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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소설] 저 너머의 하늘 #21.

by 이글로

[통화를 연결할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그래, 이렇게 나오시겠다?”


약간씩의 간격을 두고 몇 차례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역시 받지 않는다. 화상통화는 아까부터 계속 사용 중인 상태. 답답했던 마음에서 초조함이 피어나고, 머지 않아 짜증과 분노가 싹을 틔운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려는 후배 지홍. 백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 이 자식.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 거야? 미쳐버리겠네 진짜.”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누구와 화상통화를 하는 건지, 이 사이에 일을 얼마나 더 진행시켜놓으려는 건지, 모든 게 불안해 미칠 것 같다. 그동안 한 팀으로 일하며 쌓아왔던 신뢰와 정도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정말 이대로 끈을 잘라버려야 하는 걸까? 망설임 속에서 백현은 마음을 다잡으려 애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 다 죽나, 하나만 죽나의 차이일 뿐. 그렇다면 길게 고민해봤자 소용없는 일. 답은 정해져있다.


“에라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내 코가 석 자라 소극적으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거든. 따지고 보면 이게 최선이기도 하고…… 뭐, 일단 최대한 노력은 해보겠지만… 방법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냐. 나라도 살아야지.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날 너무 원망하지는 말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백현은 집무실을 나섰다.






“흠? 백현 팀장, 여긴 어쩐 일입니까? 무슨 볼일이라도?”


어지간해서는 먼저 찾아올 일이 없는 인물의 등장. 수석팀장 염훈은 안경 너머 눈가를 살짝 찌푸린다. 그의 경험상 보통 의외의 상황에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용무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불천님을 뵙고 싶습니다.”

“……”


아니나다를까, 염훈으로서는 썩 달갑지 않은 말이 나온다. 알현 요청이라니? 물론 근원계에서 대순환 관리는 매우 중요한 파트다. 하지만 중요한 만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원활한 운영을 위해 팀 구성도 세부적으로 돼 있는 편. 즉,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개 실무 팀장이 직접 보고를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식의 알현 요청을 단순히 ‘이례적’이라는 표현으로 퉁치고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미친 소리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없다. 백현이 맡고 있는 강림팀은 임무 수행에 관한 평가가 우수한 편. 평소 자잘한 소음은 많은 편이었지만, 이런 종류의 굵직한 돌발상황을 만든 적은 거의 없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관리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백현이었기에 지금의 알현 신청을 가벼이 볼 수는 없다. 이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과 책임은 수석팀장이자 불천의 최측근 보좌 중 하나인 염훈, 자신의 일이다.


“그 정도로 중요한 사안입니까? 일단 브리핑을 들어보죠.”

“돌연변이 의심 개체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현 상황과 쟁점에 대해 직접 보고를 드린 뒤, 허가를 얻어 제가 직접 경계를 넘어가고자 합니다.”

“백현 팀장이 직접 경계를…?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시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굳은 표정과 잔뜩 긴장한 모습. 브리핑 내용은 그리 충실한 편이 아니었지만, ‘돌연변이’라는 화제만으로도 이미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선 일이다. 염훈은 빠르게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슨 일이야.]

“대순환 관리 담당 백현 강림팀장이 불천님께 독대를 청해왔습니다.”

[백현이 나를? ……들여보내.]

“무슨 일인지 안 물어보십니까?”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판단했을까. 됐으니까 얼른 들여보내.]

“네, 알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백현은 심호흡을 한 뒤 걸음을 옮긴다. 염훈은 자신의 뒤편에 있는 큼직한 거울을 향해 손짓을 한다. 동시에 거울이 한쪽으로 스르륵 열리더니 널찍한 통로가 나타났다. 한 번도 직접 들어가본 적은 없는 공간.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함에도, 긴장감이 온몸을 촘촘하게 죄어온다.






“웰컴~ 오랜만이야.”


소파에 반쯤 누운 자세의 불천이 손을 흔든다. 백현은 난생 처음 들어와보는 불천의 집무실 광경에 입을 벌린 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문이 나 있는 쪽을 포함해 책과 서류가 빼곡하게 들어찬 벽면이 둘, 거대한 스크린과 복잡해보이는 기계장치가 채운 벽면이 하나. 나머지 한 쪽에는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는 커다란 창이 나 있다. 화려한 가구 같은 것들이 즐비할 거라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인 모습이다.


“와아…”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아, 너 여기 처음이던가?”

“그…렇죠. 제가 불천님 집무실에 와 볼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흠, 하긴. 여기서 나랑 독대할 일이 많은 건 염훈이랑 사고뭉치 월직팀장 정도지. 여기를 처음 와봤다는 건 그만큼 일을 잘했다는 증거야.”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그런데……”


늘어져있던 자세를 고쳐앉으며 불천은 표정을 바꾼다.


