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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Feb 22. 2024

#12. 병따개

환타말고 써니텐

쓰다가 그리려니 어려운 글자

★★★


   부모님 댁 주방을 정리해 드리다 맨 아래 서랍 구석에서 병따개를 발했다. 자주 가던 식당 사장님이 나눠주셨다는 써니텐 병따개 다섯 개가 노란 고무줄에 돌돌 감겨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 물건의 쓰임을 기억하는 몇몇이 하나씩 나눠가졌다. 맥주는 물론 병에 든 음료수도 퍽 하고 따마시던 시절이 있었지 하면서.    


  그런데, 아직 써니텐이 나오던가.

호기심에 찾아보니 써니텐은 무려 1975년도에 생산을 시작했단다. 해태 써니텐으로 시작했으나, 오랜 세월 회사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면서 지금은 해태인 듯 해태 아닌 해태 같은 회사의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해태해태 써니텐' 하던 귀에 익은 CM송이나 ‘흔들어주세요’라는 카피를 재미 삼아 따라 하곤 했다. 최근에는 탄산음료의 타깃 구매층이 젊은이 들인 만큼 기억에 콕 박힌 광고를 뒤로하고, 아이돌이 모델이기도 했단다. 그러니까 잘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마치 졸업하고 오랜만에 친구 소식을 듣는 양 이런저런 기사들을 주워 읽었다.


   며칠 후 우연히 들른 편의점에서 마침 보이길래 손을 뻗는데, 아이가 어떤 맛인지 물어왔다.

 “음, 환타같은 거야. ” 짧은 한마디 설명에 바로 이해한 아이는 파인애플 맛을 골랐다. 그런데, 바로 나온 대답 때문에 써니텐이 의문의 1패를 한 듯싶다. 코카 콜라 가문에 속한 덕분일까, 환타가 과일향 탄산음료들을 대표한다. 검색 중 보게 된 여러 음료수들을 비교한 글들에도 환타보다 달다거나 환타보다 세다는 식으로 기준은 환타였다.


   생겨난 지 한 두 해가 지난 것도 아닌데 써니텐이 서운하지 싶었다.

가만 보면 써니텐의 ‘텐!’ 만큼 탄산이 터지는 소리를 맞춤 맞게 표현한 이름도 없지 않은가. 최상의 탄산음료로 이런 매력 포인트가 있는데, 환타의 유명세를 빌어 자신을 소개받다니.

   아이와 나는 편의점 앞에서 진지하게 혀 끝을 톡톡 튀기며 맛의 차이를 찾아내려 했다. 솔직히 말하면 보통의 미각을 가진 우리에겐 큰 차이가 없게 느껴졌다. 더운 날 시원하고 개운하니 좋았을 뿐. 아이는 아마도 익숙한 이름의 음료를 먼저 고르거나 이 날의 추억으로 한 두 번 써니텐을 마실 것이다. 다만 나는 맛 차이의 정도에 비해 환타에 쏠린 인기의 크기가 너무 큰 듯 하니,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써니텐을 골라야지 한다.   


   알고 보면 곳곳에 마니아들이 있는 게 아닐까.

무조건 환타가 아니라, 어딜 가도 일단 써니텐을 꼭 찾는 고객이 예상보다 많은 것이다. 누군가는 환타가 주류이고 써니텐 미린다 오란씨 웰치스는 비주류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들은 그런 것은 상관 않고 오렌지는 써니텐, 파인애플은 환타, 포도는 웰치스로 골라마실 수도 있다. 보통의 입맛이 아닌 특별한 혀의 감각으로 확실한 차이, 그 만의 매력을 찾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이들 덕분에, 훨씬 더 많은 물건들이 1등이 아닌 채로 세상에 존재하고, 심지어 아주 오랜 시간 있어 왔으며, 그들만의 세계에선 의심의 여지없이 우뚝 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색깔을 지켜내고, 뽐내며 살아있다면 1등이 아니어도 멋지다.


   우연히 받아 든 물건의 이야기를 좇다가 끝내 지지하게 될 탄산음료 하나 얻었다. 환타 말고 써니텐을 찾아 마시게 만든, 빈티지가 된 귀여운 병따개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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