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분 다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그것은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모습이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흡사 정의나 법을 지키는 듯한 그 모습에 새삼 놀랐지요.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왜 담배꽁초는 길바닥에 무단투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까요?"
길바닥에 쓰레기를 한번이라도 몰래 버려보면 알지만 이는 굉장히 눈치가 보이기 행동입니다.
만약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 있다면 당신은 베트맨과 곧 만날 수 있는 고담 시티즌의 자격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휴지 한 장만 버려도, 커피캔이나 커피 일회용 컵 하나만 아주 조심스럽게 놓고 도망가도, 가끔은 개가 싼 똥이라며 개주인은 못 봤다고 몰래 도망가도, 그것은 가슴 뛰는 일입니다.
왜냐 하면 '도망'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그것은 개똥만큼이나 구린 듯 살살 눈치를 보며 줄행랑을 쳐야 하는 행동이거든요.
그런데 유독 한 가지 '담배꽁초'만은 아주 바닥에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눈치 보기는커녕 도망치지도 않습니다. 마치 그 물건은 길바닥에 던지는 것이 정의요, 이 물건은 법적으로 아무데나 던져서 분리수거하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태생부터 면책특권이지요. 그래서 담배가 담긴 것이 담뱃갑인가 봅니다. 갑 중의 갑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그것이 알고 싶다 톤으로 읽어주세요), 담뱃갑 어디에도 그런 문구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쓰여있지도 않지요. 세상의 다른 모든 제품들도 분리수거는 있지만 꼭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쓰여있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왜 이 '담배꽁초'만 특권을 부여받았을까요? 그것이 궁금해서 연구해 보았습니다.
"그럼 이제 연구 결과를 공개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화재안전 이론'입니다.
담배는 알다시피 불을 붙여 피우는 물건이지요. 그러므로 담배꽁초를 잘 털거나 바닥에 비벼서 불을 껐다 해도 불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휴지통에 버렸다가는 불이 날 수 있기 때문에 길에 그냥 투기하는 것이지요. 길바닥만큼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요. 실제로도 담뱃불은 화재의 주 원인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담배꽁초의 투기의 장소로 길바닥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데나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 안전 때문이 아닌 듯합니다. 어느 곳이나 불이 날 가능성은 매한가지 이거든요. 담뱃불로 인한 화재는 차라리 쓰레기통보다는 무심코 버린 곳곳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습니다.
화재안전 이론 / 화재예방을 위해서 무단투기?
두번째로는 '라마의 침 방어'이론입니다.
이는 침처럼 입에 입에 물고 있고 삼킬 수 없는 것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뱉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더불어 방어의 도구로도 사용할 수 있지요. 라마는 위협을 느끼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경우 침을 뱉는 습성이 있습니다. 인간도 담배꽁초를 땅에 뱉어 담배연기의 비난으로부터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이지요.
어릴 적 거리는 담배꽁초와 더불어 껌딱지가 지배하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청소를 나가면 첫 번째로 담배꽁초를 줍는 것이 미션이었고 다른 한 가지 미션은 바닥의 껌을 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껌은 담배꽁초에 밀려 거리의 지위를 어이없이 내어 주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거리에 그 많은 껌딱지가 사라진 것은 의문이지요. 아마 껌을 잘 안 씹어서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담배는 아직 많이 피우지요. 그러고 보면 바닥에 버리는 것이 담배꽁초만이 아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것은 담배꽁초가 좀 억울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꽁초를 삼킬 수 있는 담배 같은 것은 개발이 안 되는 것일까요?
라마의 침 방어 이론 / 담배꽁초는 침 뱉는 행위다?
세번째는 '개 영역 이론'입니다.
개와 같은 동물은 산책을 하면 여기저기에 소변을 흘려서 그 냄새로 자기 영역과 길을 표시한다지요. 인간도 마찬가지로 담배연기와 담배꽁초를 남김으로써 자신의 영역을 표시한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담배꽁초에 타액을 붙여서 퍼뜨리려 하는 종족 보존의 습성과 닮았다는 면에서 꽤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관찰 결과 개와 달리 인간은 담배 피운 곳을 기억하지도 못했을뿐더러 타인의 담배꽁초와 자신의 담배꽁초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이론은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개별 인간으로는 담배꽁초를 투기하는 주요 지역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 이론의 연구는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개 영역 이론 / 담배꽁초는 영역 표시인가?
네번째는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입니다.
이는 저명한 프로이드와 융의 정신분석학과 분석심리학을 응용하여 화제가 된 이론입니다.
