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체질인 사람은 없다

모두가 다 아는 메시지이면서도 개인적인 이야기와 팁

by 반도체하는러너

가언이가 새로운 회사에 이직하고 어느덧 9개월이 넘었다고 하더라. 이래저래 윗사람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은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많은 위로를 해주었다. 나도 다음 주면 회사를 다닌 지 딱 만 4년이 된다. 사실 어르신들 입장에서 나도 그냥 애기일 뿐이다. 이제 막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어린애한테 뛰게 하라고 하면 너무나 큰 고통 아닐까... 적어도 나는 윗사람이 저런 기대는 없었던 거 같은데 참 이게 사람마다 다르다고 느껴진다.

왜 모이게 할까?

모일 會(회), 모일 社(사). 회사는 사람이 모여있는 집단이다. 사람과 함께, 사람에 의해, 사람을 위해 돌아가는 조직인만큼 회사에서 중요한 걸 꼽으라고 하면 나는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 셋째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고과 면담을 하면서 우리 부장님도 본인의 속뜻을 내비쳤고 부서원들을 규합하기 위해 본인이 술도 사주고 고기도 사주는 거라고 무척이나(?) 강조하셨다. 이는 나도 십분 공감하는 바이다. 회사가 가진 자본, 기술력(특허나 설비)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결국 이것들도 사람에 의해 창출되는 가치들이다. 어떤 사람이 리더를 하냐에 따라 어중간한 자산을 가지고도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도 있고 어떤 천재적인 사람에 의해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기술이 제시될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리더가 지휘를 하냐에 따라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도 회사의 영업이익이 곤두박질 칠수도, 당장 내 부서원과의 트러블로 회사 생활이 지옥이 될 수도 있다.


대학 4년을 다닌 만큼 회사도 4년을 다녀보니 적어도 사리분별은 할줄 알게되었다. 회사라는 게 일만 잘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고 인간관계도 중요한 거 같다. 사실 앞의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면 사실 잘못된 문장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의 범주 내에 인간관계라는 요소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리가 회사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매일 한자리에 모이는 일을 반복할까? 그 모든 사람들의 에너지와 시간을 합치면 엄청나지만 우린 문제 해결을 하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모인다. 결국 한 사람이 풀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린 모여서 같이 풀어나가야 한다. 나도 예전엔 전공 공부를 미친 듯이 했었고 그게 즐거웠고 늘 흥분되는 일이어서 (물론 지금도 회사에서 미친 듯이 공부한다) 그것이 나의 열정과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밑천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주 큰 오산이었다.

24년 8월 한국나노기술원에서 대학 졸업예정자분들 대상으로 한 강의


내가 인턴을 했던 연구기관, 대학 등에 선배로서 멘토링을 가면서 늘 했던 말은 다음과 같다.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아무리 많이 잘해도 회사 가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늘 핏대를 세워가면서 침이 튀기게 강조한다. 하다못해 아주 단순한 전산조차 합의와 승인을 일일이 받아야 한다. 그래서 일을 진정으로 잘하는 사람은 회사의 가장 큰 asset인 '사람'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다.(그래서 임원들은 실무를 안 하고 조직을 이끄는 사람으로 둔다) 그리고 사람을 잘 쓰려면 소통을 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데 나는 Engineer에게 필요한 소통을 다음 몇 가지로 정의했다 :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 소통을 잘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 친화력이 좋아서 부서 내, 부서 밖에 아는 사람이 많고 본인이 힘을 안 들이고 도움을 요청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② 반도체 지식을 잘 아는 것도 소통이다. 수많은 회의나 table meeting에서 지식이 없으면 대화가 안 통한다. 문제해결을 할 수가 없다.

숫자에 능해야 함. Engineer는 숫자로 얘기해야 한다→ data를 처리하는 tool에 익숙해져야 함. 데이터로 설득을 하는 건 매우 강력하다. 늘 어떤 값으로 얘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신뢰도는 훨씬 올라간다.

학습력(이해력)이 빨라야 한다. 처음에 모를 수는 있다. 계속 배워야 고수들/타 부서/윗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음.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성실성/꼼꼼해야 함.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이 사람과 소통이 된다. 매번 납기를 안 지키거나 이 사람의 결과물이 매번 실수 투성이면 누군가 땜빵해줘야 하고 결국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이럴 때는 거짓 정보를 주는 거보다 그냥 모른다고 하는 게 낫다.

어학을 잘하는 것도 소통의 일종이다. 해외 법인 협업/고객 대응을 잘할 수 있다.

