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은 '자기 앞의 생'을 쓴 Emile Ajar(Romain Gary)를 기리며 정했습니다. 이미지는 Denis Villeneuve 감독 Arrival(컨택트)의 외계어랍니다.
'당신의 필명에는 어떤 사연이 있나요?'에 이어서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필명' 만큼 중요하게 신중히 골랐을 프로필 '사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의 프로필 사진에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Arrival(2017.02 / 우리나라에서는 '컨택트'란 이름으로 개봉한)'이란 영화의 외계어를 이미지로 썼습니다. 이 영화는 엄청 신비할뿐더러 감동적이기까지 해서 뇌리에 꾀 오랫동안 남았던 영화였지요. 특히 '언어적' 특면에서는 더욱 그랬는데, 외계 '문자'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장면들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이 외계의 문자는 이 글쓰기와 딱 들어맞는 '이미지'라고 생각이 들었었지요.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들은 모습은 정확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희미한 실루엣으로 약간 문어 갔기도 하면서 기괴한 모습이었는데, 그들의 문자도 먹물로 쏘는 듯한 모습의 기괴한 문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문자는 둥근 원 모양에 약간의 변형을 준 모습들로 무슨 문양마냥 볼수록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름 다운 문양뿐 아니라 거기에 따른 내용도 지구인들을 구하기 위한 아름다운 '메시지'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 또한 지구인을 구하기 위한 문자와 메시지로 이 외계인의 언어를 대표 이미지로 쓰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었습니다.
'ARRIVAL(컨택트)'는 접시 모양의 우주선이 납작이 엎어진 모습이라는 일반적인 관념을 깨고 신비하게도 세워져서 날고 있는 모습입니다. 외계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도 있는 듯 하지요. 영화는 특히 음향적으로도 뛰어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드니 빌뇌브' 감독의 다른 영화 듄(2021.10)에서도 보면 비슷한 음향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프로필 사진에는 보통 본인의 실물 사진을 실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수많은 작가들의 책에도 실물 사진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을 때론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것도 같고 때로는 너무 인물 위주로 부각하는 것 같아 오히려 책의 내용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사진이 표지에 크게 들어간 책'을 선호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실물 사진을 쓸 수 없는 이유가 있기도 한 법이지요. 정작 그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필명의 사연'에서 이야기 하였 듯이, 마치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인 것을 숨겨야 했던 것처럼, 본체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글들은 사실 아무도 모르게 씁니다. '아무도 모르게'라는 것은 글을 쓰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비밀로 할 것 까지는 없고, 알려지면 구독자와 라이킷도 늘릴 수 있겠지만 , 역시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일 때가 더 좋거든요. 알려지지 않은 '필명'의 맛이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필명뿐 아니라 프로필 사진도 바꾸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로맹 가리'는 결국 자신이 '에밀 아자르'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죽어서야 털어놓긴 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의 정체를 밝히고 싶은 날도, 혹은 아는 이들이 글을 읽게 되어 정체가 탄로 날 날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그때까지는 Arrival에 나오는 외계어를 계속 쓸 것입니다. 그 안에는 아름다운 문양뿐 아니라 '지구인'들을 구하기 위한 아름다운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지요. 설령 작가가 알고 보니 같은 지구인이었다는 것이 결국 탄로 나더라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