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곧바로 팀 지원을 요청해야 할까?
벌써 며칠. 휘영의 머릿 속을 채우고 있는 고민이다. 이성적으로 보자면, 당연히 팀 단위로 움직여야 한다. 대량 살상 전적이 있는 강력범죄 용의자이니, 가능하면 병력 지원도 받는 쪽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애초에 이번 사건은 휘영의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이미 정영태 팀장과 말이 오간 터다.
또 하나의 변수는, 바로 신현우로부터 제공받은 정보다. 보통의 대형 사건과 달리 계획 수립에 필요한 상당량의 정보가 이미 확보된 상태. 그의 말에 거짓이 없다면, 포위망을 짜기 위한 코스트는 현저히 줄어든다. 은신처라는 곳의 주변 지형도 눈에 띄는 길 위주로만 파악해두면 될 것이고, 동원되는 병력 수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번 사건 하나에 모든 인력이 투입될 수는 없는 노릇. 투입 인원을 줄일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데, 구태여 피해갈 이유는 없다.
‘혼자 가는 건 당연히 허락하지 않으실 거고… 오 형사랑 같이 간다고 하면 좀 가능성이 있으려나? ……아냐, 그래도 좀 부족하긴 한데.’
현우의 말처럼 용의자가 휘영을 찾아올 거라고 한다면 핵심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과연 내가 그 놈과 맞붙어서 이길 수 있을까?’
휘영 본인이 용의자와 맞설 수만 있다면 팀 구성이고 병력 동원이고 모두 겉치레에 불과하다. 애초에 놈과 마주칠 일도 없으니, 인명 피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모든 걸 정영태 팀장에게 설명할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
‘그냥 독자적으로 움직여버려? 어차피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일인데 굳이 질질 끌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시간 끈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아닌데.’
사실 달라질 게 있긴 하다. 지홍에게 들었던 설명에 따르면, 각성 상태가 안정됨에 따라 새로운 능력이 개방될 수도 있다고 했었다. 실제로 사람들의 머리 위에 붉은 아지랑이가 보이는 현상은 많이 안정된 상태다. 아지랑이의 색깔과 형태도 선명하게 구분되고, 무엇보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던 공포가 많이 사라졌다. 보통 사람들이 보이는 아지랑이로는 심장이 조금 빨리 뛰는 정도. 물론 예전처럼 짙은 핏빛 아지랑이를 보이는 존재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하지만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시간을 끌어야 할 절대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인 데다가, 능력을 얻는다고 해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니까. 게다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면, ‘그 놈’도 또다른 능력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다소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지금 해결해야 한다는 촉이 강하게 드는 이유다.
자꾸 뻗어나가는 생각들. 꼬리를 물린 생각들 중 어떤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처음 떠올린 생각의 꼬리를 다시 문다. 결국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더미가 만들어진다.
“음? 은 경위님, 무슨 고민 있으세요?”
오진우 형사 역시 딱히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료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노트북에 고개를 처박고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니 목 언저리가 뻐근해진다. 스트레칭 겸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던 그는 생각에 잠겨 있는 휘영을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음? 어, 아냐. 고민은 무슨.”
“아닌데. 고민 있으신 표정인데.”
“뭐래……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내 생각인데.”
“어, 저번에 말씀 안 드렸던가? 은 경위님 얼굴은 항상 블링블링 빛이 난다니까요? 근데 지금은 그 빛이 좀 흐릿해진 걸 보니 뭔가 걱정거리가 있는 게 아닐까 한 거죠.”
“……와…와아… 사무실 냉장고에 김치 남은 거 좀 없니? 손발을 넘어서 내장까지 오그라드는 거 같은데.”
“히잉, 진짜라니까요. 너무 그러지 좀 마세요.”
“너야말로 너무 그러지 좀 말아라. 너 요즘 부쩍 간지러운 멘트 던지는 거 같은데,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난 그런 거 관심 없으니 정신 좀 차리렴. 응? 그리고…”
“그리고?”
“‘히잉~’ 이런 소리 한 번만 더 내면 진지하게 욕한다. 알았어?”
“……”
“어허, 대답.”
“…눼에…”
진우는 입술을 비죽 내민 채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 모습을 보던 휘영은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녀는 태블릿에 사진 파일을 하나 띄웠다. 현우에게서 받은 프로필을 찍어둔 것이다.
“오 형사, 입술 뒤집어지겠다. 삐진 척 그만 하고 이리 와서 이거나 좀 봐봐.”
“뭔데요. 음? 이걸 왜요? 설마…… 에이, 아니죠?”
“그 설마가 맞을걸.”
“와…… 은 경위님, 대박. 간질거리는 멘트 좀 던졌다고 이런 농담으로 복수하시는 거에요? 나가서 김치 사다드릴테니 이건 넣어두시죠. 재미 없어요. 그보다 애당초 이건 어디서 나신 겁니까?”
