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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인생이 담긴 것

by 강아

명절에는 더 이상 할머니집에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삼촌 집에서 친척들이 만나기로 했다. 천안은 세종에서 가까워서 가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항상 친가를 갈 때의 부담스러운 마음과는 정반대였던 외가행이었기에, 명절 당일에도 기분 좋게 운전대를 잡았다.


그날은 눈이 많이 왔다. 이례적인 폭설로 가는 길에 눈이 바퀴에 밟히는 느낌이 날 정도였다. 차를 가져간다고 하니 어머니는 걱정했지만 '녹을 텐데 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갔다.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으면 가는 길도 행복해진다. 멀게 느껴지지도 않고 정말 부담이 없었다.


가는 도중 친척동생에게 '언니 오고 있어?'라는 연락이 왔고 '거의 다 도착해'란 말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도착했다. 가니 음식 준비로 분주한 숙모들과 티브이를 보고 있는 삼촌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명절에 친가에 오라는 아버지 말은 귓등으로 들으며 외가 행사는 필수로 참석하는 나다.




그날은 분위기로 봐서 중대 발표가 있는 날인 것 같았다. 할머니는 비장한 각오를 다진 사람처럼 식사를 마친 후에 자식들을 불러 모았다. 아들 둘과 딸 셋이었다. 삼촌이 사회를 맡았다.


'이여사가 유산을 상속하려 합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허리춤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기 시작했다.


'자식들은 한 명씩 나와서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건 할머니가 땅을 팔아 마련한 전재산이라 했다. 그렇다 해도 눈이 휘둥그래하게 많은 액수의 돈도 아니었다. 그건 할머니의 피땀이 어린 돈이었다. 사람들이 명품을 사는데 한 번에 쓸 수도 있는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인생이 녹아있는 돈. 그런 돈을 자식들은 차례로 받아가며 거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을 갈아가며 자식을 장성시킨 어머니가 마지막에도 그걸 자식에게 나눠준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고마워 엄마'라고 대답하며 무거워진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돈은 할머니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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