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어, 왔냐. 생각보다 빨리 왔네. ……근데 왜 빈손이야?”
“네?”
“올 때 메로나.”
“……그거 진심이셨어요?”
“어쭈? 내 말은 자동으로 농담 필터링이냐? ‘올 때 구구콘’이라고 할 걸 그랬나.”
“……”
“음? 뭐야? 왜 그렇게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봐?”
“엄청 이상하니까요. 때가 어느 땐데 그런 옛날 멘트를……”
“왜, 요즘 그 뭐냐. 아재 개그? 그게 트렌드라며. 가끔 들으면 재밌잖아.”
“글쎄요. 그다지 재미가 있지는…… 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기 전에 일찌감치 포기하시죠.”
“쳇, 너 요즘 진짜 수상해. 어디서 나 몰래 이상한 제보 받고 오지를 않나. 갑자기 부쩍 까칠하게 굴지를 않나. 근무시간에 혼자 땡땡이 치러 나가는 걸 보면 감정기복도 좀 심해진 거 같고. 한 달에 한 번씩 그러는 거야 이해하겠다만 이번엔… 좀 길다?”
“땡땡이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이해해주려 하시는 건 감사한데요, 팀장님. 그런 이야기를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시면 뭐랄까. 아저씨에다가 또다른 타이틀을 하나 더해드리고 싶어지거든요?”
“……별 생각없이 말하다보니 너무 갔나보다. 크흠, 흠. 자~ 은 형사 왔으니 다들 회의실로 집합. 빨리 끝내버리자고.”
영태는 머쓱한 표정으로 서류를 챙겨들고 총총걸음으로 걷는다. 그 뒤통수를 예리한 눈초리로 흘겨보며 휘영도 회의실로 향했다.
“그런 고로, 이 시간부로 우리 팀은 이 사건에 투입하도록 한다. 어… 한 형사랑 박 형사도 이쪽으로 붙는 걸로 알고 있도록. 지금 맡고 있는 건 잠시 중단한다고 생각하고.”
“네, 팀장님.”
“알겠습니다.”
“브리핑은 여기까지. 다들 조용하네. 급하게 꺼낸 사안이라 다들 생각 정리가 안 된건가? 뭐 할 말 있는 사람?”
조용하다. 팀장인 영태의 성격과 리딩 스타일 덕분에 기본적으로 팀 전체가 활력과다 경향이 있는 편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여느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엔 평소처럼 떠들어 보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영태도 이젠 그러지 않는다. 순응, 혹은 포기.
“다들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아서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 시점에 이 사건을 맡아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기존에 맡았던 수사까지 모조리 중단하면서 전원 투입하는 건 상당히 무리수 같은데요.”
팀에서 영태 다음으로 고참인 최재한 형사가 묵직한 돌직구로 침묵을 깼다. 영태는 가볍게 호흡을 고른다. 딱 예상했던 사람의 예상했던 질문. 대답하기 어려울 거라는 것까지도 예상대로다.
“그래, 솔직히 합리적이지는 않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반려했었으니까. 뭐… 어차피 알게 될테니 이야기해주자면, 은 형사가 개인적으로 얻어온 소스야. 요 며칠 무료해보이는 게 안쓰러워서 뭐라도 좋으니 한 건 낚아오라 했더니…… 무슨 범고래 한 마리를 몰고 왔더라고.”
일동의 눈길이 한 곳으로 향한다. 휘영은 자신에게 주목되는 시선에 순간 움찔했다.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랄까. 특히 질문을 던진 재한의 시선이 평소와 달리 영 차갑게 느껴진다.
“그럼 은 형사랑 오 형사, 둘만 보내도 되지 않습니까? 좀 위험하긴 하겠지만… 병력 좀 요청해서 지원 좀 붙여주면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두 사람 다 경력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긴 하지만 현장 나가서 어리버리할 정도는 아니니 오히려 이번 기회로 크게 성장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일리 있는 말이다. 어차피 강력계 형사들은 하루하루가 위험의 연속이다. 사건을 맡고 있지 않을 때도 늘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 특히 과거 이력이 화려한 형사라면 일상생활 곳곳에서 높은 빈도와 강도로 보복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로 인한 일상적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오히려 익숙해진다는 것이 재한의 생각이다.
“그게…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거든? 그런데… 에휴…”
“……까이셨군요?”
