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카카오톡 친구목록 사태로 느끼는 것은 카톡에는 친구뿐만 아니라 적과 제3자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접하는 지인의 소식은 반가울 수 있는 반면, 어쩔 수 없이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경우, 일상이라고 포장된 업로드의 주요 목적이 인스타적 행복의 자랑에 치우친 것임을 고려할 때,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이 적에게 공격의 허점과 빌미로 밀고될 때, 이 오만과 욕망의 주도자를 단두대에 매달아, 알고 싶지 않을 그리고 알리고 싶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소요의 주요 요소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꼭 사진이나 영상이 아니라 글에도 해당하며, 사진이나 영상은 저항할 시간도 없이 '안본눈 삽니다'의 폐해를 끼치는 반면, 그나마 글은 상당한 시간과 의지에 의해 보게 된다는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것은 TV나 신문, 포털과 같은 예능과 언론도 마찬가지인데, 일방향으로 보고 읽는 것을 강요한 결과, 점차 TV를 끄고 신문을 읽지 않고 포털을 외면한 결과에 이르렀다, 그러나 완벽히 선택권을 주는 것 같으나 사실은 교묘히 알고리즘을 통해 통제하는 다른 매체, 이를테면 유튜브는 스스로 선택한 마약성 진통제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