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오 루시!>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에 대한 영화

by FREESIA
이젠 세츠코가 아니에요.
출처: 영화 <오 루시!>

예고편만 봤을 때는 로맨틱 코미디를 주로 이루면서 외로운 사람들이 사랑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밝은 분위기의 영화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잇달아 전개되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흐름은 우리를 조금 당황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삶이 있다. 영화 초반에 나온 충격적인 사건처럼 갑작스러우면서도 위태로운 이 느낌은 <오 루시!>라는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방향성이자, 그것이 곧 오늘 날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다. 우리 삶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아픈 것이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바쁜 출근 시간.

직장인, 학생, 너나 할 것 없이 칙칙한 분위기 속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유난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똑같은 마스크를 끼고 있는 이 사람들이 왠지 모르게 모두 똑같아 보인다. 의식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이 가는 길을 바삐 따라가고자 했고, 그런 사회에서 멀어지면 불안해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맞춰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진정한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리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가는 이 세상에서, 그런 세상을 뒤흔들지 못할 바에는 결국엔 나를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버리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출처: 영화 <오 루시!>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세츠코는 어떻게 보면 '척'하기 싫어하는 사람인 것 같다. 직장에 있는 퇴직을 앞둔 한 여직원에 대해 다른 동료들은 계피 과자를 건네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웃어 보이지만 뒤에서는 '나이 많은 히스테리 처녀'라며 시시덕거린다. 하지만 세츠코는 그들처럼 겉 다르고 속 다르긴 싫다. 거짓말을 잘 못한다고 해야 할까. 얼굴에 철판을 깔지 못하고 그녀의 감정이 표정으로 이내 드러난다. 물을 따라주겠다는 동료의 선의를 부담스러워하고, 그 사람에게 받은 과자를 먹지 않고 서랍 속에 버려둔다. 이처럼 세츠코는 사람들의 친절에 대해서 오버라고 생각하거나 다소 불편하게 여기는 면이 있다. 게다가 영어학원에서 만난 타케시와 대화를 하는 도중 '아, 애인은 있어요.'라고 미리 선을 그어두는 것처럼 그녀는 사람들과의 어떤 친밀한 관계도 원치 않는다. 세츠코의 기억 속에 사로잡힌 '사람'에 대한 혐오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세츠코도 전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언니가 자신의 애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비좁은 집안에 들어와 혼술을 하며 TV를 보는 게 그녀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녀를 두고 언니는 도리어 이기적이라고 한다. 옆에 있어주지 않고, 뭐 마실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소한 이유들로. 어떤 심정으로 사람의 마음의 문을 닫게 했는지는 생각도 않고, 그렇게들 사람 사이의 도리와 매너들을 강요한다. 이 불문율을 지키지 않으면 마치 비정상적인 사람인 것처럼 무시하는 게 바로 세츠코가 본 사람들의 진상이었다.


조카의 영어학원에 대신 다니게 된 세츠코는 그곳에서 존을 만난다. 수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그녀의 원래 이름을 버리고, 루시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렇게 그녀는 오로지 영어만 써야 하는, 조금은 낯선 이 공간에서 자신감 있고 여유 있는 '루시'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그리고 송별회 자리에서 퇴직하는 직원에게 모진 말을 내뱉은 세츠코가 노래방 문을 나서면서 하는 말. '제2의 인생을 사세요. 수고하셨습니다.' 세츠코가 아닌 루시로의 새로운 삶을 살고자 마음먹은 그녀가 자기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키노라이츠 시사회에 당첨되어 운 좋게 개봉 전에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엣나인 필름의 이벤트로 진짜 영화처럼 상자 안에서 이름을 뽑았는데, 'Lucy'가 나왔다. 세츠코와 같은 이름을 뽑는 우연이 나를 그녀의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세츠코가 되었고, 루시가 되었다. 그 이름을 뽑는 순간부터 영화는 이미 시작되었던 것 같다. 기발한 이벤트라서 기억에 많이 남는다. )

우리 포옹해요.
출처: 영화 <오 루시!>

존의 특이한 수업방식인 포옹은 고루한 삶을 살아가던 세츠코의 허전한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우연치 않게 흘러들어온 위로였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사람'의 품에서 말이다. 어쩌면 LA로 떠나고자 했던 건, 그리고 존을 다시 만나고자 했던 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제껏 품었던 부정적인 감정들은 뒤로 하고, 다시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란 걸 시작해보기 위함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존을 붙잡고자 한 그 먼 길과 긴 시간은 단지 한 사람에 대한 절절한 감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구원을 바라는 손길이었을 것이다.


연신 들려오는 자살 소식들. 세츠코의 뒤에 있던 한 남자가 갑자기 선로로 뛰어들어 자살했고, 타케시와 어색한 대화를 나눌 때에도 누군가의 자살로 지하철 운행이 지연되었다는 방송을 듣는다. 사랑에 대한 배신감에 조카는 절벽에 떨어져서 자살기도를 했고, 제2의 인생을 살고자 용기를 냈던 세츠코 또한 삶 대신 죽음을 바랐다.

출처: 영화 <오 루시!>

우리의 인생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세상에 대한 상심, 스스로에 대한 절망감, 나의 사람이 떠나버렸다는 슬픔이 우리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붙잡아 둘 때가 있다. 이런 모든 감정들은 우리 마음속에 잠식하고 있다가 순식간에 찾아들어오기 마련이다. 심지어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까지. 지하철 선로 앞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그들의 모습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고,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봐 불안하고, 모든 상황이 갑작스럽다. 갑자기 차 앞으로 뛰어든 사슴과 한 환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에 의한 사고가 아닌 그저 스스로가 내리려는 이 죽음만큼 삶에 대한 의지 또한 다른 무언가가 아니라 오로지 인간에 의해서만 치유되고 아물어진다. 완전히 잊어버릴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사람에 의한 상처는 또다시 사람으로.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들이 또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맘이 들어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이 다가오는 순간들이다.


평범한 우리의 삶에 사슴(deer)처럼 어김없이 찾아오곤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상관없다. 제 1의 인생은 외로웠고, 제2의 인생이 실패했어도 상관없다. 이름이 세츠코여도, 루시여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이름 앞에 붙은 Dear(친애하는; 사랑하는; 소중한)가 아닐까. 나의 이름을, 그리고 너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줄 바로 '사람'. 세츠코와 타케시가 나누었던 따뜻한 위로의 포옹이 그들을 다시 살아가도록 한 것처럼 우리에겐 '사랑'이전에 '사람'이 필요하다.


평점: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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