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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곰 Oct 07. 2021

산에 올라 서울을 보다

아차산

"우리 산에 한 번 가볼까? 대신 처음이니까 조금 덜 힘든 산으로 가보자."

"그래. 서울에 그렇게 힘들지 않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이 하나 있어."


짝꿍이 얼마 전 산에 한 번 가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산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매력을 잘 모르고, 등산을 꺼려하던 짝꿍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산에 갔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면서 산에 한 번 가보고 싶어진 것이다. 짝꿍이 이야기를 꺼냈고, 산을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등산이 처음인 짝꿍을 위해 나는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는 아차산을 선택했다. 



아차산은 내가 이미 몇 번 가본 곳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올라가야 하는지, 산의 모습이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차산을 선택한 이유는 코스가 별로 힘들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아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이 계속 생각날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차산에 처음 올랐을 때 그곳에서 노을을 보게 되었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그 붉은 빛줄기가 산 아래 주택가로 퍼져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었다. 한시도 자리를 뜰 수가 없을만큼 그 모습이 아름다웠고 기억에 깊게 박혔다. 


이번에는 그 기억을 짝꿍과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짝꿍이 산에 가자고 했을 때부터 내 마음 속에는 아차산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날씨가 너무도 화창했던 어느 주말, 우리는 아차산에 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아차산의 모습을 짝꿍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오후 느지막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니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숲 사이사이라 시원한 바람이 우리의 땀을 식혀주었다. 



예상대로 아차산을 오르는데 짝꿍은 별로 힘들어하지 않았다. 한걸음 한걸음 산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리고 얼마 후 고구려정에 도착했다. 아차산 중턱에 있는 고구려정은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보기 정말 좋은 곳이다. 등산로 입구부터 고구려정까지 약 20~30분 정도만 오르면 될 정도로 거리고 그렇게 멀지 않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고구려정에서 쉬었다 가기로 결정한 이유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 때문이었다. 내가 아차산에 처음 왔을 때처럼 짝꿍도 이곳을 쉽사리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고구려정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그만큼 아름다우면서도,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이다. 더욱이 고구려정 앞에는 쉬었다 가고 싶은 등산객들이 앉을 수 있는 널찍한 바위가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그곳에 앉아서 서울을 바라보았고 잠시 목을 축였다. 



얼마나 쉬었을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차산에서의 노을은 고구려정에서 바라봤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말로 짝꿍을 사로잡은 후 조금 더 오르기 시작했다. 10분도 채 더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생각했던 그 장소에 도착했다. 고구려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나무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장소가 있는데, 그곳이 내가 아차산을 기억하는 장소이다. 


이 전망대에는 고구려정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서울을 바라볼 수 있다. 고구려정에서는 나무와 산에 가려서 해가 넘어가는 방향까지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남산과 해가 넘어가는 방향이 모두 보였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 해는 이미 붉은 빛이 물들어 있었고,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었다. 짝꿍이 나와 같은 기억을 만들 수 있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맑은 날씨에 감사했다. 



전망대에서 조금씩 붉게 변해가는 하늘과 어둠이 오기 전 마지막으로 밝게 빛나는 거리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데 채 5분이 되기 전에 그 모습이 조금씩 변하는 게 신기했다. 태양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고, 하늘의 색깔은 조금씩 붉어졌다. 이 모습에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인들, 자연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을 꾸며낼 수 있을까. 그저 눈과 머리가 기억할 수 있도록 그 모습을 오롯이 담아낼 뿐이었다. 


짝꿍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다양한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 3년 넘게 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모습의 서울을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직접 경험도 해보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새삼 놀랍다고 했다. 멀리 남산과 서울타워가 보이고, 높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빼곡하고, 산 아래에는 주택가가 밀집되어 있었다. 고개를 양쪽으로 돌리면 한강이 서울을 가로지르고, 북한산, 인왕산 등이 서울의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산보다는 바다가 흔한 도미니카 공화국과, 그리고 도시 안에서 산을 보기가 힘든 영국에서 자란 짝꿍은 서울 어디에서나 산이 보여서 신기하다고 했다. 한국 사람에게 산은 너무도 친숙한 존재라서 그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짝꿍과 같은 외국인들, 특히 유럽에서 온 사람들은 도심 안에 쉽게 갈 수 있는 산이 있다는 사실이 큰 축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짝꿍의 나라에서는 주말에 숙소도 잡고, 여행가는 것처럼 가야하는 곳이 산이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그대로 내려가려다가 조금 더 올라갔다. 위를 올려다 보니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있었고, 그렇게 멀지 않아 보여서 그곳까지만 가보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곳에서는 서울의 반대편이 펼쳐져 있었다. 구리, 하남의 모습과 그 사이를 흐르는 한강의 모습이 꽤 멀리까지 보인다. 그 모습까지 보고 산을 내려왔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산을 내려오고 싶었고, 배도 슬슬 고파졌기 때문이다. 


짝꿍은 한국에서의 첫번째 등산이 꽤나 만족스러웠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다음에 갈만한 산을 스스로 찾아보고 있었다. 다음에는 어떤 산을 가자고 할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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