“개인적인 정보원이니까 출처는 묻지 마. 재미있으라고 하는 거 아니고, 김치도 필요 없어. 그리고 아주, 엄청 진심이야.”
“……그러니까, 이 녀석 잡으러 가시겠다?”
“응.”
“레알? 트루?”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렴. 진심이라고 말했잖아.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춰. 다른 팀에 대대적으로 광고할 일 있냐.”
진우는 화면을 들여다 보던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허리를 폈다. 불안한 눈빛으로 턱에 손을 가져다 댄 채 안절부절이다.
“뭐야, 정신 사납게 왜 이래?”
“요즘 딱히 이렇다 할 제보 같은 것도 없고 당장 매달릴 만한 사건도 없는 건 알겠는데요. 이건 좀 오바 아녜요? 마치 뭐랄까… 뭐 먹을 것 좀 없냐고 하니까 그럼 ‘내가 가서 맨손으로 상어 잡아 샥스핀 잘라오겠다’ 하는 느낌?”
“그 비유 뭐니. 묘하게 기분 나쁜데. 뜬금없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아마 보고 올리면 팀장님도 딱 그만큼 뜬금없고 당황스러워 하실걸요? 당연히 허락하실 리 없다는 건 은 경위님도 아실 거 같고.”
“그건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휘영은 진우에게 귀 좀 대보라는 듯 손짓을 하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어차피 허락은 못 받을테니 형식적으로 보고만 해두고. 너랑 나랑 둘이 해결해보는 게 어때?”
“……”
갑자기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말에 진우는 잠시 멈칫한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그는 자기 턱에 대고 있던 손을 휘영의 이마로 가져간다.
“…뭐하니?”
“이상하다. 열은 없으신데 자꾸 헛소리를 하시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
“안 돼.”
정영태 팀장은 태블릿으로 보고서 파일을 대충 훑어보더니 딱 잘라 말했다. 시선조차 돌리지 않은 채 뱉어낸 단 두 글자. 그 외에 다른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는 태블릿을 책상 위에 툭 던지듯 내려놓는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 휘영은 짐짓 목소리를 높이며 되물었다.
“아니, 왜요? 이유라도 설명해주세요.”
휘영을 외면하던 영태가 흘깃 눈길을 돌린다. 살짝 언짢은 기색이 담긴 눈빛.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 정말? 진심?”
“당연히 모르니까 묻는 거죠. 우선 저랑 진우는 저번 사건 이후로 쉬고 있는 상태였으니 사람은 문제될 것 없죠. 요 며칠 잡범 몇 명 처리한 게 있긴 하지만 양심적으로 그건 빼고, 이렇다 할 일도 없었고요. 저번 회의 때 수배자 리스트 보고 잡을 놈 찾아오라고 하셨잖아요. 이 놈 이거, 엄청 오래 도망다닌 놈이에요. 제가 잡는다니까요?”
“하아……”
영태는 한숨을 내쉰다. 얼마 전 회의 중에 멍 때리는 거 불러다가 한 마디 했던 날이 새삼 후회스럽다. 휘영의 성격상 이런 식으로 훅 들이댈지도 모른다는 걸 예상했기에 더욱 그렇다.
‘그냥 멍 때리게 며칠 더 놔둘 걸 그랬나. 그 편이 내 일 처리하기에는 한층 편했을 텐데.’
영태는 베테랑이다. 팀장이 되기 전까지 손발을 맞춰본 형사들 중에는 휘영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유명인사(?)들이 수두룩했다. 좀 골치가 아프긴 하지만 수습할 수 없는 타입은 아니다. 그는 심호흡을 몇 번 하며 생각을 정리한 뒤, 태블릿을 다시 집어들어 휘영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자, 은휘영 경위님? 가져오신 파일, 그래 어디서 찾아서 이렇게 정성스레 정리해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수고했고. 이거 다시 한 번 찬~찬히 살펴보세요. 아주 찬~찬히.”
“……? 왜요? 뭐 문제 있어요?”
“음, 있잖아. 뭔가 퍼뜩 떠오르는 거 없어? 아주 기본~적인 거 있잖아.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던 그런 거. ‘설마 이게 문제겠어?’ 싶을 정도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거나 하는 그런 거.”
휘영은 고개를 갸웃한다.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상황에 뜬금없이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건 아닐테고.
“……눼, 모르겠는데요.”
“휴우… 그간 내가 너무 특별취급을 해줬나? 아닌 거 같은데. 나이로 보나 경찰 짬밥으로 보나 이걸 이해 못할 레벨이 아니어야 정상인데 말이지. 자~ 여길 보세요, 은 경위님? 패기있게 들이민 이 놈, 이게 벌써 10년 넘게 수사망을 피해 도망다닌 놈이거든?”
