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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경 Jun 27. 2019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 쓴다.

꿈을 꾸다가 꿈속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꿈이라는 걸 자각하고 스스로 깨어난 적이 있는가. 지난밤이 그랬다.


    꿈이었는데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는 게 뭔지 알 정도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빨리 뛰어서 이 자리를 모면해야 하는데 바닥에 부딪히고 있는 내 신발 소리가 더 크게 울려야 하는데 심장 소리만이 쓰러지기 직전인 내 몸에 들리는 유일한 소리였다.





    나는 꿈에서 아빠에게 쫓기고 있었다. 아빠가 방에 들어간 사이 이미 어른이었던 나는 마찬가지로 어른인 작은오빠와 몰래 집을 빠져나와 차를 타고 도망치고 있었다. 이미 술에 꼴았던 아빠는 역시 우리를 잡겠다고 차를 끌고 나와 우리를 쫓기 시작했고 나는 왜인지 작은오빠 차에서 떨어져 나와 있었다. 아빠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나 익숙했던 모든 만악의 근원지인, 우리가 이십여 년을 살았던 동네를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선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 뛰다가 갈림길이 나오면서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선 아빠가 내가 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뛰어야 한다 생각했다.



    다시 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앞을 지나쳐 골목 끝 계단으로 내려가 역시나 차가 들어오기 힘든 골목으로 빠져나가면 끝이라 생각했다. 그곳에서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오빠와 연락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참, 꿈이었는데도 나는 미친 듯이 살기 위해 머리를 굴려댔다. 아빠에게 잡힌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닌데. 집 앞을 지나치는 그 짧은 골목을 지나가는데 그렇게 심장이 울려댔다. 다리는 점점 마비되듯 움직이지 않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귀를 지배했다. 나는 마음만 조급해져 이대로 쓰러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게 꿈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고 깨려고 했다. 짜증스러운 소리를 질러대며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도 한참을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감정이 그대로였다.





    몇 시간 후 엄마와 통화를 했다. 도피처로 별안간 떠났던 아빠가 다시 별안간 돌아왔다고 했다. 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짧게 했다. 엄마는 웃는다.


    나는 종종 이런 아빠 꿈을 꾼다. 내가 너무 힘들어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는 꿈을 꾼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내 꿈 이야기를 들으면 웃는다. 할 말도 할 반응도 없어서일까. 함께 그 상황을 겪은 사람이 아니면 웃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런 꿈 이야기에 웃는 반응을 하는 엄마가 어색하다.









    사실 요즘 쓰고 있는 예전 이야기는 정말 예전 이야기이다. 아빠는 그때와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약해져 있다. 더군다나 최근 일이 년 사이에 부쩍 기력이 달리는지 지르는 소리가 꽤나 약해졌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도 현재 진행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꿈에서는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일이라고 그래도 찌꺼기로 남은 내 이야기를 쓰는 거라고 하면서 쓰지만, 사실은 아직도 내게는 현재 진행형인 거다.





    생각보다 정말 가장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는 많이 잊고 산다. 어찌 보면 가장 아빠가 예뻐했다고 할 수 있는 자식인 나는 잊지 못하고 산다. 친구들은 내가 유치원도 다니기 전 시절까지 기억하는 걸 신기해한다. 큰오빠도 작은오빠도 세세하게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나를 신기해한다. 특히나 아빠에게 가장 많이 맞고 힘들게 살아온 큰오빠는 어린 시절을 모두 지운 듯이 아무 기억이 없기 때문에 나를 더 신기해한다.






    나는 생각한다. 기억하는 사람이 남겨야 한다고. 지나간 일이지만, 이제는 그래도 겉으로는 웃는 척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남아있다고. 지금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라고.



    나는 기억한다. 그래서 쓴다. 쓰면서도 지겹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 지겨워 죽을 때까지 써보련다. 더 이상 쓸래야 쓸 거가 없을 때까지. 그리고 나면 다른 것들을 쓸 수 있을 거다.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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