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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Dec 04. 2024

쓰는 이유

한동안 모니터를 바라봐도 한 글자도 써지지 않았던 건 기차 안과 같이 도착해야 하는 곳이 있고 도착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을 때 그 효율이 올라갔다. 내게 여행은 그런 의미로 존재한다. 새롭게 창조하기 위한 발판으로서 말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가면 기억 속 매몰되어 있던 것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고 그런 게 반응이 좋은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출장으로 광주에 간 적이었다. 단지 장소를 참관하면 되는 것이어서 부담이 적고 다음날 주말이라는 해방감도 있었다. 그래서 가방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어 쓰기 시작했다. 쓰고 싶은 주제도 한 개가 아닌 중구난방으로 대여섯 개가 생각나서 주제를 각각 써놓고 내용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안 써질 때는 죽도록 안 써지던 것이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미친 듯이 타자를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감각은 시공간을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가령 회사에서의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있을 때마다 상사가 화장실을 가려면 지나쳐야만 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항상 그의 인기척을 느껴야 한다. 자그마한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는 그런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인 데다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직원들의 대화 등이 뭔가에 미치기에는 불가능한 장소인 것이다.


하지만 나를 아무도 알지 못하고 내 생활반경과 다른 곳에서의 나는 온전히 '글을 쓰는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기차에서 글을 쓰는데 써야 할 내용이 너무 많고 손이 그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이며, 그 순간에는 나 외의 같은 기차칸을 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블러 처리될 정도로 내가 외따로 있는 느낌인 것이다. 거대한 우주 속에 극히 미미한 나의 존재가 별처럼 그 존재감을 확연히 내뿜고 있는 것이다. 그 명확함이 좋아 나는 오늘도 그런 순간을 기다린다. 그 독자성과 살아있다는 느낌이 나를 계속 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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