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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Sep 20. 2022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

희망의 줄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절벽 때문이 아닙니다.
지레 겁에 질려
희망의 줄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기다릴 줄 아는 자의 것입니다.
슬기롭게 준비하면서
기다리면
길은
다시 열립니다.

고도원 / 잠깐 멈춤 中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릴 적 읽은 전래 동화였던 '해님 달님'의 이 호랑이의 대사는 지금 들으니 소스라치게 무섭습니다.


떡을 팔던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대사를 하며 떡을 하나씩 뺏어 먹더니 떡이 떨어지자 어머니를 잡아먹고 집에서 기다리던 어린 오누이까지 잡아먹고자 손에 밀가루까지 묻혀 가며 어머니라고 속이고 문을 열게 하여 잡아먹으려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스릴러가 따로 없지요.


오누이는 결국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겨우 피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나무 위로 올라갔냐고 묻자, 참기름을 바르고 올라왔다며 호랑이를 속였으나 결국 동생이 도끼로 나무를 찍으며 올라왔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다시 쫓겨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결국 하늘에 구해주려거든 새 동아줄을, 그렇지 않거든 썩은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기도했고 새 동아줄을 내려받은 남매는 하늘로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으나 썩은 동아줄을 내려받은 호랑이는 줄이 끊어져 수수밭에 떨어져서 죽었고 그 피가 수수밭의 수수를 붉게 물들였다는 이야기지요. 결말도 끔찍하네요. 이 정도면 19금 잔혹 동화가 아닐까요?

해님달님

호랑이에게 쫓겨 잡아 먹힐 위기는 동화에나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도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다만 그 위협의 대상이 호랑이가 아닐 뿐, 동화 속 호랑이처럼 잔악 무도한 인간을 만나기도 하고, 냉혈한 병마와 싸우기도 하며, 자칫하는 사이 절벽과 물살을 만나는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가진 것을 잃거나 소진하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니까요. 나에게 일어날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고 원인과 이유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정말 '동아줄'을 내려 달라고 기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새 동아줄'이 희망이라면 '썩은 동아줄'은 절망 일 수밖에 없지요. 그렇게 쫓아오던 호랑이도 이제 더 이상 좇아오지 않는다면 해님과 달님이 되어 세상을 다시 비추게 될 것입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을 가졌었기에 오누이는 새 동아줄을 내려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고 보니 떡이 먹고 싶네요. 떡이 얼마나 맛있었면 호랑이가 어머니의 떡을 다 먹어 버리고 집 까지 쫓아왔을까요? 호랑이는 처음에는 오누이가 아니라 집에 남은 떡을 탐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떡의 비법은 호랑이를 속이기 위해 발에 바르라고 했던 '참기름'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누이는 그 이후 다시 동아줄을 타고 내려와 어머니의 참기름 비법으로 '해님달님 떡집'이란 떡집을 내고 프랜차이즈까지 성공해 큰 부자가 되었다는 후일담을 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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