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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Aug 31. 2024

epilogue




아직도 석을 많이 생각한다. 첫사랑처럼 안되고자 이렇게 했던 건데 결국 똑같다는 것을 생각한다. 매일 긴 퇴근 시간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그랬다. 내가 당신을 더 많이 좋아해서 관계의 국면을 다르게 하고자 취한 행동이 끝이 되었다. 절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우린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며 살아질 것이다. 아이를 좋아하던 당신은 당신 닮은 개구쟁이 아들을 낳아 축구를 함께 해주며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하던 사업이 잘되어 티브이에도 나올지도 모른다. 우린 아주 가끔 서로를 생각하게 될까.



이태원의 이번 출구를 보면. 그 간판을 보면. 우리가 함께 있던 바에 가면. 당신이 쓰고 있던 예쁜 안경을 보면. 혹은 suv를 보면. 혹은 네비에 찍혀있던 우리 집 주소를 보면.



너도 다 지웠을까. 그 카톡의 대화들도. 우리 집 근처에서 밥을 먹었던 그 장소도 기억에서 다 지워버렸을까. 너무나 쉽게, 결국 스쳐가는 사람이었다며 잊고야 말았을까. 난 아직도 많은 시간 당신 생각으로 뇌리가 가득 차고야 마는데 당신은 나같이 집에 가는 길에 내가 아예 생각이 안 날까. 마음만 주지 않으면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제 몸으로나마 당신을 붙잡고 싶은 내 맘을 알까. 너도 그럴까. 내게 혹여나 연락하고 싶은데 그럼 내가 너무 실망할걸 아니까 연락처도 지웠을까. 연락처를 외울 사이까지 진전되지 않았지만 벌써 지우고자 하는 순간 당신이 정말 소멸해 버릴 것만 같아서 그 번호를 외워버리고야 말았다.



정말 다시 연락하면 우린 다시 외로울 때 서로를 찾아 탐하고 갈구하겠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넌 네 삶이 너무 중하고 또다시 미안하단 말을 할 것이고, 난 기대를 버리려 노력하겠지만 버려지지 않아 또 울 것이다. 이 뫼비우스의 띠를 나의 의지로 뜯어버렸는데 그걸 다시 붙이려고 붙이려 노력하는 날 자주 마주한다.



난 당신을 그리워하는 걸까 당신을 그리워하는 나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걸까.


난 아픈 걸까 아님 날 아프게 하고 싶은 것일까. 어느새 아픔을 인내하고 참는 게 사랑인 줄 인식하고 자꾸만 그 상태로 되돌아가고만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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