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지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는 거냐. 거기 보내준 이유가 그게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불천의 목소리에는 언짢음이 묻어 있다. 백현의 보고는 이유 없이 무조건 연결하라고, 염훈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려뒀었다. 경계를 넘어가는 것은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손을 적게 거치고 싶기도 했고, 그 외에…… 혹시나 지금 매달리고 있는 돌연변이 문제에 관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뭔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경계 너머로 가는 문을 열어준 뒤로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불천 자신이 ‘뚱딴지같은’ 말이라 지칭한 것은 내심 기다리던 그 ‘뭔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불쾌감이 먼저 느껴졌을까? 본능은 언제나 이성보다 빠르다. 그래서 논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때때로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 존재하기도 한다. 그럴 땐 방법이 없다. 가장 그럴싸한 추측만 갖다 붙일 뿐.
‘하필 딱 그 생각을 하고 있는 시점에 이 놈이 연락을 해왔다는 게 문제겠지. 마치 내 생각을 읽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생각의 통제가 이루어질 겨를도 없이 튀어나온 반응. 낮은 온도가 서린 말투는 그의 지고한 위상, 묵직한 권위와 맞물려 필요 이상으로 충실한 효과를 내고 말았다.
[아… 저… 그게…]
백현은 말을 더듬는다. 뭔가 실수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잔뜩 담겨있다. 불천의 말마따나, 지금 그는 원래 목적과 어긋난 보고를 하고 있다. 본래 임무 외에 불천이 내심 기대하는 게 있었다지만, 그걸 직접 말해주지는 않았으니 알 턱이 없다. 그러니 별 수 있나. 일단 내질러놓은 말을 곱씹으며 잘못한 게 없는지를 찾는 게 최선이다. 뭘 찾기에도 너무 짧은 말이라는 게 문제지만.
아! 앞뒤 잘라먹고 대뜸 본론부터 말한 게 잘못이려나?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란 놈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퍼뜩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때때로 이성을 앞지를 만큼 성급한 대담함을 일으키기도 하니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백현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는 걸 느낀다. 그럼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야 경계 너머에 있는 이 절대자 양반의 심기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릴 수 있지? … 답이 없다. 도무지. 의문이 이어질수록 머릿속 백지의 농도는 더 진해져만 간다.
표정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이루어지는 대화. 주고받은 정보가 거의 없는 시점에서 양쪽은 서로 판이하게 다른 생각을 이어나가고 있다. 꽤 오랫동안 계속되는 침묵. 그제야 불천은 자신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어떤 상황을 만들었는지를 깨닫는다. 백현 녀석은 아마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었을 것이다. 푹- 한숨을 내쉰다.
‘후우~ 이래서 평소 이미지라는 건 중요하단 말이지… 악역을 맡은 입장이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역시 귀찮은 건 귀찮은 거야.’
[……]
“얌마.”
[네? 아, 네.]
“이거 참… 미안하게 됐네. 방금 전에 언짢은 일이 좀 있었던 차여서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 버렸어.”
[아… 그, 그러셨… 습니까.]
“뭐…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그러니까 괜히 쫄지 말고… 방금 그거, 다시 차근차근 이야기해 봐. 뭔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네, 네..… 그게… 그러니까… 일전에 절 따로 불러서 ‘사라진 영’에 관한 걸 물어보셨던 적 있잖습니까?]
“그래, 그랬었지. 근데 그게 왜?”
[그때 제가 말씀드린 내용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수월하실 겁니다.]
“흠… 네가 초기 프로젝트 때 맡았던 케이스가 습격받았던 일 말인가? 그때 네가 봤던 게 돌연변이가 아니었을까 뭐 그런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맞습니다. 그런데… 방금 전에 제가 비슷한 ‘향’을 감지했거든요. 멀리서 그 자식을 봤을 때 느꼈던 그거랑 비슷한 향 말입니다.]
“……비슷한 향? 어디서 그런 걸 감지해?”
[에… 그러니까… 여기가 지금 경찰서라는 곳인데요. 여기 현상수배 전단이라는 게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더라고요. 뭐 이놈저놈 여러 개 붙어있긴 한데 이 자식은 특히 크네요. 뭔가 큰 죄를 지은 놈 같습니다.]
“경찰서에 현상수배 전단이라… 그래, 뭔지 대충은 알 것 같군. 한때 이쪽에서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한 적이 있으니까.”
