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_서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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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생적인 불편함으로 도람은 늘 회사에서 긴장해야 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노곤해져 깜빡 졸다가 그만 목 부분의 가면이 살짝 들린 날이 있었다. 불빛은 새어 나가고 뒤에선 커피를 양손에 4개씩 들고 오던 보라가 뻗쳐 나가는 불빛을 보며 의아한 소리를 냈다.
“어?”
깜짝 놀란 도람은 침을 닦으며 잠에서 깨 학창 시절 읽었던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기’ 책을 떠올리며렸다. 그리곤 재빨리 휴대폰 후레쉬를 켜고는 천연덕스레 혼잣말을 했다.
“어우, 이게 왜 켜져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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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가 느끼기엔 이 모든 생활이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일단 도심 속 괜찮은 빌딩으로 출퇴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설렜고 반짝이는 조명들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이 맘에 들었다. 휘황한 조명들을 볼 때면 그 모습이 ‘꼭 도깨비들이 모여있는 모습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조명들은 도깨비들과는 다르게 온기는 없었지만 도람은 모여서 빛나는 조명들을 보자면 가끔은 고향에 온 듯한 안도감 같은 것이 들었다.
또 종종 매출 현황을 분석해 더 잘 팔리는 조명에 대한 제안을 내놓기라도 할 때면 보람차기까지 했다. 간혹 발표할 때 모두가 약간은 귀여워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봐 줄 때면 굉장히 사랑받는 ‘인간’으로 거듭난 기분이었다.
도람은 늘 사람들이 사는 세계를 동경해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커서 인간 세상에 가는 일은 당연한 순서로 느껴질 정도였다.
도깨비마을의 모든 이들이 졸업 후 인간 세상을 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꽤 많은 도깨비들이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고 도깨비 마을에 남아 있는 것을 택한다. 그러나 도람은 달랐다. 도람은 겉으로 보기엔 수줍었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이 있는 학생이었다.
가정환경도 한몫했다. 도람의 할아버지는 종종 티비에도 나올 정도로 인간 세상에서 이름을 알린 도깨비였다. 조만간 ‘위대한 도깨비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위대한 도깨비들 명예의 전당’은 도깨비 학교 저학년 시절에 견학 가게 되는 곳으로 인간 세상에서 살아남아 도깨비 마을을 빛낸 일종의 ‘위인’들의 삶을 정리한 박물관이다. 엄밀히 따지면 ‘인’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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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람이 도깨비 마을에서 일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사실 따로 있다. 7학년째에 했던 진로 숙제가 결정적이었다. 다양한 직업군을 조사하는 숙제여서 그는 마을의 어른들을 인터뷰하러 돌아다녀야 했다.
그는 단골 빵집 사장님과 선배의 지인인 자전거 정비사, 또 어린 도깨비들의 영양을 책임지는 학교 영양사 선생님을 만나보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소박하고 제한된 마을 속의 삶 속에서 꽤나 안정감을 느끼는 듯했다. 인간들에게 정체를 들킬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평생을 알고 지내던 이들 속에서 어우렁더우렁 어울려 사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다.
이대로 마을에서 조용히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도람은 인간 세상에 나가 지내던 학교 졸업생 선배가 마을에 잠시 들른다는 소식을 친척에게서 듣게 되었다. 친척은 자신의 친한 친구라며 이제는 인간 세상에서 어엿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공예 브랜드를 낸 그녀를 인터뷰하지 않겠냐고 도람에게 제안했고 안 그래도 늘 인간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살던 도람은 흔쾌히 수긍했다.
그녀의 이름은 ‘도도’였고 반짝거리는 유리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도람의 인터뷰 때도 자신이 만든 공예품 하나를 가져와서 선물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공예품이 달린 목걸이였다. 정교한 심장 모양의 공예품은 도람의 빛깔과 닮은 따뜻한 주광색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