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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Dec 15. 2024

사직서 대신 출장명령

일주일 중 가장 부담스러운 월요일이었다. 보통 월요일 오전은 간부회의가 있고 레임덕이라 요샌 별 이슈도 없다. 하지만 굳이 집합해서 전달회의를 했다. 내용인즉슨 구내식당식권을 누가 잔돈을 돈이나 라면으로 달라고 했단 거였다. 식권은 쓰지 않으면 소멸되고 장당 오천원인 식권에 2천원을 더하면 특식을 먹을 수 있다. 그래서 식권 2장을 내면서 삼천원이 남으니 그걸 달라고 해서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이해는 간다. 직원 입장에선 안쓰면 손해니 한장이라도 더 쓰고 싶은것이고 사측에서는 안쓴건 총인건비에 포함된다고 하지만 결국 소통하라는 뜻으로 마련된 식권은 누구도 팀과 먹고싶어하지 않아 대부분이 반납될 상황이다. 나도 내가 안그랬으니 그렇지 그렇게 거스름돈 달라고 한 사람은 얼마나 쪽팔릴것인가. 원래 진상은 본인이 진상인걸 모른다. 하지만 누가 점심때 그 내용을 말하길래 '그러게요' 대충 맞장구 쳐주고 말았다. 누가 어땠다는 말을 듣기 싫다. 하지만 그런 말이 아니곤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라 예전부터 회사에선 입을 닫았다.


사람들은 나보고 다 말이 없다고 하지만 관심있는 분야에선 누구보다 수다쟁이다. 꿈에 대해서라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넘치도록 말할수 있지만 회사에선 말을 안하는 것 뿐이다. 예전에 지나가듯 말한게 다음날 사내에 소문이 나있는걸 보고 회사에선 누구도 믿을 수 없단걸 배웠다. 이런 내게 회사는 월급 외에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래서 요샌 회사에 없다. 교육이다 출장이다 건수만 잡아서 외부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장을 올렸더니 모레 회의 건으로 심기가 예민해진 상사는 시비를 걸었다. '이거 꼭 가야하는거야?' 이럴때만 성과 직위를 붙여 부르는 그에게 한박자 늦게 대답하고 자리로 가니 '이게 무슨 내용인데'라고 묻길래 얼마전 기안 올린 건이라 말했다. 데이터표준 포럼이었는데 사실 나조차도 안가도 되는 출장이란걸 안다. 하지만 '그'조차도 회사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서 직원이 일안하는 꼴은 죽어도 보기 싫은 모양이었다. '내용이 뭔데'라고 재차 물어서 '중장기발전방향 들으러 갑니다'라고 했더니 '그럼 회의내용 자세히 써서 결과보고해'라고 한다.


예전부터 누군가의 지시를 듣는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주도적인 스타일이기도 한데 회사를 들어오며 그런 특성은 다 무디어졌다. 시어머니가 한둘이 아니고 보스 위엔 그 위가 있고 이해관계자가 많이 얽혀있는 상황에서 난 영 힘을 못쓰는 스타일이란걸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다. 사람은 누구도 설득당하고 싶지 않아하며 설득을 혹여 당한다고 한들 그건 '친한 관계'에서 용인되는 것인데 나는 그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았다. 누구는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죠'라고 상사에게 말했지만 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런 말을 절대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사직서 대신 출장명령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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