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에 이어 >
여고 2학년, 우리 반 담임은 영어 샘이었지.
30대 초반에 얼굴은 하얗고 눈은 왕방울 만했는데
아이들 성적보다 두발과 복장에 더 신경 쓰셨어.
늘 용모단정을 강조하셨고 무스, 스프레이는 금기 사항이었지.
매주 월요일 조회시간은 담임의 대대적인 두발 복장 검사시간이야. 그러니 그날만큼은 절대 조심해야 하지 않겠니? 장국영 머리가 깻잎 머리가 되더라도 말이야. 담임한테 걸렸다 하면 교무실로 불려 가 30분 잔소리는 물론이고 말대답 잘못했다간 엄마 모셔오란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까(촌지를 꽤나 밝히셨다는...ㅜㅜ)
영어 샘답게 담임은 영어를 섞어 말씀하셨지.
You! 멋 내지 말랬지!
You! 무스 바르지 말랬지!
You! 화장하지 말랬지!
담임이 제일 많이 하는 레퍼토리야.
자, 드디어 숨 막히는 시간이 됐어.
담임이 1 분단부터 아이들을 스캔하고 있네.
오~~ 호 오늘은 무사히 무사히 잘 들 넘어가고 있어.
어? 어! 담임이 내 앞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오고 계셔.
난 아무 잘못 없다는 듯 고개 들어 샘의 눈을 똑똑히
쳐다봤어. 내 책상 앞에서 멈춘 걸음. 누런 교편이 내 머리를 향한 뒤 이어지는 담임의 목소리.
"You! 멋 내지 말랬지!"
언니 옷을 몰래 입고 오긴 했지만 멋 낸 건 아니었어.
"멋 낸 거 아닌데요."
내 말대답이 언짢았는지 담임은 이경규 아찌가 무색할 만큼 띠~~ 용 왕방울 개인기를 보이시더니
"You! 스프레이 뿌리지 말랬잖아!"
이번엔 정말 억울했어. 다른 날도 아닌 월요일에 내가 미쳤냐고. 그리고 사실 뿌릴 필요도 없었단 말이야. 무슨 소리냐고? 아이참. 읽어봐 곧 알게 될 거야.
"저 암 껏도 안 뿌렸어요. 정말이에요."
"You! 이리 와봐."
앞 머리를 잘근잘근 만져보던 담임이 딱딱한 인조감 하나 없는 자연스러운 내 머릿결에 흠칫 놀라신 눈치야.
"You! 앞머리 올려봐."
큭큭 대던 주위 친구들이 일제히 웃음을 멈췄지.
나도 침을 꼴깍 삼키고 긴장된 표정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앞머리를 올렸어.
"You! 너 너 이마가 그게 뭐야!"
"잔머린 데요."
무슨 말이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글쎄 그게 말이야.
내 광활한 이마엔 전 보다 굵고 빳빳한 새순이 자라고 있었던 거야. 스프레이가 없어도 높이 장국영만큼 아주 높이 내 머리를 세워주고 있었지.
앞머리 높이가 자존심이라 우기던 학창 시절, 잊지 못할 추억이야.
(잡지 사기 기사 쓴 사람, 어디 잡히기만 해 봐라.)
끝.
*장국영 사진 출처 네이버 블로그- 수목미술심리상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