말끝이 흐려지자 재한이 툭 치고 들어온다. 영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한은 이해한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다시 휘영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은 형사, 꼭 이 녀석으로 해야할 이유라도 있나? 두 사람이서 해결할만한 다른 수배자도 많은데.”
“이 녀석에 관해 들어온 제보가 상당히 구체적이라서 굳이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보 내용 중에 이 녀석이 빠른 시일 내에 도주를 시도할 거라는 내용도 있었고요.”
“흠……”
“사실 저도 최 형사님 말씀대로 오 형사랑 둘이서 어떻게든 해볼 생각이었는데…”
“…… 뭐, 팀장님이 그대로 두실 분이 아니긴 하지.”
휘영은 미리 생각해뒀던 이유를 차분히 설명했다. 현우의 존재를 굳이 부각시키지 않고도 수사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했던 내용이라 말이 술술 나온다. 그럼에도 재한은 여전히 마뜩치 않은 표정이다.
“최 형사, 간단하게 생각해. 어차피 언젠가는 잡아넣을 놈, 기회 있을 때 최대한 확실하게 밀어붙인다고 보면 되지 않겠어?”
“뭐… 그렇게 생각하려면 안 될 건 없습니다만, 뭔가 영 찜찜해서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다른 사람들도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마찬가지일 거고. 하지만 최소한 허위 제보는 아니라고 하니까 한 번 밀어주자. 너무 대놓고 찜찜해하면 은 형사 기분도 좀 그렇잖아?”
“팀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믿고 가야죠, 뭐.”
“그래. 고맙다, 최 형사. 끝나고 나랑 따로 커피나 한 잔 하자. 또 할 말 있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영태와 재한의 대화를 들으며 모든 의문을 해소한 듯,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대답이 나온다. 깔끔한 마무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영태는 흡족한 미소를 머금는다.
“좋아, 구체적인 작전 계획은 하루이틀 내로 다시 하자고. 회의 끝!”
휘영은 현우에게서 넘겨 받았던 프로필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었다. 이제서야 새삼 느끼는 거지만 서류에 박혀있는 놈의 생김새가 영 낯설다. 제법 뚜렷한 이목구비에 범죄와는 담 쌓고 살 것 같아 보이는 서글서글한 인상.
‘하긴, 범죄 저지를 외모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이 얼굴이 자신의 기억 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다는 것. 퇴원 후 구치소에서 봤던 건 분명 이 얼굴이 아니었다. 그때 유리벽 너머에서 놈이 자신에게 뭔가를 ‘말해줬다’고 이야기하던, 그 누군가가 혹시 이 녀석일까? 정황상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자아 이식이라는, 가설로만 세운 능력이 사실로 확인돼야만 맞출 수 있는 퍼즐. 만약 그 퍼즐이 맞다면, 이 프로필 속 얼굴이 그 ‘배후’가 맞다면… 어두컴컴한 골목에서 마주했던 극한의 공포는 이 놈의 작품일 것이다. 구치소에서 만났던 그 놈에게서는 분명 그 정도 공포를 느낄 수 없었다. 잠깐이긴 했지만 눈에 보였던 아지랑이의 색깔도 다르게 느껴졌다.
하지만 만약, 자신과 조우했던 그 순간에 다른 자아가 개입해 있었던 거라면 어느 정도 앞뒤가 맞는다.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자아인지는 둘째로 치더라도 일단 말은 되니까. 한 가지 걸리는 문제는, 게다가 현우에게서 넘겨받은 프로필에는 자아 이식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
골목에서의 그 날을 떠올리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굴욕적이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 저항 때문일까.
“뭐… 미친 범죄자 놈한테는 이쪽 얼굴이 좀 더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네. 아~ 머리 아파. 바람 좀 쐬고 올까나.”
자리에서 일어나 찌뿌둥한 어깨와 허리를 한껏 편다. 창문 밖으로 석양이 나지막히 깔리는 모습이 보였다. 잠깐 구경이나 하고 들어올까 싶어 복도로 나섰을 때, 휴게실 쪽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안 그래?”
“하지만……”
영태와 재한의 목소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회의실에서 재한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니 신경이 쓰인다. 어느새 휘영은 자신도 모르게 벽 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적인 감정이 들어갔다는 거, 부정하지는 않을게. 최 형사가 불안해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팀원이잖아. 내가 팀장으로서 지향하는 게 뭔지 알지? 인간적인 감정을 잊지 말자고. 우린 인간같지도 않은 놈들을 수없이 마주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그렇게라도 서로를 지켜줘야지.”