[흔적이 느껴지기에 봤더니 이상하더라고요. 제가 알기로는 지금 대순환에 올라있는 영 중에는 이런 놈이 없는데 말이죠.]
“그래, 정확하진 않지만 내가 알기로도 수배까지 돼 있는 케이스는 없어. 그렇다면 돌연변이는 맞는 거 같고. 중요한 건 네가 봤던 그때 그놈이 맞는지 아닌지가 되겠군. 헌데… 얼굴을 직접 본 게 아니라 그, 뭐시냐. 그림? 몽타주? 아무튼 그걸 봤다는 거지?”
[음… 사진… 같던데요?]
“아무튼 결국 직접 본 건 아니라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흐음… 잠시 생각 좀.”
애매하다.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도 같은데, 딱 이거다 싶은 감은 없다. 백현이 ‘향’이라 언급한 것은 ‘영체’가 남긴 흔적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다. 영체는 근원계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개념이기에, 각각의 영체가 남긴 흔적은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새벽뫼에서 보관하게 돼 있다. 즉, 어떤 흔적을 감지 또는 발견했다면 그 영체의 아이덴티티는 새벽뫼의 DB에 대조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돌연변이라면 문제가 달라지지. 그들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체. 즉, 공식적인 기록이 없는 존재다. …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복잡하고 성가신 일이 되겠지.’
게다가, 백현이 느꼈다는 흔적은 평면 위에 옮겨진 모습에서 나온 것. 2차원과 3차원이 투영하는 세계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X와 Y,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 평면에 표현된 무언가를 Z축까지 반영된 이른바 ‘입체’로 옮겨놓으면 확실히 다른 느낌을 주게 마련이니까. 같은 원리로, 평면으로 가공된 모습에서 감지해 낸 흔적과 실물로부터 직접 느낀 흔적은 서로 다른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꽤 높다.
평면 위에 표현되는 모습에는 직접 대면한 제 3자의 기억과 표현이 상당 부분 반영된다. 사진일 경우, 어떤 용감한 제보자가 찍어서 보내준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공공기관의 협조를 받아 확보한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사진을 찍은 장본인이 제 3자로서 개입하게 된다.
몽타주일 경우, 목격자의 기억, 느낌, 표현을 토대로 만들어지곤 한다. 몽타주는 대개 실제 모습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지만, 엄밀히 따져서 100% 일치하는 건 아니다. 이 경우, 목격자와 몽타주 작성자 모두가 제 3자로서 개입하게 된다.
‘만약 사진이든 몽타주든 그 작업 과정에 투입된 제 3자가 만약 근원계로부터 영체를 배정받은 케이스라면? 당연히 그가 남기는 흔적도 섞이기 십상이다. 그게 아니라 해도 흔적 자체가 왜곡될 수도 있고.’
‘흔적’이라고 표현은 하지만, 실제로 발견하기란 무척 어렵다. 비유하자면, 수학이나 화학에서의 이론으로나 다룰 만큼의 매우 미세한 입자일 때가 대부분. 때문에 이를 확실히 감지할 수 있고 구분해 낼 수 있는 계통의 능력이 발달한 것이다.
하지만 이 백현이라는 놈은 태생적으로 감지 계통 능력이 시원찮은 타입. 영체의 대부분이 전투능력 쪽에 집중된 전사 스타일이다. 비록 인도자로서 교육과정을 모두 마쳤고, 지금은 대순환 관리 부서 산하의 팀장 자리를 맡고 있다지만, 전투 쪽에 특화된 성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전사 타입의 녀석들은… 높은 확률로 머리나 감각 쪽은 젬병이지. 그런데도 이 자식… 그때 목격했던 것에 대해서는 자신만만했단 말이야. 정말 그 미묘한 흔적을 제대로 잡아낸 걸까? 단순히 그 사진을 찍은, 혹은 게시판에 옮겨 붙인 누군가의 흔적인 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영 미덥지는 않다. 그러고 보니 이야기를 들을 당시엔 그러려니 넘어갔었는데, 이 둔한 놈의 기억 자체는 확실한 걸까? 기록으로 남겨둔 일지조차도 결국은 백현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니 확신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단지 흔적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구별하는 것만이 문제라면 확인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근원계 내에 감지/판별 쪽 능력이 우수한 이들도 얼마든지 있었고, 무엇보다 불천은 이 분야에 관한 한 100%의 적중률을 가진 권위자를 알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문제의 본질은 그게 아니지. 백 번 양보해서 백현이 느낀 흔적이 그 돌연변이 놈의 것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 녀석과 사라져 버린 영은 또 어떻게 연결해야 하지? 아직 풀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
여기까지만 봐도 변수가 너무 많다. 불확실한 것이 많다는 건, 논리적 오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 근원계 질서의 총괄자 입장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의심은 예외 없이 또 다른 의심을 낳는다. 그 번식 속도는 혼자 힘으로 감당하기 벅찰 때가 많다. 부족한 데이터만 가지고 논리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데이터 자체에 대한 의심은 문제를 계속 혼돈 쪽으로 몰아간다.
