰에 입력을 했다가, 전화까지 걸려고 했다가 그 손을 멈췄다.
내가 상처를 받지 않으려면 그래야 하는 것이다. 친구는 차라리 지금 끝낸 게 다행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마음이 자꾸 아프다. 눈물이 난다. 사무실에 있을 때조차 눈물이 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만일 눈물이 난다면, 눈이 건조해서 엄청 건조했다 갑자기 눈물이 나기도 하고 그래요,라는 변명거리를 생각한다. 그렇게 울음이 나오려 할 때 전화가 온다면 상대방에게 약간 물기가 있는 말을 내뱉고는, 그래 상대방이 내가 울고 있는지 비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비염으로 방심했으면 한다.
그래서 연락을 하지 않겠다. 이렇게라도 써놓지 않으면 난 또 순간의 감정에 의해 전화를 걸고, 그가 전화를 받지 않는 것에 상심하여 또 기다리고.. 기다리고.. 이게 만약 동성 친구라면 전화 한번 안 받는 거 전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