“일전에는 올 일이 없었던 녀석이 갑자기, 그것도 제 발로 찾아왔다는 건…… 흐음?”

“……하, 하하……”

“…방금 칭찬한 건 취소해야할 것 같군. 그래, 무슨 문젠데?”


화제와 함께 불천의 분위기도 슬쩍 바뀌었다. 여전히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강하지만, 그마저도 백현에게는 긴장감을 더해줄 뿐. 어느 한 곳에 멈추지 못하는 눈동자가 방 안 곳곳을 빠르게 살핀다. 서가 곳곳에 빈 자리. 근처 바닥에 펼쳐지거나 쌓여 있는 책과 서류. 책상 위에 쌓인 각종 자료들…… 눈치가 제로인 사람이라도 방금 전까지 뭔가 만만치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는 모양새다. 가뜩이나 정신 사나울 때, 그 와중에서도 겨우 짬을 내 쉬고 있을 때 새로운 일거리를 가져오는 것. 어느 누구라도 반가워하지 않을 그런 상황이 지금 백현이 직면한 상황이다. 마른 침이 꿀꺽, 넘어간다.


‘휴우…… 보시던 서류가 이 일과 관련된 것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구만.’

“돌연변이 문제와 관련해 경계를 넘어갔다 올 수 있도록 허가를 부탁 드립니다.”

“……엥?”


기어들어가려는 목소리를 붙잡아 겨우 용건을 끄집어낸다. 한층 더 긴장한 탓에 조금 전 염훈에게 브리핑했던 것보다 내용이 더 부실하다. 하지만…… 핵심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된 듯하다. 불천의 미간이 확 구겨진 걸 보면. 혹시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귀를 한 번 후빈 뒤 다시 꽂혀오는 불천의 시선. 그는 사뭇 진지하게 굳어있는 백현의 표정을 보고는 허탈한 듯 웃음을 터뜨린다.


“허허… 허허허… 그동안 얌전히 잘 하고 있나 싶더니…… 한 방에 핵폭탄급 사건을 가져오네. 니들 혹시 돌아가면서 사고 치기로 합의봤냐? 그럼 다음은 일직팀 차례?”

“……면목 없습니다.”

“하아……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보다시피 내가 좀 일이 많으니 요점만 간추려서.”

“최근 새벽뫼에서도 돌연변이 이슈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불천님도 마찬가지고요. 그 중 하나가 제 휘하 팀에서 맡은 케이스라는 것 역시도 알고 있습니다. 현재 담당 팀원이 취하고 있는 일처리 방식에 위험 요소가 있다고 판단, 제가 팀장으로서 직접 넘어가 매듭을 짓고자 합니다.”

“……휴우우~”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불천은 스크린이 설치된 벽면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지홍의 프로필이 담긴 파일 하나가 화면에 떠올랐다. 불천은 책상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잇는다.


“그 담당 팀원이 혹시 얘냐?”

“……맞습니다.”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딱 쉬기 직전까지 보고 있던 건데, 너 타이밍 끝내준다?”

“……”


불천의 말투는 계속 농담 분위기였지만, 백현은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알 수가 없다. 맞장구 한 번 쳤다가 심기 잘못 건드리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 잘 모르겠을 땐 그냥 쥐죽은 듯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라고, 주문을 외듯 마음 속으로 외친다.


“어디 보자~ 일단 내가 보고 받은 내용으로 미루어봤을 때는…… 뭐 그다지 크게 문제될 건 없어보이는데. 무슨 위험 요소가 있다는 거지?”

“아직 조율 중인 부분이라 최신 내용은 보고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돌연변이 관련 자료를 너무 과도하게 열람 중입니다. 가급적 유선 지시로 처리하려고 진행하고 있었는데…”

“말을 안 듣는다?”

“그…렇다기 보다는 서로 오해가 좀 있는 상태에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후로는 통화가 연결되지 않고 있고요. 직접 만나서 의견 차이를 정확히 확인한 뒤에 가급적 원만한 해결책을 찾고 싶습니다.”

“흠……”


불천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백현은 그 모든 행동 하나도 가벼이 넘길 수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절대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자신이 너무 섣불리 찾아왔던 건 아닐까? 좀 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연락을 취했으면 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불안함과 의아함을 양분으로 한 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결심은 확고했다고,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여겼건만, 자꾸 경솔했다는 후회가 뒤를 따른다.


“너, 경계 넘어가본 적 있었나?”