“…네, 그런데요?”
“얘가 어떻게 10년 동안 안 잡힐 수 있었을까? 우리가 월급 받은 걸로 소고기 사먹고 띵까띵까 놀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출근해서 짜장면 시켜먹고 낮잠 자고 우리끼리 막 노닥거려서 그랬을까?”
“그, 그럴리가요! 뭐… 가끔은 소고기 회식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러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만큼 열심히 일하는 팀 드물거라구요!”
억울하다는 듯 정색하는 휘영을 보며 영태는 피식 웃는다. 지금 이 녀석, 아주 원초적인 감정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런 단순한 농담도 받아넘기지 못할 정도로.
“워워, 농담이니까 진정하고. 경찰 밥 먹다보면 현상수배 걸리는 용의자가 발에 채이듯 많이 보이는 건 사실인데 말이지. 전국에 깔린 형사 숫자에다가, 곳곳에 있을 제보 정신 투철한 시민들 더한 숫자보다야 적지 않겠냐?”
“아무래도 그렇겠죠? 보통 길어야 몇 년 정도면 어디선가 꼬리가 잡히게 마련이니까. 작정하고 어디 산골이나 해외로 잠적한다면 모를까.”
“그치?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근데 얘는 안 잡혔어. 뭐, 어디 어떤 형사가 죽을 힘을 다해 쫓아가봤는데 변강쇠 같은 체력에 우사인 볼트급 다리를 가지고 있어서 못 잡은 것도 아니야. 무슨 람보나 아이언맨마냥 대인 살상용 병기를 몸에 둘둘 감고 다녀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 아예 종적조차 몰랐다 이거야. 너도 이 자료 정리하면서 온갖 조사를 다 했겠지만, 그동안 뭐 특별한 기록 남은 거 있었냐? 허위제보 기록 같은 것까지 통들어서.”
“딱히 없……었죠. 그냥 몽타주랑 간단한 인적사항 정도?”
“없는 거지, 그럼.”
기세등등하던 휘영이 움츠러든다. 한 풀 꺾인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하겠다는 듯 영태는 씨익 웃는다.
“근데 그걸, 너랑 진우랑 둘이서 잡아보겠다? 그래, 뭐 여기다 일부러 안 넣은 정보나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건 내가 존중해주마. 너희 둘 다 실력도 있고 의욕도 충만한 형사 꿈나무들인 것도 인정하고.”
‘일부러 안 넣은 정보’라는 말에 잠시 움찔. 애써 표정을 관리한다. 그 찰나의 순간조차 이미 읽혔을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잡아떼고 봐야한다.
“경찰이라는 조직에는 말이다. 너보다 경험도 많고 감도 빵빵한 형사들이 수두룩하거든. 뭐,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이 없어서 다들 펑펑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들 알게 모르게 엄청 빡세게 고생하고 있거든. 그 양반들이 얘를 잡기 싫어서 그냥 내버려둔 게 아니라는 거다.”
“……”
“그래, 까놓고 말해서 지금 당장 누구라도 시작할 수도 있겠지. 아무 정보 없이 맨땅에 헤딩하면서 파다보면 언젠가는 잡지 않겠냐? 근데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입장에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얘 하나만 쫓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가만…… 너 혹시 저번에 그 일 때문에 경찰 생활에 회의감 느낀다거나 뭐 그런 거냐? 팀원들이 아쉬워하긴 하겠지만 이제라도 다른 길 찾아야겠다 싶으면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이야기해. 초고속으로 푹 쉬게 만들어줄테니까. 아직 젊……잖아?”
“잠깐, 젊다는 말 하실 때 살짝 더듬은 거 같은데.”
“……아냐, 기분 탓이야.”
흔히 쓰는 ‘농담 반 진담 반’은 딱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싶다.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영태의 말을 들으며 휘영은 제대로 대꾸하기도 어렵다. 지는 기분이라 분하긴 하지만 어쩌랴. 다 맞는 말인걸.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몇 마디 더 했다간 강제 휴직이라도 시키실 기세네. 저 같은 열혈 형사를 또 어디 가서 찾으시려고.”
“그래, 그래~ 가끔 앞뒤 안 재고 너무 열혈이라 문제일 정도지. 어떤 일이든 너무 극단적이면 탈 나는 법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였어요? 난 또……”
허탈함에 힘이 빠진다. 이래서 아까 ‘기본~적인 거’라는 말을 요상하게 강조했던 거였나…… 무슨 거창한 이유라도 있는 줄 알았더니 별 게 아니다. 어쩌면, 뭔가 특별한 이유로 만류해주길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요약하자면, 만만치 않은 놈이니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 어차피 더 윗선에 올려봐야 까일 게 뻔하니 자기 선에서 먼저 끊어주겠다는 의미다. 결국 배려해주는 셈. 좀 투박하긴 하지만 그거야 원래 영태의 스타일이 그런 식이니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다. 반려될 거라는 걸 처음부터 예상한 것도 있고.
