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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Apr 07. 2023

#10. 머리끈

사라지는 물건

★★★★

이래도 저래도 괜찮으니까






   머리끈에는 발이 달렸다.

내 눈으로 본 적이 없어도 발이 달렸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면 밤잠을 설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153 볼펜이나 인덱스 스티커 혹은 책갈피들을 통해 발 달린 물건이 제 나름으로 살아가는 법을 보아왔으므로 작은 물건들의 일탈에는 비교적 너그럽다.


   머리가 긴 사람들에겐 필수품, 닳지 않지만 소모품이라 불리기도 하는 머리끈은 자꾸 사는 작은 물건 top3에 들기 충분한데, 사라짐에 있어 다른 소품들과는 조금 다른 경향이 있다.

 일단 머리끈은 하나를 꺼내두면 잠깐 사이에 사라지는 일이 빈번하고, 여러 개를 뭉쳐서 올려두면 티 안 나게 하나씩 어디론가 빠져나가곤 한다. 어디 갔지? 하고 두리번거리다 쉽게 발견하기도 하고 생각지도 않은 장소와 시간에 (실은 까먹고 있다가)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럴 때면 아까, 혹은 어제 없어졌던 것이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만다.  

   사실이 아닌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머리끈이 까만색으로 대동단결 하는 바람에 이런 식으로, 다들 쉽게 속아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까, 혹은 어제의 머리끈이 아니라 버스에서 스친 누군가로부터 지구 반대에서 산 넘고 물 건너온 물건인지도… 자주 잃어버리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시 잘 찾아지는 바람에, 사용자들은 좀처럼 '잃어버렸다'고까지 생각하지 않는다.

⠀⠀⠀⠀⠀⠀⠀⠀⠀⠀⠀⠀⠀

   화장을 고칠 때, 식사할 때, 바람이 거셀 때, 습한 공기에 갇혔을 때,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을 때 머리끈은 내 얼굴을 찾도록 돕는다.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 사용할지 모르기 때문에, 가방마다 파우치마다 주머니마다 넣어두고! 물론 안전하게 손목에도 하나 걸고 집을 나선다.

   물론 철저히 준비하고 나서도, 머리끈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상황은 내 손으로 머리를 묶기 시작한 이래로 반복되는 중이다.

   배추도사를 닮은 산발을 옆 사람에 들키거나, 머리카락 국물을 먹을지 모를 상황들이 왕왕 찾아오지만 이런 일들이 매번 일상의 위기로 치닫지 않는 건 머리끈들 못지않게 ‘우리’도 대동단결하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꾹 눌린 자국 채로 손목을 쭉 내밀거나, 기꺼이 파우치를 뒤져주고, 주머니 많은 옷에서 그 수만큼의 머리끈을 내미는 이들이 나타난다. 머리 좀 묶는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여자들의 생리대 빌려주기처럼, 조건 없는 거래를 하고 거래는 그 자리에서 완료된다. 돌려받을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묶고 만다. 때론 대범한 머리끈이 머리를 묶고 있다가도 사라지지만, 어느새 풀려버릴지라도 우리는 쿨하게 주고받는다. 그러려니 하면서.


사라지고, 사라졌지만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타나는 걸 아니까, 우리들의 마음은 그 물건에 대해서만큼은 언제나 후하다.

  제 발로 사라지는 걸, 떠나는 걸 인정하고 나면 너그러운, 그러는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만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가득한 곳에 갔을 때, 하나에 천 원씩 하는 까맣지 않은 머리끈을 사보았다. 어디로 가는지, 속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말이다. 손 끝에서 튕기던 쨍쨍하던 탄성이 생생하고, 화장품 파우치에서 빨간색을 나의 포니테일을 지탱하던 카키색을 본 기억도 어제일처럼 선명한데! 지금은, 가고 없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고 있겠지.   


  내게 잠시 들렀던 머리끈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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