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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희 Dec 05. 2020

제주 버터모닝 꼭 먹어봐야 할까?

섣부른 판단에 대한 반성

"제주도 왔으니 버터모닝을 꼭 먹어봐야겠어. 그런데..."


 라고 운을 떼면서 누나가 아침 일찍 빵 예약을 하러 가야 하니 운전해서 같이 가 달라고 여행 가기 전부터 부탁했다. 얼마나 대단한 빵이길래 새벽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예약하고 또 4~6시간 뒤에 다시 찾으러 가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제주도에도 빵 파는 곳 많은데 다른 빵집에서 사면 안돼?"


라고 완강한 거부 의사를 밝히다가 끊임없는 부탁에 더 이상 모르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버터모닝을 마주하게 되었다.


 제주 여행의 반이 지나갈 무렵 누나와 매형 그리고 귀여운 조카도 함께 제주도로 여행 왔다. 조카네와의 첫날은 제주 시내의 같은 호텔, 각자의 방을 따로 잡았고 이후 3일은 한림읍의 바닷가 쪽 숙소를 잡았다. 아침과 낮에는 각자 일정에 맞춰 여행하고 오후에 돌아와 같이 저녁을 먹고 이야기 나누며 휴식했다.


버터모닝 펜 드로잉 (2020. 12)




 버터모닝이라고 불리는 실제 빵 메뉴 이름은 '버터 우유 식빵'이다. 버터모닝을 마주하는 날,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아 알람 소리에 깼다. 간단히 준비하고 6시 20분경에 누나와 함께 버터모닝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차로 약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새벽 공기는 상쾌하면서도 쌀쌀했고 주위는 밤처럼 어두웠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으로 차분히 운전해서 버터모닝에 도착하니 너무 깜깜해서 사람들이 일찍부터는 안 왔구나 싶었다. 그러나 버터모닝 건물 반대편에는 많은 차들이 이미 주차해 있었고 자세히 보니 짙은색의 패딩을 입은 분들이 쪼르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일찍 온 편이라 앞에 10팀 정도뿐이었다.


 기존에는 오전 7시부터 예약을 받지만 많은 사람들이 일찍 오기에 사장님도 6시 40분쯤 출근하셔서 일찍이 손님들을 맞이해주셨다. 이러다 새벽 5시까지  당겨지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버터모닝에서 빵을 예약하는 순간에도 '이렇게까지 일찍 와서 기다려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대기 번호에 맞춰 11시에 받는 것으로 주문 예약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못 잔 잠을 다시 잤다. 기상에서부터 빵 예약까지 치열한 사투에 힘을 다 써버렸다. 그렇게 7시 30분쯤부터 세 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11시 딱 맞춰서 버터모닝에 도착해서 금액을 지불하고 빵을 수령했다. 갓 구워진 빵이라 그런지 가게 안에는 따스하고 달달한 빵 공기가 가득 채워져 기분이 좋아졌다. 차에 돌아오자마자 다 같이 따뜻하고 노릇노릇한 빵을 뜯어서 입으로 직행시켰다.


 다른 말이 필요 없고 환상적인 맛이었다.


제주 버터모닝


 빵 내부에 부드러운 빵과 버터가 환상의 마블링을 이뤄내고 있었고 위의 겉면에는 반짝이는  달콤한 꿀인지 시럽인지 설탕을 녹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달달한 무언가가 잡아줬다. 신기했던 것은 빵 아래에도 약한 갈색의 달콤한 무언가가 녹여져 있었다는 것이다. 빵 내부에는 고소함과 은은하게 소극적인 달콤함이 있다면 겉은 바삭하기도 하며 적극적 달달함으로 조화를 이뤘다. 버터모닝에는 생크림도 함께 주는데, 솔직히 찍어먹지 않아도 정말 맛있었다.


 한 번에 살 때 많이 사뒀기에 다음날 아침에도 먹었다. 식어도 맛있었다. 이미 따끈할 때 먹어봤기 때문에 빵을 보면 알 것 같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맛이다. 마치 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사진으로만 명소를 봐도 좋겠다 싶은데 실제로 여행 가서 보면 그 감동이 더 커지는 것과 비슷하달까.




 빵을 싫어하진 않지만 밥과 빵 중 밥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버터모닝을 맛보기 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예약하고 정해진 시간에 다시 와서 받아간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빵에 대한 애착이 있다면 얘기가 달랐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가 한국에서 하는데, 매일이 한정이라 아침 일찍부터 직접 가서 예약을 해야 한다면 군말 없이 일찍 일어났을 것이다. 혹은 밤을 새웠을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 가치관, 생각들을 기준으로 먹어보지도 않은 빵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빵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길래.'라고 선 넘는 생각을 한 것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잘 모르니깐, 모르기 때문에 판단해 버린 것이 문제였고 빵을 먹은 뒤에는 크게 한방 먹은 느낌이었다. 사람이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구나 라고 다시 한번 배웠다.


 직접 겪어 보지 않고 판단해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얼마 전 집 근처의 한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버터모닝과 비슷하게 생긴 빵을 사서 먹어봤다. 버터모닝의 감동이 너무 커서였을까. 감흥이 덜했다. 제주도가 다시 그리워졌다. 다시 제주도에 여행 간다면 또 버터모닝에 갈 것이다.


버터모닝 수채화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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