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매]
내 침실은 작다. 원체 침실에는 침대와 그 곁에 두는 작은 협탁 말고는 아무것도 놔두고 싶지 않다. 그래서 이사하고 처음 집안 배치를 할 때 가장 작은 방을 침실로 하는 편이다. 삶에 있어 자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깨어있는 시간만큼 자는 시간도 중요하고, 간혹 때에 따라서는 깨어있는 시간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다. 내 몸과 마음이 회복을 원하는 상황이거나, 의식을 차분히 안정시켜야 하는 날에는 깨서 무엇을 하는지보다 방해과 개입 없이 집중하여 푹 잠들 수 있는지가 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작업실만큼이나 침실에도 신경을 쓰는 편이다.
사실 내게는 책상, 소파, 침대가 모두 중요하기는 하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는 책상. 일과 사이 잠시 나를 내려놓고 숨을 돌리거나 편안한 취미를 향유할 수 있는 소파. 그리고 오늘까지 쌓아온 나를 무사히 내일의 나에게 건네줄 수 있는 침대까지. 내 기준에 집에는 최소한 이 세 가지 가구가 있어야만 집이 된다. 정확히는 가구 두 개와 과학 하나지만. 냉장고도 세탁기도 꼭 필요하지만, 행거도 에어컨도 없으면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것들보다 먼저 ‘똑바로 앉을 수 있는 곳’과 ‘가벼이 기댈 수 있는 곳’, 그리고 ‘편히 누울 수 있는 곳’은 집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자 최저 조건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있어야 나는 매일 조금씩 더 소모되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삶을 살 수가 있다. 그저 반복일 뿐인 삶이 아닐 수 있다. 인생의 세 토막 중 두 토막을 세 가지가 모두 있지 않은 집에서 살아보고, 나머지 한 토막을 세 가지 모두 가진 채로 살아본 결론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아서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고, 베개 여러 개를 쌓아놓은 소파에 잠시 기대어 책이든 영화든 보다가, 깔끔하게 단장한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숙면을 취하는 일은 어제와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나를 어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최소한, 어제보다 못한 인간으로 소모시키지는 않는다.
그중 침실은 유독 특별하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서 중요하기도 하지만, 작업실과 거실에 비해 침실은 유일하게 다른 목적이 없다. 책상이 있는 작업실에서는 혼자 밥을 먹거나 가끔 술을 마시기도 한다. 소파가 있는 거실방에서는 옷을 갈아입거나 운동을 하거나 손님을 응대하기도 한다. 허나 침실에서는 잠을 잘 뿐이다. 잠을 자는 일 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마치 화장실처럼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 화장실에서 밥을 먹지 않듯 침실에서도 다른 일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클 필요가 없는 것도 맞지만, 오히려 크지 않은 편이 더 좋기도 하다. 작은 방에 침대 하나, 그 곁에 무드등과 스마트폰 충전기를 올려둘 작은 협탁 하나. 이것으로 충분하다. 반대로, ‘잠’이라는 행위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이것만 있어야 한다. 물론 현재 나는 여벌 이불을 보관하는 수납 상자와 TV를 가져다 놓기는 했다. 원래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다. 단지 떠맡기듯 가져오게 된 실내용 싸이클 머신 자리를 마련하느라 그나마 빈 공간인 침실로 건너왔을 뿐. 허나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침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늘었다. 자려고 누웠다가 곧장 잠들지 않으면, 그 시간이 몇 십 분쯤 늘어지면 더듬더듬 리모컨을 찾고는 한다. 혹은 일단 TV부터 틀어놓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셋톱박스가 없어 지상파 방송은 볼 수 없어도 스마트 TV 자체만으로 어쩜 이리도 편리한지. 가입해놓은 OTT나 유튜브의 목록을 훑기만 해도 1시간은 쉽게도 지나간다.
그러다 보니 생전 안 하던 행동도 하게 된다. 나는 원래 침대에서 음식물을 먹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한다. 과자든 음료든 식사든, 어떤 음식물도 침대 위에서는 먹지 않았다. 면을 먹다가 쿠션으로 삼는 베개에 빨간 기름이라도 튀기면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려고 턱 끝까지 이불을 덮었을 때 원래 나야하는 섬유 유연제 향 대신 어설픈 음식 냄새라도 배어 있으면 그 역시 거슬렸다. 패드 위에 손을 올렸는데 자잘한 과자 가루라도 잡히면 잠이 화들짝 깼다. 원래 유난히 깔끔을 떠는 성격도 아니고 집안을 항시 청결하게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침대만은 그랬다. 외출복을 입고 집 안 어느 소파나 의자에 앉지 않기 위해 실내복이 따로 있고, 실내복을 입고 침대에 눕지 않기 위해 잠옷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침대에서 뭔가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은 가벼운 과자나 음료였지만, 최근에는 아예 식사를 할 때도 있다. 침대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기만 하는 공간이었을 때는 절대 하지 않았던 일을, TV도 보는 공간으로 목적이 확장되는 순간 이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잠들기 전에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씩 감기는 눈을 비비며 영화를 보다가 이윽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어둡고 고요한 방 분위기를 사랑한다. 가끔 그 풍경이 외로울 때도 있지만 대체로 나만의 작은 영화관 같아서 만족스럽다. TV를 끄고, 눈을 감은 채 방금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을 갈무리하면서 잠드는 일은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하루의 마무리 중 하나다. 이때의 영화는 소파에서 보는 영화처럼 '영화를 보는 일'보다는 마치 수면 안대처럼 '잠들기 전에 하는 일'에 가까웠다.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수면의 영역이었다. 다만 거기까지만. 딱 그 정도의 목적과 의미까지만 괜찮다. 반면 지금처럼 침실에 둔 TV로 '영상을 보는 일'까지 한다면, 그 와중에 음식마저 침실 문턱에서 거르지 못하겠다면 나만의 작은 영화관을 위해 놔둔 TV도 결국은 철거해야 한다. 나는 용도에 따라 구역을 명확하게 나눠야 말끔히 살 수 있는 사람이다. 목적에 의해 분리한 장소가 이런 식으로 하나씩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언젠가 화장실에서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러니 혼동하지 마라. 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가부의 의미를 미리 정해놓고 살아야 잘 살 수 있지, 일단 아무렇게나 하고 나서 뒤에 의미를 덧붙이면 삶이 점차 엉망이 된다. 스스로에게 나태하고 타인에게 오만한 인간이라 그런 방식은 적합하지 않다.
25.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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