“그건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느낌이 좀 안 좋아요. 팀원이 하려는 거 도와주자는 취지는 좋은데… 뭔가 불안하달까요.”
“이를테면?”
“일종의 촉이죠. ……솔직히 이런 말씀 드리기엔 좀 껄끄러운데…… 은 형사가 우리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흠……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는 있어. 근데 개인사와 관련된 일이잖아. 그래서 다 오픈하지는 않는 거라고 짐작할 뿐이지. 어차피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보는 이미 다 있으니 구태여 더 캐 물을 필요도 없고. 최 형사 너도 휘영이 성격 알겠지만 어차피 걔, 이 사건 절대 포기 안 할 거다. 그럼 차라리 이렇게라도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오히려 다행 아닐까?”
“사나이 최재한, 이미 팀장님 판단에 따르기로 했으니 한 입으로 두 말 하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해오셨으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안한 건 제가 뒤에서 더 잘 챙기면 되겠죠.”
“그래, 고맙다. 혹시 내가 없더라도 우리 팀은 최 형사가 있을테니 든든하구만.”
“……뭐 그런 재수없는 말씀을 하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인데.”
“음? 재수없다니? 난 승진 이야기한 건데. 너 무슨 생각한 거냐.”
“……”
거기까지 듣고 휘영은 잽싸게 몸을 뺐다. 우스갯소리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 앞의 내용 때문에 영 착잡하다. 가족처럼 생각했던 팀원들에게 의심을 샀다는 점이 계속 마음을 껄끄럽게 긁는다.
“하긴…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해.”
하늘을 올려다보며 스스로를 달랜다. 본의 아니게 팀원들에게 뭔가를 감춘 꼴이 됐지만, 절대 나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근원계라는 세계와 그 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 일반인인 동료들에게는 불필요한 이야기기에 뺐을 뿐. 영태와는 얼마 전 따로 이야기를 나눴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겠지만, 다른 팀원들까지 그걸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솔직히 그럴 필요도 없고.
문득 지홍이 떠올랐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된 이상 그에게도 대충이나마 언질은 줘야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병원에서 만난 후로는 연락한 적이 없다. 퇴원 후 딱히 맡은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녀의 일상을 평온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은 충분히 많았으니까.
“그러고 보니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게 있었는데. 기분도 꿀꿀한데 간만에 안부도 물을 겸 연락해봐야겠네.”
뚜르르르- 뚜르… 달칵-
[늬예~ 전화 받았습니다~]
신호음 두 번이 채 울리기 전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뭐야, 왜 이렇게 빨리 받아? 깜짝 놀랐네… 속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문득 지홍의 목소리에 술기운이 묻어 있다는 걸 알아챈다. 그것도 꽤 진하게.
“……낮술 하세요?”
[어라~? 이게 누구십니까. 참 오랜만이네요~? 네, 갑자기 맥주가 막 땡기지 뭡니까. 그래서 한바탕 마셨죠.]
“꽤 오래 연락이 없길래 무슨 일 생긴 건 아닌가 싶어 전화한 건데… 낮술도 하시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계신 듯하네요.”
[헤에~ 평화롭게? 글쎄요.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뭐죠, 그 의미심장한 말꼬리는.”
[캬~ 일부러 잡아달라고 붙여본 말꼬리인데 역시 딱! 잡아주시네요. 나이스 캐치! 근데 안 알려드릴 겁니다. 저도 윗선에 허락 받아야 하는 일이라서. 근데 뭐… 은 경위님이 신경쓸 부분은 아니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평화롭게~ 피쓰!]
“……아주 제대로 꽐라가 되셨네요.”
술에 알딸딸하게 적셔진 탓인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붙어있는 정나미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말투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신경쓸 부분이 아니라는 그 말이 썩 개운치 않음에도, 일단은 다른 용건이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뭐 어쨌거나 아직까지는 평화롭다고 하시니 안부는 됐고… 저번에 알아봐달라고 부탁드렸던 건 어떻게 됐나요?”
[알아봐…달라고 부탁~? 음… 그게 무…어였죠~?]
“왜 그 있잖아요. 능력 획득의 규칙에 관한 거랑 돌연변이놈 프로필.”
[아? 아, 아아… 그거…?]
“아, 아아… 그거…? 어째 느낌이 불안한데.”
[아직 못 알아봤습니다. 최근 통 머리 아프게 하는 문제가 하나 생겨서요.]