“흐으으음… 복잡하군. 일단은 관련 자료를 다시 한번 검토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어. 뭐… 덕분에 방향 정도는 감을 잡았군. 고맙다.”
[헤헤, 별말씀을요.]
“혹시 또 뭔가 정보가 될 만한 게 있으면 연락하도록. 가급적이면 좀 여러 건을 모아서 주면 좋겠어. 정보라는 건 덩어리가 클수록 새로운 뭔가를 찾아내기가 수월한 법이거든.”
[옙,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자마자 엄청난 깊이의 한숨이 치밀어 오른다. 몸속을 몇 바퀴쯤 돌고 나온 듯 진득하고 농후한 한숨. 많은 게 불확실해서 의심이 끊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으로서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첫째, 사라져 버린 영에 어떤 고의적인 개입이 있었다. 둘째, 그 장본인 또는 관련자가 지금까지 근원계의 이목을 피해 살아있었다. 셋째, 거기에다… 백현의 팀에서 보고된 오류 케이스가 그 녀석과 관련돼 있다…?”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오는 전개다. 더 짜증 나는 건, 이 최악의 시나리오가 매우 그럴듯하게 아귀가 맞아 들어간다는 거다. 셋 중 하나만 현실화 돼도 보통 일이 아닌데, 세트메뉴로 함께 붙어서 온다면 엄청난 폭풍이 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가정은… 지금까지 올라온 오류 보고를 통틀어 생각하면 가능성이 아주, 매우, 무척, 굉장히 높아 보인다.
“하아… 기억 누적 프로젝트 대상자는 정말 철저하게 관리해 왔다고 자부했는데… 대체 어쩌다 이런 문제에 말려든 거냐.”
아주 오래전 있었던 비밀스러운 실책과 비교적 최근 환생해 프로젝트 대상자로 선정된 이 케이스를 같은 눈높이에 놓아본다. 둘 사이에 공통점이나 연결고리가 있나? 불천 자신이 보기엔 없다. 아니, 없다고 믿고 싶은 걸지도.
하지만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과 그것들이 자아낸 통찰력과 감각. 불천의 온몸이 날카로운 경고를 보내온다. 뇌리를 맴돌던 불안한 가설에 마지막 온점이 찍힌다. 도무지 그대로 앉아있기 힘들 정도의 불안감. 결국 불천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체면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이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를 찾아갈 때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출타 중이십니다.”
“외부로 가셨나?”
“아뇨,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언제 돌아오신다는 말씀은 없으셨고?”
“예. 특별히 언급하신 바는 없습니다.”
“알겠네.”
고심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종종 있는 일이라 오는 동안에도 가능성을 타진했었지만, 대개 길지는 않았다. 오늘처럼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는 건 흔치 않은 상황.
‘정말 뜻대로 되는 게 없군. 최근 보고되는 오류 건수가 많다는 걸 모르실 리가 없는데… 또 뭔가 다른 구상을 갖고 계신 것인가.’
고개를 흔들어 의문을 떨쳐버린다. 그 혜안이 어디까지 닿아있는지, 그 통찰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불천 자신의 능력으로는 짐작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던가. 당분간 수시로 찾아와 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날 찾아왔다는 건가?”
해강현은 읽던 책에서 눈길도 떼지 않으며 건조한 말투로 묻는다.
“내 선에서 찾을 수 있는 두 번째 권위자는 자네잖아?”
“고약한 인사 같으니… 내 방식은 그분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잖나? 난 가장 그럴듯한 결론을 내놓을 뿐이야. 그분은 그냥 ‘알고’ 계시는 거고.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비교하는 건 아니지. 뭐… 그래도 결과 쪽만 놓고 보면 별로 다를 바 없지 않아? 특히 적중률 면에서는.”
엄지를 척 들어 보이는 불천을 보며 해강현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렇게 불경한 소리 지껄이는 것조차 다 알고 계실 텐데.”
