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님이 보고 계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써 놓았던 위 글이 생각났습니다.
누구의 삶이라도 한 편의 글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겠지요. 그 누구가 무당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무당 이야기는 드러나기에 성공한 삶이 아니었다 해도, 제가 잘 몰라서 그렇지 상당히 성공한 걸 수도 있습니다만, 여하튼 그 이상의 관심을 가질만한 독특한 삶에 부합되는 이야기임에는 분명하였습니다.
신령님이 보고 계시다는 제목은 사실 좀 후덜덜한 면이 있습니다. 신령님을 믿던 안 믿던 우리의 뇌리에는 신령님의 기억이 있으니까요. '금도끼 은도끼' 동화에서만 보아도 산신령님이 나오지요. 대게는 신령님은 권선징악의 선한 존재이지만 우리는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지 신령님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냥 무당의 삶이지요. 어떻게 무당이 되었고 무당이 무엇을 하고, 무당이 아닌 입장에서는 신기하고 이상할지 모르지만, 직장인도 직장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끊임 없이 벌어지니 별 다를 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무당이라면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사실 요즘은 무당과 종교 간에 별 차이점을 느끼지 못합니다. 원래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는데 애꿎게 무당만 멸시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요즘은 어디가 사이비고 어디가 옮은 것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종교가 무당만도 못하고 무당도 종교보다 나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선한 신령님과 무당이 악한 종교와 공존하기도 하고 실은 모두 다 이제 세속적이 되어서 무당과 종교도 평범한 직업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신령님은 회장님이고 종교는 주식회사지요.
그렇다면 무당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여기서 무당의 미래를 궁금해한다는 게 좀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만, 바로 이 책에서 무당의 미래를 알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무당이 여전히 굿도 하고 점도 치지만 무당도 인터넷을 이용하고 유튜브라는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방송과 팟캐스트에 나온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당도 청바지를 입고 카페에 앉아 상담을 받는 시대라니까요. 무당과 종교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 처럼 이제 무당과 과학기술,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경계도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쓰기도 하니까요. 누구의 삶이라도 한 편의 글이 되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겠지요. 미래도 모르고 신발도 없는데 분발해야겠습니다.
신령님이 보고 계셔 (홍칼리 무당 일기)
한줄 서평 : 차라리 무당이 나을 수도 (2022.02)
내맘 $점 : $$$
홍칼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2021.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