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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by 강아

오랜만에 회사사람과 점심을 같이했다. 그녀의 집에 초대받아서 집밥을 먹고 인사시즌이어서 희망부서 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작년에 희망팀으로 옮겨준다고 했다가 전날에 빠그라져서 스테이가 됐다. 퇴근하면 피아노에 필라테스까지 바쁘게 살고 있었다.


나도 루틴은 같다. 요가에 피아노. 최근엔 회사를 그만두면 뭐 하고 먹고살 수 있을까를 주로 생각하는데, 마침 물어봐서 피아노 석사해서 학원 차리고 싶다고 했더니 그녀도 그렇다고 했다. 식사 후에 케이크를 마련해 주는 것도 감동이었다. 친해질 때 이런 걸 생각하고 한 게 아닌데 받으니까 너무 고마웠다.


회사로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고 들어가서는 기분이 안 좋아졌다. 상위가 시킨 일이 있었는데 상사는 어제 출장이었다. 자료를 보내고 전화하라는 말을 했으나 오늘 아침에는 왜 (본인에게) 전화 안 했냐고 한다. 나는 상위에 전화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왜 메일 수신확인으로 확인할 수 있는걸 굳이 전화를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확인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상대가 어련히 물어보련만 항상 그런 식이다.


'여긴 왜 모집단보다 개수가 많아?'

'구분이 30% 이상인 개수이기 때문입니다. 30+30% 하면 개수가 중복되어 모집단개수보다 많게 나옵니다.'


그는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었다. '왜 a+b+c+d를 합한 게 70%가 넘는 것이 아닌 각각(a, b, c, d)가 70% 넘는 걸로 소팅되어 있지?'

'법인은 주 사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설명했지만 그는 합계가 70%가 넘는 수치를 뽑아내길 원했다.


그는 결국 상위에게 전화를 했고 상위는 (내가 보낸 자료로) 알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사가 틀린 게 되니 본인의 의견대로 다시 수치를 뽑아내라고 내게 시킨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일을 두 번 해야 하는 게 견딜 수가 없다. 참고 참고 또 참아왔다. 근데 회사 외적인 업무에서 자기 효능감을 얻을수록 이 조직에 속한 내가 환멸이 들어 미치겠다. '삶은 한정되어 있고 아까운 시간을 버리고 있는 거야' 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동료 집에 다녀오니 지금의 내 집과 같이 큰 집도 필요 없고 혼자살만 한 적당한 공간에 고립되어 일하고 싶었다. 외로움이란 걸 이젠 잘 견딜 수 있으니까. 과거에서 벗어나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십 년 전에 했으면 달라질 수도 있었던 삶의 방향, 차라리 부모와 의절을 하더라도 그때 퇴사를 하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동아리에서 알바를 하더라도 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를 유지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아 지금의 안정적인 주거지와 사회적 신분이 주어졌지만 나는 이걸 가치 있게 느끼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와 같은 집과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면 나는 하나도 부럽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그가 가진 특출성에 기반했었다. 지금도 과거에 하지 못한 것 때문에 아쉬움을 갖는다면 지금 당장 그만둬도 아쉽지 않지 않나? 나는 왜 똑같은 생각을 십 년째하고 있는 건가. 그동안에 겪어온 불합리함을 겪어오며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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