“관리직으로 넘어온 이후에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 끄응……”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이마에 손을 짚으며 앓는 소리를 내는 불천. 그 모습을 보며 백현은 슬그머니 긴장과 두려움 대신 궁금증을 떠올린다. 그가 보기에 불쾌해보인다거나 하지는 않다. 곤혹스러움 내지는 귀찮음 정도일까? 물론 불천은 백현이 가진 상식으로 논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 턱을 매만지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불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뭐, 대충 예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거, 원래 규정 밖에 있는 일인 건 알지?”

“네. 그래서 불가피한 상황에만, 불천님의 직접 허가 하에만 진행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짜식, 매뉴얼은 잘 외우고 다니네. 뭐, 내 허가 없이도 막 드나드는 인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네?”

“아무 것도 아냐. 아무튼, 왜 그런 건지 이유는 알고?”

“……그것까지는 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불천은 피식 웃는다.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공식적인 루트. 그건 대순환로 하나 뿐이야. 기억을 정상적으로 유지한 채로는 통과할 수 없다는 게 원칙이지. 영을 기반으로 한 근원계 존재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절대 원칙.”

“그렇군요. 어? 가만…… 그렇다면 기억 누적 프로젝트는…”

“알다시피 원칙이라는 놈이 말이지. 이것저것 만들어놓다 보면 지들끼리 막 부딪치고 그러거든. 그럼 충돌하는 것들을 앞에 놔두고 결정을 해야 하지. 어느 것을 우선시할 건지. 기억 누적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야. 그 결과로 나온 게 새벽뫼에서 진행하는 기억 봉인 시술이고. 밖에서 보기엔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기억을 삭제하는 거랑 비슷한 효과를 내거든. 뭐, 그렇게까지 해서 내려보냈는데 돌아올 때까지 봉인이 안 풀려버리면…… 그냥 엿 되는 거고.”


거칠 것 없는 불천의 표현에 무심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솔직히 웃어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기엔 불천이 여전히 어렵다.


“너무 얼어있어서 좀 웃으라고 던진 건데. 별로 안 웃긴가.”

“아, 아닙니다. 그냥 막 웃기가 좀 그래서…… 그나저나 그…… 예외가 없다는 건…… 혹시 불천님도 해당되는 겁니까?”

“그건 비밀이지롱.”

“……풉.”


뱉어놓고 순간 아차했던 질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한 웃음. 요놈의 주둥이가 방정이라며 백현은 울상을 지었다. 불천은 농담으로 받아치고는 희희낙락한다. 골탕먹이는 재미가 쏠쏠한 녀석이다.


불천 입장에서 방금 백현이 했던 질문은 과거에도 수없이 받아본 것이다. 사실상 그 누구라도 궁금해할만한 부분이니까. 그걸 알리 없는 이 녀석은 지레 잔뜩 긴장해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원맨쇼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재미있을 수밖에. 자기 입을 때리며 뭐라고 중얼거리던 백현은 곧 자세를 추스르고 질문을 이어간다.


“어…… 하지만 현계에서 활동 중인 실무자들은 기억을 보존한 채로 왕래하지 않습니까? 저도 예전에 실무자 생활할 때 왔다갔다한 적이 있고요. 가끔이긴 하지만.”

“아, 그건 원리가 좀 복잡한데…… 쉽게 말하자면 걔들은 한시적으로 저쪽 세계에 귀속되는 거라고 보면 돼. 여기 규칙이 좀 느슨하게 적용되는 상태라고나 할까. 나로서는 상당히 불만스럽지만, 어쩌겠어. 딱히 방법이 없는데.”

“잘 이해가 안 됩니다.”

“나도 몰라, 인마. 해강현 그 노친네가 정립해놓은 이론인데 겁나게 어렵거든. 그나마 이것도 백 번 정도 읽은 다음에 나름대로 이해한 거야. 더 설명하기도 귀찮고 그럴 능력도 안 되니까 나중에 시간 있으면 직접 관련 자료 한 번 찾아봐. 아마 날 샐 각오 하고 봐야겠지만.”

“……넵.”

“어쨌든 중요한 건, 경계를 넘어가려면 너도 원칙대로 해야 한다는 거거든. 그래서 나한테 직접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거고.”

“그 말씀은…… 기억 봉인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건가요?”

“당연히 마련은 해 뒀지. 간단하게 원리만 설명하자면, 경계를 넘어가고자 하는 대상의 영에 한시적 보호막 같은 걸 씌우는 거야. 어차피 영만 보존되면 기억 자체에는 이상은 없으니까. 새벽뫼에서 쓰는 봉인이 합금 철판으로 정밀하게 감싸는 거라면, 이건 투명한 유리막 하나를 씌우는 정도랄까?”

“……저……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백현이 쭈뼛거리며 뭔가 말을 꺼내려하자 불천은 뭔지 안다는 듯 가로막는다.


