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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불 Nov 08. 2021

파란돌

나는 매일 죽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든 살고 싶은 마음속에서 갈등한다


뭐랄까, ‘충만하다’ 혹은 ‘충분하다’는 것은 가장 평안과 행복에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죽음에 가까운 상태인 것 같다. 근래의 나는 모든 것이 충분했다. 욕심이 크지 않은 탓도 있다. 애인과 친구, 가족들이 딱 이대로만 유지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했고, 일 년 정도는 죽지 않고 살 만큼의 여윳돈이 충분했고, 미천한 글솜씨를 몇 만 명의 사람이 읽어주고, 각자의 소회를 남겨준 일이 충분했다. 사실은 너무 충만하고 평화로워서, 그냥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버렸으면, 아무런 변화나 극적인 사건이 추가되는 일 없이 종료되었으면 싶었다. ​


​*


 그런데 시간은 흘러가고 생은 이어지니, 이대로 죽음 같은 평안에 잠식될 수는 없었다. 그래선 안 된다고 온 세상이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질러대는 듯했다. 나는 또 일어나서 움직이고 일을 해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이런 생 속에서 평안을 깨뜨리는 변동과 예기치 못한 사건들은 당연한 것이었다. 난 그게 너무 괴로웠다. 겨우겨우 충분해지고 평안해진 내가 또 흔들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나는 또 무언갈 욕망할 것이며 변할 것이며 잃고 아파할 것이며 또 성장하겠지. 그게 너무 싫었다. 알량하게 쥐고 있는 내 소중한 삶이 끔찍이도 애틋했기에 역설적으로 더 살아있고 싶지 않았다.

​*


 하지만 그런 내게도 다시 () 온다. 나는  소소하게 욕망하는  생겼다. 깨고 싶은 알이 생겼다. 위로를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어 졌고, 모두가 비웃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속에 부유하는 음률들을 느낄  있는 감각으로 치환하여 공유하고 싶어졌다. 또 내게 소중한 관계들을  쥐고 놓고 싶지 않아졌다. 위태롭고 흔들릴지라도.



 임인건의 노래. ‘바람이 부네요’의 한 구절처럼, 산다는 건 참 신비한 축복이다. 나는 매일 죽고 싶은 마음과 어떻게든 살고 싶은 마음속에서 갈등한다. 한강 시인의 시 ‘파란돌’이 생각난다.


(…) 난 죽어있었는데

죽어서 봄날의 냇가를 걷고 있었는데

아, 죽어서 좋았는데

환했는데 솜털처럼

가벼웠는데


(…)


거기 있었네

파르스름해 더 고요하던

그 돌


나도 모르게 팔 뻗어 줍고 싶었지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난 눈을 떴고,

깊은 밤이었고,

꿈에 흘린 눈물이 아직 따뜻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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