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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Feb 28. 2022

누구의 삶이라도 한 편의 글이 되지 않을 이유는

신령님이 보고 계셔

누구의 삶이라도 한 편의 글이 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책으로 써 내려간다면 이야기가 되지 못할 삶이란 없을 것입니다. 개인마다의 희로애락 오욕칠정의 삶이 있었을 것이며, 삶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너무 순탄했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삶이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의 일생은 전기가 되고 어떤 이의  삶은 그냥 잊히고 마는 것일까요? 어떤 이의 삶도 글로 남기기만 한다면 이야기가 되지 못할 것이 없다고 했으니 글로 남기느냐의 유무가 그 첫째가 될 것이겠죠. 다만 소위 성공한 삶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더 쓰이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두 번째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꼭 겉으로 드러나기에 성공한 삶이 아니었다 해도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질만한 독특한 삶이었다면 들려주고도 남을 만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얼마나 잘 기억하고 얼마만 한 의미를 부여해 나가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것이겠지요. 그 삶을 오롯이 기억할 만큼 소중했노라고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글로 자각여 기록하는 주체가 된다면, 그 글의 마지막 저작권은 자기 자신에게 부여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이란 글이 되기에는 이미 필요조건을 갖춘 셈이고 그것을 어떻게 서사화 하느냐는, 자기 자신에게 글쓰기의 의지가 있고 다른 이들과 공감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낸다면 충분조건이 성립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 것은 삶이 끝을 마친 전기가 아닌 이상 계속되고 있는 것이므로 그 이야기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더욱더 전개되어 나아질 수 있음, 즉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결론이라 할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써 놓았던 위 글이 생각났습니다. 

누구의 삶이라도 한 편의 글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요. 그 누구가 무당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무당 이야기는 드러나기에 성공한 삶이 아니었다 해도,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상당히 성공한 걸 수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이상의 관심을 가질만한 독특한 삶에 부합되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였습니다.

 

신령님이 보고 계시다는 제목은 사실 좀 후덜덜한 면이 있습니다. 신령님을 믿던 안 믿던 우리의 뇌리에는 신령님의 기억이 있으니까요. '금도끼 은도끼' 동화에서만 보아도 산신령님이 나오지요. 대게는 신령님은 권선징악의 선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지 신령님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무당의 삶이지요. 어떻게 무당이 되었고 무당이 무엇을 하고, 무당이 아닌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이상할지 모르지만, 직장인도 직장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 없이 벌어지니 별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무당이라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사실 요즘은 무당과 종교 간에 차이점을 느끼지 못합니다. 원래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는데 애꿎게 무당만 멸시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요즘은 어디가 사이비고 어디가 옮은 것인지 없으니까요. 종교가 무당만도 못하고 무당도 종교보다 나을 있는 세상이니까요. 선한 신령님과 무당이 악한 종교와 공존하기도 하고 실은 모두 다  이제 세속적이 되어서 무당과 종교도 평범한 직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령님은 회장님이고 종교는 주식회사지요.


그렇다면 무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무당의 미래를 궁금해한다는 게 좀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바로 이 책에서 무당의 미래를 알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무당이 여전히 굿도 하고 점도 치지만 무당도 인터넷을 이용하고 유튜브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방송과 팟캐스트에 나온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당도 청바지를 입고 카페에 앉아 상담을 받는 시대라니까요. 무당과 종교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처럼 이제 무당과 과학기술,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쓰기도 하니까요. 누구의 삶이라도 한 편의 글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겠지요. 미래도 모르고 신발도 없는데 분발해야겠습니다. 


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무당 일기)

한줄 서평 : 차라리 무당이 나을 수도 (2022.02)

내맘 $점 : $$$

홍칼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202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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