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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Dec 23. 2022

#07. 안대

밤으로 가려면

 

★★★

그림자를 발견하는 눈이 밝아지다


   해가 지고 스마트 폰의 다크모드가 일을 시작해도, 눈을 감아야 비로소 밤이다. 고요와 어둠이 가라앉은, 잠으로 가는 밤을 청하기 위해서는 일단 꾹 눌러 감아야 한다.




   우리 집 침실의 조명은 한 번의 터치로 켜고 끌 수 있는 전자식 벽 스위치와 작은 리모컨으로 조정할 수 있다. 일상의 편리를 보장하는 기기들의 자동화는 대놓고 사소한 게으름을 이끌어내는데, 원래도 움직임이 적은데 스위치를 끄느라 일어나는 것도 안 한다고?! 못내 찔리는 기분에 신기술이 마냥 반갑기만 하지 않았...... 지만 이내 적응하고 리모컨을 침대 머리맡에 고이 모셔두고 산다. 하루의 끝에 나를 편히 누이고, 이제 밤의 절정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데...... 밤이 깊어질수록 낮동안 가려졌던 불빛들이 깨어난다. 전자식 벽 스위치 안쪽에 놓인 작고 미세한 파란빛이 선두에 선다. 이에 질세라, 침실 맞은편 베란다 창 밖의 가로등 불빛이 창을 넘고 블라인드를 뚫고, 어두운 거실을 건너, 용케도 침실의 문틈으로 스며든다. 은은한 빛을 흘리듯. 그뿐 아니다. 계절이 바뀌어 가습기와 온수매트를 틀기 시작했더니, 손이 닿는 자리를 표시하는 버튼 불빛들이 빛난다. 친절한 기술들이여 별빛만이 어울리는 밤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잠으로 가는 밤을 청하려면, 어둠이 새어든 빛의 편을 들어주기 전에 때를 놓치지 말고 서둘러야 한다. 머리만 대고는 스르륵 잠드는 재능이 필요한 때다.  


  한 때는 나도 아홉 시만 되면 집 안 어디서든 쓰러져 잠들었다. 피아노 의자 아래 공간에 몸을 맞추고 잠들기도 했고,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상에 기대서도 쿨쿨 잤다. 굳센 의지는 필요 없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늦게 잠들어도 일어나야 하는 시간에 눈을 떴고, 다음날 일찍부터 중요한 일이 있다면 평소와 달리 잠드는 시간을 당겨도 잘, 잘 수 있었다. 쿨쿨. 잘 자는 일을 자랑삼지 않았지만, 그렇게 잘 자고 일어나는 것이 나의 복이자,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잠과 나는 사이가 좋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오른쪽 눈에 문제가 생겼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 점령당했다. 밤이 아닌데도 앞은 캄캄했다. 어둠의 근원을 찾겠다고, 눈을 감고 있어서일까 확인하겠다고, 끊임없이 두 손을 들어 내 눈을 만져보아야 했다.

  밤이 가진 어둠은 여린 빛들이 깨어날 때 더욱 실감 난다면,  태초의 것인듯한 암흑은 그 어느 것도 새어들게 두지 않았다. 심연에 가득 찬 어둠이 두려움을 겹겹이 쌓으며 더욱 짙어졌다. 옆에 앉은 이에게 시간을 묻고서야 밤이구나 아니구나 알아가며 잠을 청했다. 밤이 아니어도 밤이어도, 자야겠다면 잠들던 시절은 사라졌다. 아무리 가만히 청해도, 잠도 밤도 마주할 수 없었다. 우리 사이는 하루아침에 멀어졌다.


 다행히 의료진의 치료와 주변의 돌봄으로 치료했고, 그 시절은 지났고, 감사하며 살고 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밤을 맞는다.

그 일을 겪은 후, 잠이 드는 일이 날마다의 과제가 되었다.

한때 잠 잘 자는 사람이었던 일을 과거형 문장으로 자랑삼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밤이 깊어지면, '혹시 또?' 하는 두려움이 들어 두 눈을 만지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나면 잠이 달아났다. 무사를 확인하자고 불을 켜고 누우면, 눈을 감아도 눈이 부셨다. 수면등을 놓았더니 깊은 밤을 파고드는 빛이 촉감으로 느껴지고 점점 커져갔다. 새어드는 빛이 차라리 나을 거라며 방문을 조금 열어 두었더니, 얌전했던 빛이 요란한 냉장고 소리랑 같이 들어왔다.


 그다음이 안대였다.

불을 끄고 안대를 하고 누웠다.

그렇게 누우니 밤의 어둠은 내가 직접 가려낸 때문이 되었고, 얕은 무게로 눈을 누르니 손을 대어 확인하는 번거로운 수고 덜었다. 코를 조금 실룩거리면 안대와 코 사이의 틈으로 침실의 미세한 빛들도 바로 느껴졌다.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깨어버리는 밤이 었고, 적절하게 가리고 적당하게 느끼며 밤을  되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해가 지고, 다크모드가 일을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하고, 침대에 몸을 누인 후 안대를 눈에 올리고 리모컨으로 침실의 전등을 끈다. 방문은 살짝 열어두고.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밤 중에 어떤 날은 두려움이니 어둠이니 하는 것들과 엎치락뒤치락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밤이 내는 분위기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 빛을 느끼게 하는 밤으로 들어가고야 만다.

헤매던 끝에 만난 가볍고 작은 물건 덕분.


우리 사이를 예전으로 돌려준 안대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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