“안전한 거냐고? 하아, 다들 그거 물어보더라. 인마, 문제가 있었으면 내가 여태껏 같은 방법을 쓰고 있겠냐? 짜식이 날 뭘로 보고.”

“아, 그렇겠네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고. 아, 맞다. 근데 부작용은 하나 있어.”

“에…… 무… 무엇인지……”

“별로 치명적인 건 아니고… 경계를 넘어가고 나면 능력이 다소 제한될 거야. 영의 내용은 보존돼도 그걸 밖으로 끄집어내려면 보호막을 깨야 하는 셈이니까.”

“넘어간 뒤에는 깨도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럼 돌아올 땐 어떡하게? 내가 쫓아가서 다시 보호막 씌워 줄까?”

“아……”


불천은 혀를 끌끌 찬다. 역시 수없이 들어봤던 질문이긴 하지만, 이 녀석이 하니까 한결 더 한심해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머리 쓰는 쪽으로는 영 둔한 녀석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일까.


“그럼 능력은 어느 정도로 제한되는 겁니까?”

“다 달라. 매번 비율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당최 어떤 법칙인 건지 아직 파악이 안 된단 말이지. 새벽뫼도 요즘 너무 바빠서 이 문제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있고. 지금까지 보니까 대충 본래 능력의 10분의 1밖에 발휘 못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

“……에……”

“흠, 너같이 전투력만 무지막지하게 센 타입은 자칫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수도 있겠다. 힘이나 속도, 모든 게 10분의 1로 줄어들어버리면… 아, 체력도 줄어드는지는 가물가물하네. 혹시 또 모르지? 최소 비율 기록을 네가 새로 쓰게 될지도. 이를테면 100분의 1이라든가.”

“……그럼 충분히 치명적인데요. 재수없으면 길 가던 꼬맹이한테도 맞아죽을 수 있다는 거 아닙니까?”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는 아닐…걸…?”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요.”

“0%는 아니지. 이론적으로. ……아니 근데 짜식이? 솔직히 이 정도 리스크는 감수해야 하는 거 아냐? 원래 안 되는 걸 편법으로나마 하게 해줬더니 되려 불만이냐? 아니꼬우면 네가 직접 하든가.”

“아, 아닙니다.”

“아무튼, 어때. 그래도 갈 거냐? 난 웬만하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데.”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요.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일 듯합니다.”

“정 네 판단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까딱까딱. 손짓에 따라 백현은 가까이 다가섰다. 불천의 손이 그의 머리에 닿는가 싶더니 낯선 기운이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기분이 든다. 하마터면 본능적으로 몸을 뺄 뻔했다. 시술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천의 다른 한 손이 허공을 휘젓자 집무실 한 쪽의 공간이 일렁이며 문이 생겨났다.


“오……”

“뭘 새삼스레 감탄하고 그래? 어차피 저쪽 세계와는 맞닿아 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저희는 늘 정해진 통로로만 다녔으니까요.”

“그거야 일부러 제한해놓은 거니까. 여기저기서 마구잡이로 경계 넘나들어봐라. 이쪽 저쪽 혼란스러워지는 건 둘째치고 영 아작났다고 징징대는 애들 천지일걸.”

“하긴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이 문은 어디로 통하는 겁니까?”

“저 팀원 만나러 간다며? 걔 사는 곳 근처로 열었어. 그 동네 어디 으슥한 곳에 떨어질 거야. 걔가 너 몰래 어디 야반도주하지 않았다면 만나는 건 어렵지 않겠지.”

“배려 감사합니다.”

“넘어가게 되면 능력 제한 비율부터 체크하고 적당히 몸 사려라. 간만에 찾은 재밌는 놈을 허망하게 잃고 싶지는 않거든.”

“……칭찬과 격려로 듣겠습니다.”

“결심했으면 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다녀와라. 아무쪼록 좋은 결과를 가져오길 바란다.”


허공에 생겨난 문을 열자 형형색색의 혼돈이 그를 맞이한다. 선뜻 발을 내딛기가 꺼려지는 건 왜일까. 이 낯선 혼돈 자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문을 넘어선 뒤에서나 알 수 있을 현실적인 리스크 때문일까.

하지만 고민할 여유는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물러섰다간 불천에게 바로 맞아죽을 테니까. 이게 최선이라고, 백현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혼돈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밤새서 분량 채우고 잠깐 기절했다가 일어나서 퇴고 한 번 하니 벌써 점심 때가 돼 가네요. 졸려서 기절할 거 같은데 일단 배는 좀 채워야겠습니다.

아마도 다음 편은 새해가 돼야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예측 중입니다. 졸필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새해 복을 한가득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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