“……뭐죠, 이 대놓고 당당한 태도에 어디선가 자주 들어본 것은 같은 핑계는?”
[전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씀드린 건데요. 은 경위님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지만 저는 되게 신경쓰이는 일이라서… 다른 걸 알아볼 여유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기한 정해놓고 알아봐달라고 하신 건 아니잖아요? 저 요 며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지냈습니다?]
그래, 기한을 정해놨던 건 아니었지. 틀린 말은 아닌데 역시 이 말투에 적응하기는 어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빼도박도 못하게 딱 기한을 정해뒀어야 했다.
“술 마실 여유는 있으신 거 같은데요.”
[아, 이거 마시기 전까지는 말이죠. 어휴, 이제 좀 괜찮네요.]
“시간이 괜찮아졌다는 건가요, 술 취한 게 괜찮아졌다는 건가요?”
[둘 다요.]
솔직히 아직 못 알아봤다는 건 반 정도 거짓이다. 물론, 엄청난 분량의 서류를 살펴보느라 끼니를 거를 정도로 미친듯이 바빴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돌연변이를 키워드로 폭넓게 자료를 뒤지다 보니, 그 와중에 휘영이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알 수 있었다. 그건 지홍 자신도 궁금했던 내용이기에 분명히 기억해뒀었다.
‘섣불리 모든 정보를 오픈하지 말고 더 꼼꼼하게 알아보라는 거. 어떤 경로로든 돌연변이가 근원계로 들어오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작업을 시작하기 전 백현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왜 하필, 알코올 기운이 어느 정도 날아가고 딱 적당히 기분좋은 상태일 때 그 말이 떠올랐던 걸까. 그리고 자신은 왜 자연스레 그 말을 따르고 있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의문이 자꾸 생겨났지만, 방금 전까지 뇌가 술에 푹 적셔져 있었던 탓인지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간단한 것만 알려주지 뭐.
[뭐, 제 문제를 조사하다가 얻어걸린 내용이 좀 있는데, 일단 그거라도 알려드리죠.]
“어떤 쪽에 관한 거죠?”
[능력 획득의 규칙에 관한 겁니다. 돌연변이 프로필 쪽은… 솔직히 이쪽에서도 민감하게 취급하는 부분이라 알아보기가 쉽지 않네요. 보안 수준이 좀 높거든요.]
“네,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삼켜진다. 긁어 부스럼이 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다행히 지홍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 듯하다.
[영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능력이라는 게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랍니다. 음…… 뭐랄까, ‘이 능력을 가진 영은 반드시 이걸 얻게 된다’가 아니라 ‘이걸 얻게 될 가능성이 높다’라는 거죠. ‘규칙’보다는 ‘경향’이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린다고 할까요. ]
“예외가 꽤나 많은가 보죠?”
[아마 그런 듯합니다. 전공 분야는 아니라서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냥 그렇게만 알아두세요. 지금 이 건이 끝나면 좀 더 알아봐드릴 테니까요.]
“네.”
[그나저나,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제 안부까지 물어봐주시는 걸 보니 특별히 큰 일은 없으신 듯합니다만.]
“넘겨짚는 스킬이 발동하신 걸 보니 술이 거의 다 깨셨나 보네요. 뭐, 특별한 일은 없고… 용의자를 하나 잡으러 가려고 준비 중이에요. 제보를 받았는데…… 어쩌면 이 녀석이 제가 찾고 있던 놈일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이 찾던 놈이라는 건 현우를 통해 이미 확인한 내용이다. 하지만 지홍에게는 사실대로 털어놓지 않았다. 확신을 말하려면 그에 걸맞는 정보의 출처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둘의 존재에 연결점이 만들어진다. 현재로서 그건 피하고 싶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탓이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는?]
“근거 없는데요. 그냥 촉이죠.”
[아니, 형사라는 분이 촉으로 수사를 하십니까?]
“어차피 언젠가는 잡아야 할 놈인데 뭐 어때요? 그리고 가끔 그 촉 때문에 거물을 잡기도 하거든요?”
[……뭐, 왠지 어울리네요.]
“……지금 그거 욕한 거죠?”
[아닌데요.]
“아, 왜 이상하게 욕 같지?”
[기분 탓일겁니다.]
앞 전개에서 뿌려놓은 떡밥이 생각보다 너무 많네요. 이래서 사람은 자기 능력에 맞게 사는 게 가장 좋다고 하나 봅니다. 이젠 뒤에다 쓸 말도 별로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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