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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하는 작사

feat 원태연의 작사법

by Emile


가사의 정체


노래를 듣다 보면 가끔 시 같은 가사를 만나서 매혹되곤 합니다. 이 가사라는 것은 음악이라는 옷을 둘렀기 때문에 멋져 보이는 걸까요? 아니면 가사 자체가 시처럼 아름다워서 일까요? 그래서 음을 듣지 않고 가사만 읽어보면, 마치 목욕탕에서 만난 연예인처럼 평범해 보이기도 합니다. 곡이라는 명품 옷을 입고 있을 때만큼은 아니지요. 그래도 그 몸매는 여전해서 가사가 좋아야 곡이라는 옷을 입었을 때 옷테도 나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작사를 한번 해 볼까?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작곡은 몰라도 나도 작사는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혹시 한번쯤 해봤을까요? 그쪽 분야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차피 글로 되어 있는 것, 못할 바도 아니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문장은 아니더라도 시가 아무리 노래의 가사와 비슷할지 모른다 해도 그쪽을 기웃거리기에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노래의 가사들이 여간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웬만한 작가 뺨을 후려칠 정도로 가끔 가사에서 그 심연의 깊이가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와, 이런 가사를 어떻게 썼지?"라고 감탄할 정도로 어떤 가사는 시 그 이상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노래 가사에서 거꾸로 글의 영감을 받기도 하지요.


여자가 아니라 남자?


그런 와중에 좋은 책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원태연의 작사법'이라고 작사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 법한 책이었지요.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만, 이름을 책 제목으로 붙인 것으로 봐서 꽤 유명한 작사가인가 봅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자마자 아뿔싸 '원태연'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네요. 거만하게 기댄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웬 아저씨의 흑백으로 된 커다란 사진을 보고 나서 책을 놓을까 말까 잠시 고민합니다. 만약 사진을 책 표지에 넣었다면 이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책 표지 안쪽에 사진을 넣은 아주 조금 겸손함을 인정하여 책을 한번 읽어 보기로 하지요.


앞 뒤로 읽어도 똑같은 책


그런데 책의 구성이 재밌습니다. 마치 두 권의 책을 붙여 놓은 듯이 꾸몄는데 그 방향이 반대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앞면과 뒷면 어느 쪽에서 시작해서 읽어도 이 책은 그것이 바른 방향이 되지요. 한마디로 책은 두 권의 책을 뒤집어서 반대 방향으로 붙여 놓은 책의 꼴이 됩니다. 그 이유를 읽어보니 옛날 카세트테이프처럼 A면 B면을 나눈 것이라고 하지요. 그러므로 이 책은 한 권의 카세트테이프인 셈이고, 노래와 관련된 작사가 다운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앞 뒤가 똑같은 전화번호가 아니라, 앞 뒤로 읽어도 똑같은 책입니다. 단 내용은 다르지요. 그리고 반을 읽으면 책을 방향을 뒤집어서 읽어야 하고요.


총은 안쏘고 글을 쏘고


처음 들어본, 심지어 여자인 줄 알았던 이름이었는데 이 아저씨 꽤 유명한 작사가인가 봅니다. 왜 그래(김현철), 안녕(성시경), 그 여자(백지영), 술 한잔해요(지아) 등 들어봄직, 아니 꽤 히트한 수많은 노래의 작사가였네요. 제가 즐겨 듣는 노래 쪽이 아니어서 그렇지 이름을 몰랐던 제가 간첩이었던 것이었지요. 더군다나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생각을 해'라는 시집을 무려 스물둘 나이에 히트시킨 유명 시인이기까지 했습니다. 시를 직접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어디서 역시 들어봄직한 시집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아저씨 원래부터 시인이었고, 국문과를 나왔고, 그러다 작사가까지 된 것이냐? 그건 또 아니랍니다. 고딩 때까지 사격 선수였다네요. 어쩌다 총잡이가 총은 안쏘고 글을 쏘게 되었을까요? 게다가 시와 가사를 백발백중 맞히고 있다니, 마음의 심장부를 제대로 쏘아 맞추는 신기한 능력이 있어 보이지요.


성공의 A면 실패의 B면


이 정도의 이력이니 이 책은 아마도 자랑질로 도배를 했을지 모릅니다. 전혀 아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런데 이 아저씨 완전 말아드셨나봐요. 총으로요? 시집으로요? 작사로요? 아니요 영화로요! 때 이른 성공에 너무 심취했던 나머지 평소 하고 싶었던 영화에 뛰어든 모양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재능을 주시면 반칙, 사기이지요. 그래서 카세트테이프의 A면이 성공에 관해서라면 B면은 실패에 관한 이야기 같습니다. 물론 책을 뒤집어 B면부터 읽어 봅니다. 인간은 성공보다 실패에 마음이 가게마련이거든요.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면 그렇게 동정을 열광처럼 보내다가, 나았다고 하면 도리어 화를 내고 심지어 비난까지 한다지요? 그런 마음은 아니겠지만 역시 글과 인생에는 굴곡이 있어야 읽는 맛이 있지요. 그것이 결국 글이요 시요, 가사가 되는 것이고, 음의 높낮이를 통해 화음을 이루는 것이지요. 아무리 청년 베스트셀러 시인에 유명 작사가였다 해도 '한때'라는 것은 무서운 불치병입니다. 그렇게 영화판에서 다시 작사판으로 돌아와 '한때'의 불치병을 이기고 재기에 성공하게 됩니다. 그만큼 시인적 감각은 오래오래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나 봅니다.


사랑


중간중간에 삽입된 히트곡들의 가사들에는 작가의 감성이 잘 묻어나 보입니다. 그 일관된 주제는 아마 '사랑'이라는 것으로 집중될 수 있을 것 같네요. 헤어짐과 애달픔 등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 맞는 신파쪽의 내용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 '원태연'이라는 작사가를 잘 몰랐을 지도 있지만, 사격선수가 어디서 이런 사랑에 대한 깊은 감성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것을 작사라는 글로 풀어낼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역시 사람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될 일이라구요. 그리고 역시 글쟁이 들은 구라쟁이입니다. 해 본 사랑보다 훨씬 깊이 느끼고 해 보지 않은 사랑도 해 본 것 이상으로 풀어내어, 웃고 울릴 수 있는 사랑의 라이팅피싱꾼들이니 조심하시라고요! 그것이 곡까지 감미되면 살살 녹이니, 왜 신이 인간에게는 음악을 금지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지요.


아무나 하는 작사


그래서 작사를 할 수 있을 것 같냐고요? 그래도 아무나 작사를 할 있다는 희망은 조금 생겼습니다. 시인도 물론 작사가로의 전직이 쌉 가능일 것 같지요. 이 아저씨 스스로 감각만 있으면 아무나 시인도 하고 작사도 하는 것이라고 증명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글이나 시와, 작사에는 꽤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사는 곡과 가수의 호흡까지 맞춰가며 함께 가야 하는 하는 것이라네요. 나이에 비하여 젊음에 뒤지지 않는 끊임없는 감각도 놀랍습니다. 작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또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언감생심 라이팅피싱보다는 일단 마약글에 집중과 선택을 해야겠네요. 책은 재미있지만 아저씨도 확실히 책보다는 작사 쪽이 더 감각적인 듯합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곡이 나온다면 이 아저씨 작사가의 이름도 반가워질 듯하네요.




원태연의 작사법 (감각적 언어로 영감을 발견하는 작사가의 태도)

내맘 평점 : $$$+

한줄 서평 : 원태연이 아저씨였다라니 (2025.10)

원태연 지음 / 다산북스 (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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