“근데 그것만 있는 게 아냐. 이유.”
“네? 또 있어요? 뭔데요?”
“후우~”
영태는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에 손을 뻗었다가 실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손을 거둔다. 대신 그 옆에 있던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이켰다. 태블릿 화면을 다시 켜서 파일을 살펴본다. 하고많은 수배범들 중에 왜 하필 이 놈일까?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길래 이토록 확신하는 걸까? 그 정보는 대체 누구에게서 얻은 걸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답은 안 나오지만.
‘뭐가 됐든, 혼자서라도 추적하겠다던 할머니 사건과 관련이 있겠지. 백 퍼센트. 진우 녀석이랑 같이 하겠다고 한 건 일종의 보험인가? 둘 다 혈기가 앞서는 타입이라 그다지 유용한 카드가 아니라는 건 알텐데.’
뭔가 찜찜하다. 그간 영태가 봤던 휘영은 나름 잔머리를 쓸 줄 아는 캐릭터. 이토록 뻔히 보이는 패가 전부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오진우 그 단순한 놈이야 미끼 하나 던져놓고 꼬시니까 덥석 물었을 테고. 에휴, 소극적인 자식. 용 쓴다 아주. 아무튼 그건 그거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데 종잡을 수가 없네.’
“……너 말이다. 왜 하필이면 이 놈을 잡겠다고 나서는 건지 대강 알겠는데 말이야.”
“네? 무, 무슨 말씀이시죠?”
“되지도 않는 연기 하지 마라. 티 다 나거든? 누굴 속이려고 들어.”
“……”
“현재 상황에서 그다지 맥락도 없는 놈을 갑자기 잡겠다고 나서는데 수상한 게 당연하지. 어디서 어떤 놈팽이한테 무슨 정보를 주워듣고 온 건지는 모르겠다만, 그거 확실히 믿을만 한 거냐?”
“……네, 확실해요. 아직 다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그래, 말해야겠다 싶으면 알아서 말하겠지. 어쨌든 너, 확신이 있으면 내가 반대하거나 말거나 할 거잖아? 아니야?”
“……”
“그럴 줄 알았지, 내가. 휴우……”
영태를 얼굴을 찡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그가 택할 수 있는 답은 정해져있다. 이것저것 재 봐야할 것들이 많지만, 그는 결국 휘영을 돕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건 아마 휘영이 이 파일을 작성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 순간부터 정해져있는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경거망동하지마라. 이건 진짜 위험한 일이니까.”
“피- 언제는 안 위험했나요 뭐.”
‘아오, 저 뇬의 주둥이를 그냥… 여자라 때릴 수도 없고… 하긴, 때린다고 가만히 맞고 있을 애는 아니지. 오히려 내가 처맞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깐족거리는 말대답에 영태는 애써 웃으며 혀 끝까지 올라온 말을 마음 속으로 삼킨다. 요즘 부쩍 짜증나는 일을 수시로 겪는 탓에 좀 예민해진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휴우…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애도 아니고… 좀 기다려 봐. 팀 단위로라도 움직일 수 있게 손을 써볼테니까. 알았지? 절대 혼자 들쑤시고 다니지 마라.”
“어, 진짜요? 장난 치시는 거 아니죠?”
“이런 걸로 장난치는 취미는 없다. 알면서 그러냐.”
“와~ 역시 팀장님 최고! 싸랑합니다, 우리 팀장님!”
“어쭈? 어? 야, 너 그대로 가만히 있어. 거기 안 서? 무서우니까 다가오지 말라고! 아, 저걸 진짜 때릴 수도 없고.”
조금 전 감춰뒀던 말 중 하나가 육성으로 튀어나오며, 좁은 집무실에서 책상을 사이에 둔 추격전이 펼쳐진다. 등장인물도, 상황도, 예전 어디에선가 본듯한 장면이다.
어느새 4개월이 넘었습니다;; 지난 번 긴 간격을 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장기 휴재를 하게 되면 따로 공지를 하겠다고 해놓고 면목이 없습니다. 굳이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책 보고 뉴스 보고 동글 매거진과 잡 想 인 매거진에 올릴 글 생각하고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더군요.
결말까지의 대략적인 스토리는 잡혀있는 상태지만, 중간 과정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가 항상 고민입니다. 뭘 써도 뻔한 전개가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아예 정신줄을 놓아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이번 졸필 연재를 마치고 나면 꼭 사전 집필을 어느 정도 해놓은 뒤에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ㅠㅠ
전체 연재작은 매거진 : 자칭 B급 판타지 소설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이름을 바꿔보았습니다. 링크는 안 바뀌었으니 기존에 올렸던 회차의 링크로도 들어가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