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집청소를 하지 못하다가 월요일이 되어서야 청소를 했다. 그러고 보면 주말에 청소를 안 한 게 꽤나 오랜만이다. 평소에는 뭘 하다가도 바닥의 머리카락이 보이고 먹고 난 컵은 순식간에 쌓이기 때문에 한 시간마다 왔다 갔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힘도 없을 만큼 에너지가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배달 음식 안 먹고 장을 보고 온 것은 꽤나 칭찬할 만하다.
출근했더니 오늘까지로 보내오기로 한 자료가 메일로 와 있었다. 당장 봤어야 하지만 왠지 늦장을 부리게 됐다. 수치확인을 작년 업체가 제대로 해오지 않아 노가다로 검수를 했고 올해도 그간 경험으로 완전히 업체를 믿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윽박지르기와 어르기도 여러 번, 이 정도면 안 틀려서 와야 했다. 다른 용역과제도 마무리단계여서 관련자료를 보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써야 할 계획서가 있어 밥 먹을 시간도 아까웠다. 나는 엄청난 미식가이지만 목표가 생기면 식사는 빠르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걸로 먹으며 일하거나 순식간에 먹고 일하는 편이다.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나 완수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픽업주문을 해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에 1분도 소요할 수 없다는 듯이 포장해서 나왔고 집에 와서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음식을 폈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마감은 내일까지였고 회사에서도 쓸 수야 있었지만 보안시스템이 마음에 걸려서 점심에 쓰고 퇴근해서 쓰기로 했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막힘없이 써졌다. 무한정 시간이 있을 때와는 달랐다. 심지어 너무 잘 써지는데 점심시간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이제 회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페이지는 아직 몇 장이 남아있었지만 중간저장을 하고 역시 엘리베이터를 미리 불러놓은 다음 현관문을 나섬과 동시에 타고 내려왔다.
하지만 회사로 와서는 다시 나태해지는 나였다. 분명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문서를 보다가도 집중력이 흩어졌고 그건 내일 해도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같은 하루 안에서도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 다르게 흘러가는 걸 경험할 수 있다니 생경했다. 경쟁심과 욕심이 많은 나는 학창 시절에도 누가 나보다 회독을 많이 할까 새벽까지 안 자고 잠을 줄이면서 공부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회사에서의 내 모습을 보면 왜 이리 안일해졌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퍽 꼴 보기 싫었다. 분명 어릴 때 고통스러웠지만 그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상황으로 가고 싶은 게 아닌 그때의 내 모습을 찾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