책임감, 집요함, 끈기, 도전. 이런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소통이다. 내가 머리도 안 좋고, 이해도 잘 못하고, 지식도 부족할지언정 어떻게 서든 1인분은 하는 능력. 남들이 다 손 땠을때 집념 하나로 결과물을 들고 오는 사람도 회사에서 인정해 준다. 엉덩이 힘으로 그래도 뭔가 해오는 사람도 문제해결력이 좋고 소통의 노력이 있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들도 있다. (발취만 N번째)

빨라야 함. 메일 보내면 읽지도 않고, 답장도 느리고, 메신저도 늦게 보고, 뭐 시키면 내일 하겠다고 하고 다음 주에 하겠다고 하면 일단 소통의 첫 단추부터가 답답하다. 나같이 성격 급한 사람들은 속 터져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다 완성되지 않더라도 피드백을 해주고, 완성력이 떨어져도 빨리 뭔가 아웃풋을 갖다 주는 사람들을 대게 좋아한다. 슬프지만 5분 대기조처럼 일하는 사람들을 회사에선 좋아한다. 만약 누군가 메일을 보냈는데 안 읽었다면 메신저를 보내보자, 메신저를 안 읽으면 전화를 하고, 전화를 안 받으면 직접 가서 얘기해 보자. (적당한 선에서...)

누군가를 시키는건 참 힘들다... (쉬울리가 없지!)

내게 어떤 task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날밤을 세워가면서 완수했다면 조직에선 그걸 훌륭하다고 평가할까? 그건 아니다. 물론 본인 실력 향상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 일을 해봤던 사람, 그 업무의 담당자, 그 일을 해봤던 사람을 아는 사람을 아는 것, 그 업무의 담당자를 아는 사람을 아는 것, 등 우리에겐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있으면 전화 한 통, 메일 하나로도 쉽게 일을 넘기거나 협력을 요청할 수도 있다.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이 툭툭 던지는 몇 마디에 섞인 관록의 전문지식, 과거에 정리해 왔던 검증된 평가 이력,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퇴근시간을 아껴주는 빠른 일처리까지 우리가 사람을 써서 task를 완수하면 전문성, 신속성, 정확성 이 모든 게 확보된다.


그래서 이렇게 본인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도 윗사람이 주는 task를 다른 곳에 잘 의뢰하거나 자료를 받아오는 사람도 회사에선 높이 평가한다. 내가 이걸 몰랐던 건 아니지만 특히 올해 나는 이런 분과 같이 일하면서 뼈저리게 체감했다.


이분을 유심히 관찰해 보니 배울 점이 몇 가지 있다.



1. 일단 지갑을 많이 연다 ; 커피와 편의점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같이 가서 사주신다.

2. 밥과 술도 많이 먹는다; 이것도 지갑을 여는 것과 비슷한데 퇴근 후의 저녁시간도 투자하는 셈이다.

피곤함과 고통만 있는 밥, 술은 지양하는 게 좋다...

3. 남의 자리와 휴게실도 자주 간다; 자리에 가서 일 관련된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 흔히 말하는 노가리를 까면서 남의 부서 얘기도 듣고 온갖 권모술수와 내란과 계엄에 버금가는 흑막과 처세도 알아온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이름들도 알게 되고 평판이 어떤지 어떤 친목관계가 있는지도 파악한다.

4. 남이 부탁한 것도 웬만해선 다 잘해준다. 이렇게 호의를 베풀면, 본인이 필요로 할 때 give&take가 된다.

5. 남의 험담을 같이 맞장구 쳐줘야 한다면 아주 완곡하게 한다; 누군가 동조를 구하면서 같이 남을 까고자 할 때는 본인의 생각을 직언하지 않고 완곡하게 돌려서 말한다.


물론 회사 사람들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비즈니스적인 관계이고 얕은 관계일 수는 있다.

하지만 회사가 체질인 사람은 없다.

조금이나마 굽혀보고, 양보하고, 참아보고, 기다려보고, 호의도 베풀어보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give and take 아니겠는가?


조직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1. 돈으로 사람을 움직인다. 가장 강력하고 확실하다 (보너스는 좀 주지?) → 돈 벌기 위해 우리 모두가 출근하고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불가능하다

2. 권위로 사람을 움직인다 (상하적 관계, 위계적 질서, 평가자-피평가자의 관계. 계급이 깡패) → 리더가 아닌 사람들은 쓰지 못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걸로도 다스릴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썅마이웨이.

3. 그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사람을 움직인다 ex) 진정성, 동기부여와 명예, 일의 의미와 재미, 결과에 대한 성취감, 타인의 인정, 자존심을 건드린다거나 (넌 그것도 못해? 가스라이팅)...

4.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사람을 움직인다 → Give and Take다

5. 친분의 관계로 사람을 움직인다 → 진짜 친하면 그냥 도와준다. (위스키/한우/방어 아주 특효약)

6. 사랑의 관계로 사람을 움직이다. 가장 진실되었다 → 그냥 다 해준다. (조직에서 쓸 수 있는 게 맞나?)


사회생활 첫 단추를 어떤 사람을 만나서 시작하는지도 너무 중요하다. 운 적 요소가 너무 크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좀 양질의 있는 사람들이 최대한 많은 조직에 가면 미세하게나마 좀 더 좋은 스타팅을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친놈 보존의 법칙은 늘 있기 때문에 어딜 가나 안 맞는 사람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안 맞는 사람이 항상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제삼자의 시선으로 보면 나한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결국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도 마찬가지이고 연애도 마찬가지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회사가 체질인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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