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령.”
“응.”
“사람은 왜 자꾸 뭔가를 만들어내는 걸까?”
“글쎄. 사라짐이 두려워서 그런 거 아닐까.”
“사라지는 게 왜 두려워?”
“…아기씨는 왜 밥을 먹어?”
“배고프니까 먹지.”
“그럼 배가 안 고프면 밥을 안 먹을 거야?”
“배가 고파야 밥을 먹지, 안 고픈데 왜 먹어.”
“아, 질문이 좀 잘못됐네. 아기씨의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서 평생 배고픔을 못 느끼게 되었다고 치자. 그러면 밥을 안 먹을 거야?”
“아니, 그럼 끼니 맞춰서 먹겠지.”
“왜?”
“안 먹으면 죽잖아.”
“그렇지. 근데 죽지 않기 위해 먹는다는 포괄적인 과정 말고, 좀 더 일차원적으로 생각해보자. 밥을 먹는 가장 큰 이유이자 그 행위로 인해 발생되는 첫 번째 결과가 뭐지?”
“…어려워.”
“그래, 이건 너무 개괄적이다. 내가 그냥 말해볼게.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밥을 먹는 거잖아.”
“응.”
“그건 바꿔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양분이 소모되기 때문에 밥을 먹어서 그것을 다시 채워 넣는 거고.”
“응.”
“똑같은 거야. 사라지는 것이 두려우니까 만드는 거야. 정확하게 말하면, 사라진 그 후가 두렵기 때문에 미리 만들어놓는 거지. 우리 몸에 지금 당장 영양분이 있어도 밥을 먹고, 창고에 감자가 있어도 싹을 심고, 내일 쓸 돈이 있어도 오늘 일을 하잖아. 그와 똑같지 않을까. 언젠가 소모하는 것이 만드는 것을 앞지를까 봐 사람은 강박적으로 계속 무엇인가를 만들지.”
“그럼 우리가 밥을 먹는 것부터, 쓸데없는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것까지도 전부 소모에 대한 공포로 인한 거야?”
“소모라… 그렇지. 좀 더 정확하게는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두려움이겠지. ‘백색 공포’라는 말처럼,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을 견디지 못하니까.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본 거야?”
“문득 내 주변을 둘러봤는데, 내가 만들어놓은 부산물이 너무 많았어. 작년도 어제도, 나는 꼭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계속 뭔가를 하고 만들고 쌓아두는데, 그게 요즘 따라 숨이 막혀. 근데 꼭 나만 그러는 건 아닌가 봐. 다른 사람도 그러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은 왜 그러나 해서.”
“하긴. 요즘은 무엇이든 좀 과잉되어 있지. 굳이 필요 없는데 잔뜩 쌓아놓다 썩힐 정도로. 불안감의 발로이겠지만.”
“나도?”
“아마도.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그 주변은 깔끔한 편이니까.”
“왜 그럴까?”
“어떤 부분이?”
“나는 뭘 그리 불안해하면서 나를 옥죄고 있을까?”
“그에 대한 가장 확실한 답은 지금 주변에 무엇이 과잉되어 있는지, 무엇을 많이 준비하고 대비해놨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내 불안의 결과물이라고?”
“그렇지. 공포는 반드시 자신이 지나간 흔적을 남기니까. 그래서 그림자가 없는 희망보다 항상 더 크게 보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