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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t Aug 20. 2024

마지막 통화를 끝내던 날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란 걸 알았다



 하루가 지날 때는 그리웠고 둘째 날이 되었을 땐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셋째 날이 되던 때는 이렇게 다시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사이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이주가 지났다. 다시 그를 잊기 위해 그곳에 갔고 혹시나 했지만 그는 없었다. 즐거운 척했다. 즐거운 척하면 잠깐이라도 즐거워지는 것 같았다. 계속 장소를 옮겼다. 미치도록 춤을 추고 나면 그 순간만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과장되게 웃고, 술을 마시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춤을 추고 시답지도 않은 말을 하고 그러곤 또 다른 곳에 가서 몸을 움직였다. 그러지라도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뇌리가 그 사람으로 물들어 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렇게 생각이 안나도 되나 하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완전히 잊은 게 아니었다. 생각이 안나는 순간이 되면 왜 생각을 안 하지 나는 그 사람 때문에 더 힘들어하고 더 아파야 하는데 왜 아니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더 아픈 게 억울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아무렇지 않으면 섭섭할 것만 같았다. 그 짧은 시간 어쩌자고 이렇게 마음을 다 줘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까지 하는지 원망스러웠다. 또다시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를 잊기 위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웃음을 웃고 술을 먹고 키스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그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영화를 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책의 활자에서 벗어나 자꾸만 생각으로 돌아갔고 영화를 봐도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엔 다시 그 생각이 났다. 뇌에 벌레를 집어넣어 그 벌레가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는 것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뇌리를 다 헤집어 그 망할 벌레를 꺼내어 갈기갈기 찢어놓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무력하게 그 벌레가 시간이 지나 지금보다 더욱 커졌다가 삶을 살고 결국 때가 되어 죽어버리는 순간이 되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집에 있다간 정말 어떠한 것도 할 수 없어서 밖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고, 또 어리석게도 그가 가진 것에 욕심을 가졌고 그래서 내가 그에게 호감을 느껴서 포옹을 하는지 아니면 포옹을 해서 그 사람이 좋아지는 건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집에 왔다.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와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함은 그러면 당신을 잊을 수 있을 테니 하며 의식적으로 새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돌리려고 하고 대화를 하려 했다. 이렇게 해서 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계속해서 내 마음이 당신에게 간다. 이런 식이라면 당신을 잊을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내 마음을 다 가진 그의 존재가 나중에는 오십 퍼센트로 나중에는 오 퍼센트로 줄어들 줄 알았는데 여전히 전화를 하고 만지고 싶고 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피웠던 담배를 폈고, 그러면 또다시 당신 생각이 났고 그럴 때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배가 고파서 밥을 먹고 또 식욕이 채워지면 당신 생각, 그래서 생각을 안 하려고 음악을 들으면 당신 생각, 내일 퇴근을 해야 하니 잠을 자려고 하면 당신 생각 이건 도대체가 끝이 없다. 당신 조건이 별로라 당신 만나면서도 더 좋은 사람 만나려고 노력했었다. 근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냥 당신이 좋았던 건데 그래서 지금 더 똑똑하고 잘난 사람 만나도 그게 채워지지 않는데 얼마나 내가 오만했는지를 지금 깨달았다.


다시 연락 주지 않을 거라는 거 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너덜너덜 찢어지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어느 누구한테도 연락을 하지 못한다. 결국엔 똑같다. 다른 사람에게 외로움을 해소하려 해도 그 순간이 오면 결국엔 다시 원점이다. 물고기가 계속해서 어항을 돌아다니지만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런 상태다.


너무 슬픈데 이제 눈물은 나지 않는다. 처음엔 그만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졌다가, 이젠 마음만 너무 아프다가, 이젠 마음은 아픈데 눈물은 안 났다. 당장이라도 당신에게 달려가고 싶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도 다 필요 없다. 회사는 아프다고 하면 되고 가족은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면 된다. 어느새 모든 것에 당신이 일 순위가 되어버렸다.


처음에 시작할 땐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다. 당신에게 용기내고 싶은데 당신이 받아주지 않을게 너무 뻔해서 무섭다. 너무나 냉정하게 뿌리칠 거 아니까 하기가 겁이 난다. 그러면 당신을 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빨리 잊을 순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방어기제가 작용해서 그렇게 하기가 싫다. 그냥 처음에 내게 스며들었던 것처럼 다시금 그렇게 해달라고 말한다.


'내가 더 잘하겠다고, 노력한다고, 다시 투정하지 않겠다고,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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