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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불 Apr 09. 2020

아빠 몸에 피어오른 암덩이

낙화를 기다리며


아빠 몸에 계란만 한 암덩이가 자라고 있었다. 의사는 아빠 배를 갈랐다가 4월의 벚꽃처럼 피어오른 수북한 암송이들을 확인하고 조심히 도로 덮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빨 많이 좋아했다. 누군가 꽤 짓궂은 얼굴을 하고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면 난 곧장 아빠, 하고 말해 질문자와 엄마 사이를 무안케 했다. 온몸에 땀이 나도록 열심히 니스칠을 한 중고 식탁을 보고 퇴근한 엄마가 소리 지르며 땀범벅이 된 아빠를 꾸짖었을 때, 달려가서 아빨 꼭 안아주고 싶었다. 악몽을 꿀 것 같은 밤이면 아빨 불러 귀를 쓰다듬게 했다. 무뎌진 손동작에 잠든 아빨 알아챌 때면 금세 다시 아빠를 깨워 귀찮게 보챘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에게 물걸레로 맞아 울며 돌아간 나를, 아빠는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화난 발로 페달을 밟아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키 160의 다 큰 딸내미는 아빠 등을 폭 안고 행여 누가 볼세라 얼굴을 숨겼다. 그 딸내미가 열아홉이던 해에,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아빠와 나란히 침대에 하늘을 보고 누워있다.   


아빠


세상의 불행한 일들을 보면 신이 없는 것 같어.



아버지는 그 역시 성직자임에도 신의 뜻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을 한다.     


스물둘이 된 딸내미는 여전히, 침대에, 이번엔 아버지 없이 홀로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가끔 세상의 불행한 일들을 보면 신이 없는 것 같어.          


아빠                    

사랑하는 나의 아빠               


어린 나의 눈코입을 찬찬히 살펴보던 젊은 아빠처럼

늙은 아빠의 눈코입을 천천히 바라보는 젊은 나





  3년쯤 전,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찾아갔던 아빠에게 거짓말처럼 암이 발견되었어요. 이름도 생소한 사르코마(육종암). 제거를 위해 개복 수술을 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덩어리들이 송이송이 달려있었대요.

 일련의 소식들을 감당해야 했던 스물둘의 봄날. 예뻐 보여야 할 꽃들이 야속했어요. 잔인하게 달려있는 꽃잎들을 보며 어서 빨리 떨어져 버리길 기도했어요.

  일 년 후 이번엔 엄마에게서 새로운 암이 발견되었고 또 봄은 찾아왔어요. 다행히 엄마의 암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때의 기억이 남아서인지 봄이 오면 나는 아릿하게 아파오곤 한답니다.

  나는 아직도 낙화를 기다려요. 이번에는 아빠 몸에 징글맞게 달려있는 암송이들이 깨끗하게 완전히 져버렸으면 좋겠는 마음으로요. 그 자리엔 연둣빛의 생기로운 잎들만이 건강하게 찾아왔음 좋겠어요. 그래서 한 해가 지나고 두 해가 지나고 다시 봄꽃을 바라봐도

마음 아프지 않길. 아름답게만 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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