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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날씨 : 첫눈이 내린다면

먹을 것과의 약속

by Emile

표정의 변화가 무쌍한 하루였네요. 아침에는 햇살을 보여주더니 점심에는 구름이 잔뜩이었죠. 저녁이 되니 비가 부슬부슬입니다. 은근 눈을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포근했지요.


첫눈은 언제 오는 걸까요? 올해는 첫눈이 늦네요.

여기서 첫눈이라 함은 새벽에 몰래 와서 아침이면 알 수 없는 눈이 아니라, 누구는 보고 누구는 못 보고 할 정도로 아주 쬐금 오는 눈이 아니라, 비인지 눈이지 알 수 없는 다 녹은 그런 눈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나 첫눈"이라고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는 함박눈을 의미하지요. 그러므로 첫눈은 기상청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내려야 첫눈인 것이지요.


첫눈을 밝힐 나이는 솔직히 한참 지났습니다만, 눈이 오면 오히려 걱정을 해야 맞는 것이겠지만, 눈이 와도 별 할 일은 없습니다만, 뭐 그렇다고 눈이 좋다는데 어른이 눈을 좋아한다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강아지도 좋아하는데 인간도 좋아할 권리가 있지요. 지구 온난화로 더 이상 이 땅에 눈이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서 이 눈을 즐겨야 합니다!


그래서 눈이 내리면 무엇을 할지 계획이라는 것을 세워 보기로 하지요. 평소에 잘 세우지 않는 계획이지만요. 다행히 오늘 첫눈이 내리지 않아서 급조가 가능했습니다. 그래도 한때 기획자답게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준비하지요. 첫눈앞에 낭만이 좀 덜하긴 하지만요.


첫눈이 잠든 밤사이 또는 아침에 내린다면,

흰 눈 듬뿍 카푸치노를 마실 거예요. 카푸치노 거품을 입술에 잔뜩 묻혀 흰 눈 맛을 보며 창 밖으로 눈으로 눈을 맛보는 것이지요.


첫눈이 점심에 내린다면,

일단 나가서 눈에 발자국을 꾹꾹 눌러 남기고, 눈이 뿌려진 듯한 로제 파스타를 먹을 거예요. 치즈눈맛이 나겠지요? 앗! 먹는 타령?


첫눈이 저녁이나 밤에 내린다면,

어둠과 불빛 사이로 사복이 쌓이는 눈 소리를 들으며 레드 와인을 마실 거예요. 와인잔 너머로 내리는 하얀 눈은 붉은색 위에서 더 하얗게 빛이 나겠죠? 그래도 역시 또 먹는 건가?


계획이 있다는 것은 곧 약속이 있다는 것이지요. 먹을 것과의 약속입니다만.

오 그래도 첫눈이 기다려집니다. 잠시 낭만적이기 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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