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도 없이 죽은 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던 그가 사람을 믿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교도소 내에서의 싸움판 때부터, 아님 그 아이가 목숨을 구해주던 때부터, 그것도 아니면 나를 믿는다고 무심코 내뱉던 그 순간부터였을까.
재호와 현수는 파란 정장을 입고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달렸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따금씩 피처럼 붉은 배경이 그들 뒤로 드리워진다. 이상하게 그 대비가 그들 앞에 나타날 파란(波瀾)을 애써 모른 체하고 싶었던 것만 같다.
사람의 인생이란 게, 계획대로 잘 흘러가는 법은 결코 없다. 항상 변수를 만나지. 그게 사람이든, 상황이든.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인간에게는 사람을 믿지 않는 편이 오히려 좋다. 상황에 따라 불리한 것은 피하고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몸을 숙이면 그런대로 목숨 붙이고는 살아가니 말이다.
그런데 살아가도 사는 것 같지 않다.
사람이 없기에, 사랑이 없기에.
그래서 사람을 살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이렇게 처절하게 죽게 만드는 것 역시 사람이다.
그래,
어쩌면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그 말도 처절하게 사람을 믿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