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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Dec 31. 2023

해적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feat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올해 읽은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 읽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도 무언가를 쓰기도 점점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해적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네플릭스, 인터넷 같은 해적들이 책 읽기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공격하지요. 이제 영상도 금 길면 진득하니 보기 힘들어지는데 한 권, 또는 몇 권을 다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이미 퇴화되고 있을지도요.


해적의 시대라고 하였을까요? 저자는 해군과 해적의 시대를 비교합니다. 조직력과 효율, 규모, 상명하달, 일사불란이라는 시스템의 시대, 즉 해군의 시대에서 초고속 미친 변화의 시대인 해적의 시대로 세상이 변했다고 말이지요. 이는 저자가 속한 광고계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몇 달 동안 공들여 만든 시스템의 광고가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빠른 밈을 타고 퍼지는 "너 어디서 반말이니(반 마리니)? 치킨은 한 마리지" 같은 재빨리 만든 광고의 효과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가치관의 붕괴를 겪게 되며 해군으로 해적을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깨닫게 되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해군일까요? 해적일까요? 아직은 저자와 마찬가지로 해군의 시대가 더 익숙할 것입니다. 비록 이제 책 보다 유튜브, 넷플릭스, 인터넷이 익숙하다 해도 아직 의무 복무를 거친 지난 습성이 이를 반증하지요. 이런 군 조직 문화는 고스란히 직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해적 하면 우선 소말리아 해적이 떠오르는데 그런 소말리아 해적의 삶을 살진 않아 온 것 같으니까요. 요즈음은 비 정규군의 애환이 있다지만 그래도 한때 정규군, 예비군, 민방위 다 수행했다 아닙니까?


여기서 해군과 해적이 대치되는 문화적 충격이 있습니다. 해군에 익숙한 문화에서 해적이 돼야 한다는 '조직문화'의 담론은 과연 질서를 포기하고 무질서한 카오스의 해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하지요. 그래도 조금은 더 자율적으로, 해적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군대식 조직문화는 좀 버리는 것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상 사회는 학교에 입학하면서 시작돼서 퇴직할 때까지 계속되는 거대한 군대 조직 같았거든요. 그냥 일생 대부분이 군대와 같은 해군에서 차라리 해적이 한번 되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은 모험일 수 있습니다. 잘하면 보물섬을 찾을 수도 있거든요.

보물섬

그런데 해군이고 해적이건 간에 조직문화라는 것이 과연 이 땅에 존재할까요? 그것을 바꾸려고 애쓴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 네! 한때는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자처럼 적어도 자신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는 더 나은 조직문화를 위해 경주하여야 한다고 굳건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경영자가 되면 이 낡고 병든 조작문화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이상과 꿈이 있었지요.


그러나 조직문화의 현실은 조직이 문화 자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슬픈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왜냐하면 그 조직이라는 것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조직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의 조직에서는 사실상 오너나 대주주를 위한 조직이지요. 백성이 왕을 위해 존재하였던 시대처럼 이 자본왕 시대에는 오너와 대주주가 동의하지 않는 스스로의 조직문화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직문화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뿐 그것은 오너와 대주주의 지배력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에 불구할 뿐이었지요.


그렇지 않다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일례로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벌인 일련조치들은 조직문화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하여 더욱 확신하게 합니다. 자유롭고 원하는 어느 곳에서나 일할 수 있고 훌륭한 음식과 복지가 제공되던 트위터의 조직문화의 사례는 일론 머스크 같은 오너 대주주가 등장을 통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고 쉽사리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이 보여줍니다. 그야말로 테슬라 해적들은 트위터 해군의 항모 갑판에 오르자마자 파랑새 깃발을 떼 버리고  X라는 해적 깃발을 달고 전 직원을 갑판에 집합시키고 새로운 조직의 조직문화에 저항하는 자들은 배에서 뛰어내리게 하지요. 일론 머스크의 조직문화가 옳으냐 트위터의 조직문화가 나으냐를 떠나 오너 대주주에 따라 그동안 쌓아온 조직문화라고 불리는 것이 하루아침에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였기에 이것은 조직문화의 이상에 가하는 현실의 충격은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직문화를 바꿀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회사를 사 버리는 것입니다. 중성자탄 잭이라 불렸던 잭 웰치는 GE의 CEO에 오르고 난 후 비로소 그가 싫어하던, 그러나 제일 잘하던 파워포인트의 조직문화를 없앨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도 CEO가 된다 해도 가능한 일은 아납니다. CEO 위에는 사실상 조직문화를 결정하는 오너, 또는 대주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본주의의 조직문화는 결국 회사의 주식을 과반수 이상 사버리는 것, 즉 자본실질작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조직문화는 해군에 의해서도 해적에 의해서도 아닌 제독 또는 두목에 의해 결정되는 지극히 구성원들을 고려하지 않는 전쟁과 노략을 위한 유산이랄까요?


이처럼 저자의 조직문화에 대한 해적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작금의 시대가 해적의 시대는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 공적인 조직문화는 그 어느 때 보다도 노략질과 인질의 몸값을 요구하고 무도와 무질서가 앞서는 해적의 시대처럼 보이지요. 이러한 현상은 비단 공적인 조직문화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조직문화에도 고스란히 퍼져갈 것입니다.

그것은 해군이 해적질을 하고 해군이라 해도 피아가 식별되지 않으며 해적이 보호비를 요구라는 바닷속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야만 되는 해적의 시대라는 것을 의미하지요.

캐리비언의 해적

그렇다면 해적의 시대를 어떻게 건널 수 있을까요. 해군이  와해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해적이 되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바로 캐리비언의 해적이 되는 것입니다. 난세에 바다에는 늘 해적이 출몰하였고 약탈을 일삼거나 보물섬을 찾아 헤맸었지요. 운이 좋아서 보물을 잔뜩 싣고 가다 침몰한 보물선을 만날 수 있을 수도 있을것이고, 무능하고 부패한 해군선을 공격하여 눈먼 돈을 약탈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해적의 삶은 해적의 시대를 건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통하는 것 일뿐 결국 해적으로 전쟁을 치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적의 시대에는 캐리비언의 해적으로 위장을 하되 결국 해군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해적의 시대이지만 다시 올 전란의 시대에 대비해 왜구를 소탕할 거북선건조해야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렇 소말리아 해적 같은 나라와 해군이 되어 버릴 순 없으니까요. 해적은 결국 해군이 되고 싶어했다는 것을 아시나요? 영국의 해적이 해군이 되었을때 스페인의 무적 함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요. 아무튼 해적들에게 들키지 않게 보물섬 지도를 잘 챙겨 떠나봐야겠습니다. 해군으로 돌아올 그날까지 해적입니다. 캐리비언의 해적. 잭 스페로우.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한줄 서평 : 해적의 시대에는 군함을 준비하라

내맘 $점 : $$$

박웅현 지음 / 인티앤 (202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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