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런 영화

<빅 식>

우린 가끔 어디가 아픈지 착각할 때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영화

by FREESIA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아픔이다.
출처: 영화 <빅 식>

파키스탄 남자 쿠마일(쿠마일 난지아니)과 미국 여자 에밀리(조 카잔)는 여느 연인들처럼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잠시, 숱한 문화의 차이와 가치관의 충돌로 감정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에밀리는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녀가 잠든 14일 동안 진정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되는 쿠마일 난지아니의 실화 로맨스를 통해 우리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이민자 2세대의 갈등, 문화와 인종 문제 등과 같은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우리의 시선을 달리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유머로 진심을 숨기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쿠마일이라는 캐릭터답게 인물로 보나, 영화 자체로 보나 유머가 가득하고, 파키스탄인이라는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하는 나름의 심각한 문제들 앞에서도 웃음과 함께 가볍게 풀어내는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개그는 반복이라 하듯이 매번 울리는 쿠마일의 X파일 테마곡 벨소리도 기억에 남고, <포레스트 검프>, <새벽의 황당한 저주>, <업>과 같은 영화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영화 속에 숨겨진 작품들을 찾아보는 것 또한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 영화와 쿠마일이 갖고 있는 그 가벼움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웃프다고 해야 할까.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꼭 한 번 마주하는 난감하거나 부끄러운 상황들을 비틀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그것이 실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소개하곤 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신체 콤플렉스와 관련하여 해학적인 스토리로 풀어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자 친구와의 갈등을 천문학적인 비유를 곁들여 웃음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쿠마일 또한 자신이 파키스탄인이라는 인종적 차이를 핵심으로 두고 그의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럼에도, 그들이 무대에서 펼치는 짤막한 이야기들단순히 시시한 농담처럼 들리진 않는 건 왜 일까?


쿠마일의 농담은 그의 직업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호감이 가는 에밀리에게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대기만 했던 그였다. 사실 이전에 한 번 결혼을 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던 에밀리와 달리 그는 파키스탄의 결혼 관습과 그가 처해있는 상황을 그녀에게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또한, 에밀리의 부모가 9/11 테러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 물어보자 그가 꺼낸 발언이나 식당에서 '괜찮아요. 저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라고 하는 그 말말말! 그의 모든 상황들이 농담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쉬이 꺼내지 못하는 진심이 있기에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저 스스로 선택하겠어요.
출처: 영화 <빅 식>

사람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것들.


영화 초반부 쿠마일은 무대에서 파키스탄인이 보통 미국 사람들과 뭐가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의 야구 대신 파키스탄에는 크리켓이 있다거나 미국의 인기드라마를 파키스탄에서는 겨우 1,2편 보기 시작했다는 것 등등. 그리고는 그의 이야기 끝에 이 말을 덧붙인다.


'그것 말고는 다 똑같아요.'


서로 다른 것들의 차이를 논하자면 한도 끝도 없이 일일이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방에 들어온 에밀리와 매트리스 종류에 대해서 불필요한 차이를 늘어놓는다거나 에밀리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자 1등 병원과 17등 병원의 차이라며 1등 병원으로 호송하고자 하는 에밀리 엄마의 모습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두 매트리스에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결국에는 매트리스일 뿐이고, 1등 병원이 17등 병원보다 월등하게 좋은 시설과 서비스를 갖추고 있으리라는 것도 인간의 믿음의 차이가 불러온 차이일 뿐이다. 끊임없이 파키스탄의 전통과 문화를 고수하려고 강조하지만 정작 미국으로 이민 와서 살아가고 있는 쿠마일의 가족과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 또한 마찬가지다. 분명 다른 점은 무수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같음'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햄버거에 치즈 4장을 올려달라는 쿠마일의 주문에 점원은 그런 주문은 불가능하다며 일단락한다. 햄버거를 주문하는 사람도, 주문을 받는 사람도 분명 같은 사람인데 기계처럼 메뉴에 있는 것만 시키라고 한다. 그때 쿠마일은 쌓인 감정이 폭발하여 쓰레기통을 집어던지고 발악을 한다. 그의 심정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다. 매트리스의 차이, 병원 시설의 차이, 그리고 미국과 파키스탄의 차이. 이러한 차이가 곧 사람의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것 또한 결국 사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차이는 무수하지만

결국엔,

당신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다.


출처: 영화 <빅 식>

진짜 진심만이 줄 수 있는 감동.


1인극 공연에서 쿠마일은 파키스탄의 역사와 생활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한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그 뒤에 숨겨 놓고 진행된 연극은,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겨울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가 눈 앞에 놓인 중요한 순간, 쿠마일은 14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에밀리를 생각하며 거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채 숨기지 못한다. 현실의 무게는 더 이상 농담으로 가벼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쿠마일의 1인극은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다. 진짜 자신의 삶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14일의 시간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놓치고 있던 진심을 만나는 순간들이었다.


에밀리는 희귀병으로 혼수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수술이 성공적이었음에도 감염이 심장까지 전이된다. 그러다 아주 간단하게 그 병의 원인이 해결된다. 에밀리의 병처럼 사실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해답은 생각보다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Big Sick.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아픔이라고 했다. 아픔이 싫다고 해서 어리석은 믿음으로 세상 모든 것에 구분 짓거나 가벼운 농담으로 그 무게를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사람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평점: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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