“괜찮아. 기어오르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난 선은 잘 지키는 편이라서.”
“하여간에… 그건 넉살이 좋은 건가? 아니면 뻔뻔한 건가? 아무튼… 자꾸 이런 식으로 다른 일거리를 가져오면 곤란하네. 시켜놓은 일은 꼬박꼬박 독촉하면서.”
“어차피 그 일과 관련된 거잖아? 내가 알았다면 자네도 곧 알게 됐을 내용이고, 그럼 그 성격에 안 시켜도 확인하려 들었겠지. 아냐?”
“……뻔뻔한 쪽이 맞는 것 같군. 오지랖도 꽤 많이 는 것 같고.”
“부정하지는 않겠네. 아무튼 그래서, 내 가설에 대한 자네 의견은?”
“몇 분 전에 말해줘 놓고 벌써 결론을 내놓으라는 건가?”
“지금 생각하면 되잖아. 얼마 안 걸릴 거면서. 기다리겠네.”
“에잉……”
해강현은 툴툴거리며 읽고 있던 책을 덮은 다음, 의자 등받이에 기대 팔짱을 끼고 눈을 감는다. 한 가지 생각에 깊이 파고들 때는 시각으로 들어오는 자극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리 오래 생각할 필요는 없는 문제다. 위치상 해강현이 두뇌집단의 수장이라고는 하지만, 불천 역시 논리적인 부분을 풀어가는 일에서는 발군의 능력을 지닌 자. 해강현이 더 할 수 있는 일은 불천이 앞서 풀어놓은 전개에 허점은 없는지, 좀 더 가능성이 높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지는 않은지를 검증해 보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딱히 비약은 없다. 지금까지 보고된 이상현상의 세부적인 내용과 그걸 토대로 검토한 자료들, 그리고 오늘 가져온 단서를 더한다면… 아마도 그 경찰 아가씨 주위에 범죄자의 거죽을 뒤집어쓴 돌연변이가 있다는 건 거의 100%라고 봐도 되겠군.
최근에 접촉한 적이 있다는 그놈은… 아마 백현 그 친구가 봤다는 수배 전단 속 인물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터. 어쩌면 본인일 수도 있겠고. 그렇다면 그때 접촉에서 경찰 아가씨가 크든 작든 영향을 받았다는 건 기정사실일 테고. 대체 왜 그 아가씨에게 집착하는 건지가 의문이지만 지금으로서 그건 별개 문제고… 허어… 그나저나… 이렇게 되면 다른 문제가 또 생기는데……’
해강현은 바로 얼마 전, 제자 지홍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지홍은 휘영이 돌연변이와 무관하다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 또한 지지해 주겠노라 했지만, 불천이 생각을 굳히고 나온다면 대놓고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다. 그 믿음과 적극적인 태도를 고려했을 때, 어쩌면 지홍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수를 둘지도 모른다.
‘어쩌면…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네는 어떤 선택을 할 텐가?’
예상했던 것보다 시간이 걸리자, 참다못한 불천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오래 생각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다른 문제가 있나?”
“아니. 아주 그럴듯하네. 맹점이 있다 해도 결과는 오차범위 내일 거라 생각하네.”
“그런데?”
“성질 급한 건 여전하군. 뻔해 보이는 문제일수록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거야. 우리가 다루고 있는 바로 이 문제만 해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법칙을 부정한 뒤에야 단서를 찾은 게 아닌가? 자네의 이 가설도 기존 법칙을 뒤집어엎고서 쌓아 올린 거고.”
“뭐… 그렇긴 하지. 그래서 자네의 결론은?”
“거의 확신에 가깝기는 한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시간을 조금만 더 주게. 빠른 시일 내에 답을 주도록 하지.”
“… 또 나 몰래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의심되면 관두고 가서 내키는 대로 하시던가.”
“아냐, 아닐세.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군.”
“기껏 결론 냈는데 바쁘다고 미뤄두지나 마시게.”
불천이 떠나고 나자 해강현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문제가 아주 고약해졌다. 최종 결정권을 지닌 자가 여기까지 추적해 왔다면, 더 이상 지홍의 뜻을 비호해 주는 건 어려울 것이다.
“고작 며칠 시간 벌기라니… 그마저도 백현 그 친구가 뭔가를 더 발견하기라도 하면 아무 의미도 없겠구먼. 자…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자네는?”
슬슬 초반에 예정해 뒀던 장면들이 나올 때인데…
생각은 저만치 가있고 글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이 기분.
에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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