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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t Aug 05. 2024

데려다 줄게요

 석을 처음 만난 건 이태원의 VENUE였다. 어두운 공간이었고 레드 조명이 드문드문 있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항상 미칠 거 같거나 황폐할 때는 그곳에 갔다. 난 삶의 무의미함에 짓눌려 있었다. 베이스를 울리는 음악이 들렸다. 시선이 가닿는 곳에 그는 작은 얼굴에 균형 잡힌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친구 2명과 이야기 중이었는데 그리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던지 계속 나를 응시했다. 나는 핏되는 흰색 상의에 아이스색의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스틸레토힐은 필수였다. 우린 서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아이컨택을 5초간 했지만 그 시간은 1분처럼 느껴졌다. 그는 내게 다가왔다.


"술 한잔 하실래요?"


나는 그와 술을 마셨다. 같이 간 언니는 함께 놀다가 집에 갔다. 그는 내게 몸을 밀착시켜 왔다.


"데려다줄까" 그가 말했다.


그의 차에 갔다. 그의 차는 지바겐이었다.


"그냥 택시 타고 갈게"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은 그의 주차된 차로 가는 골목 골목길에서의 포옹과 스킨십으로 점철됐다. 왜인지 길은 자꾸만 돌아가는 것 같았고 구석진 곳은 계속 나타났다. 그는 마구 나를 탐했지만 누군가의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이 기꺼웠다. 타인이 가진 돈, 혹은 차 이런 것들은 '그런 것들을 가졌지만 외모가 결핍된 사람'을 만나고 나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여겨졌다. 결국 지난 연애로부터 배운 건 나는 껍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예전 Between the bars에서 만난 ryan는 세련된 외모를 갖고 있었다. 처음 모임에 나갔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여성들 사이에 그는 앉아 있었고, 그녀들이 그에게 추파를 보내는 게 나에게까지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런 게 보일수록, 나는 ryan에게 더욱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에게 찬탄의 눈빛을 보내면, 그는 '그를 찬양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날 인지할 것이었다. 그날은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삶을 이야기하고 디자인을 이야기하며 예술을 이야기했다. 그런 자리에서의 자기 고양이라든지 아는 척을 발견할 때마다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 있는 내가 경멸스러웠지만, 내 작은 방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그게 낫다고 위안했다.


꼿꼿할 정도로 허리를 세우고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경청하거나 웃는 나를 ryan은 가끔씩 봤다. 그의 시선이 느껴지면 승리감 또는 쾌감이 느껴졌다. '그 자리의 모든 여성이 관심을 갖고 있는 그가 바라보는 건 나야'라는 자만이 고개를 쳐들 때마다 나는 더욱더 대화에 집중하고 속하려고 노력했다.


"무슨 음악 좋아해요?"

"캐스커 좋아해요"

"아, 이준오 씨가 속해있는 그룹이죠. 융진 씨 보컬이 독특하고요"

라는 대화를 나누며, 대중적인 음악을 듣지 않는 걸로 '탑 100을 듣는 자와 나를 구별 짓기'하면서 인디음악을 듣는 자들끼리의 폐쇄성으로 타인의 취향과 내 취향은 연결됐다. 결국 사람들이 페라리를 모는 것도 '난 너와 달라'라는 배타성이다. 그리고 그런 배타성을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그 폭발력은 배가 된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람들은 모엣을 마시거나 얼마간을 웃었다. 주종은 회식자리에서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아닌 걸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런 분위기 속에 사람들은 기분 좋게 취해갔다. 적당히 취해가는 가벼움과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주말밤을 소모하고 있다는 감정들이 얽혀 고조되어 갔다.


사람들이 점차 나이브해가는 것이 느껴질 무렵,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요'라며 가방을 챙겼다. 그러자 ryan은 같이 일어났다.


"데려다 줄게요"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데 여성 무리 중의 한 명인, 그를 아까부터 바라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여자가 말했다.

"그럼 저도 같이 데려다주세요"

라고 그녀가 말했지만 그는 그녀를 향해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내게 다시 말했다.

"데려다 줄게요."

라고 말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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