고대 인간 사회에는 원래 쓰레기통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태고적 상태인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습성과 갈망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쓰레기의 무단투기가 제약된 현대사회의 경우 그 해방감을 위해서 '담배꽁초'를 무의식 적으로 무단 투기한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연인이라면 쓰레기통에 통제된 사회를 거부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프로이드의 단순 무의식에서 융의 집단 무의식으로 발전하는 이론의 토대가 됩니다. 그러므로 집단 적으로 담배꽁초는 길가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란 집단 무의식이 암묵적으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하는 행위는 무의식에 머물고 있는 '이드'의 행동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지요.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 / 담배꽁초 무단투기는 이드의 행위인가?
다섯번째는 '단순 학습 이론'입니다.
학습이론은 기존의 복잡한 이론을 뒤집고 새롭게 떠오른 단순 접근 방식입니다.
이는 담배꽁초는 담배를 피우자마자 즉시 버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학습 효과에 기인했다는 이론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담배꽁초를 바로 버리지 않고 나중에 버리려다가 뜨거운 꽁초에 데고 난 후 발견했다는 이 이론은 담배꽁초는 학습적 경험으로 볼 때 즉시 제거해야 하는 것, 당장 버리지 않으면 좋은 일이 없다는 학습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어도 굳이 바닥에 버리는 행동을 이 이론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또 담배꽁초를 어떻게 버려야 한다고 한 번도 교육된 사례가 없는 것을 보면 이 이론은 다소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학습이론 / 담배꽁초는 피고 난 후 즉시 버려야 후환이 없다?
여섯번째는 '무속 이론'입니다.
담배꽁초를 거리에 버려야 액땜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음식을 먹기 전에 자리 밖으로 던지며 '고수레'라고 외치던 민간신앙의 행위의 일종이라는 설입니다. 담배꽁초도 '꽁시레'라고 외치며 담배의 해로움으로부터 벋어 나고자 하는 믿음의 행위이지요.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외치거나 기원하지 않지요. 더군다나 이 이론이 맞으려면 담배를 피우기 전에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통용되던 이론으로 보이는 것이 흠입니다. 그러나 담배꽁초를 그렇게 사정없이 던져 버리는 것을 보면 일면 일리가 있는 것도 같지요.
무속 이론 / 담배의 무해를 기원하기 위하여 외친 고수레다?
일곱번째는 '무조건 반사 신경 이론'입니다.
무조건 반사를 아나요? 이는 자극에 따른 선천적인 반응, 무의식 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위에서 말한 프로이드의 무의식 이론과의 차이는 이것이 신체적, 또는 신경반응으로 일어난 다는 사실입니다.
담배는 손으로 피우지요. 튕겨서 버리는 것도 손입니다. 이는 무조건 반사적으로 그렇게 입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직 전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담배의 특정한 성분이 뇌의 활성화 기능을 마비시켜 바로 손가락이 담배꽁초를 튕기게 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뇌가 아예 자각하지 못했거나 한참 시간이 지나서 자각하기 때문에 담배꽁초를 버릴 때의 모습이 그리 당당하고 자연스러웠던 것이었군요.
무조건 반사 신경 이론 / 뇌의 마비에 따른 신경작용이다?
제안하기는 담뱃갑에 폐암에 걸린다느니 기형아를 낳는다느니 이러한 사진이나 문구보다는 담배꽁초를 버리는 요령에 대해서도 캠페인을 벌였으면 합니다.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가 얼마나 심각하며, 담배꽁초로 인한 쓰레기가 얼마나 전국 방방곡곡 산천을 어지럽히고 있으며, 담배꽁초가 물난리에 얼마나 하수구를 막고 있는지도요. 길가며 담배연기를 날리는 테러를 일삼지 말고, 더럽게 침 뱉는 상만이형은 주의하라는 문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배는 막대한 세수의 원천이지요.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담배 가격을 조절하고 담배를 권장하며 세금을 뜯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담뱃갑에 혐오스러운 사진을 넣고 금연을 장려하며 것은 이율배반적으로 보입니다.
그 세금을 금연 캠페인에 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끽연 문화 캠페인에 쓰는 것은 적어도 모순된 행동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러면 끽연자들도 그렇게 기피의 대상으로 낙인찍히지만은 않을 텐데요.
만약 커피를 그렇게 먹다가 입을 헹궈 여기저기에 뿜고, 커피캔과 일회용 컵을 바닥 아무 데나 무단투기 해서 온 산과 들을 어지럽힌다면, 커피 애호가도 머지않아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같은 기호식품이라는데 끽연이 못마땅한 이유는 바로 그 '담배꽁초를 무단투기하는 일곱 가지 이론' 같은 것 때문이겠지요.
고도의 심리전
일곱 가지 이론 말고 정말 바닥에 무단투기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분은 제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그것이 알고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