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빵을 굽고, 머리를 감고, 커피를 마시고, 선크림을 바르고, 식구들을 보내고, 옷을 갈아입고, 집안을 정리하고, 에코백에 짐을 챙겼다. 준비가 끝났으니 나가기만 하면 되었는데, 한 시간째 거실 책상에 앉아있다.
계절의 변화는 창밖의 나무들로, 오늘의 날씨는 날씨 앱이나 아침 라디오의 기상 예보로 확인이 끝났다. 바쁘게 한 외출 준비가 아깝지 않으냐 하면,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이내 외출한 기분으로 집에서 작업하면 색다르니 괜찮구먼 하는 마음이 든다.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현관을 나서야 하는 날이 평일 중 이틀이다. 일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온라인 장보기로 해결하지 못한 물건을 사고, 동네 반찬 가게를 들르고, 은행에서 약간의 현금을 뽑고, 밴드에서 미리 주문한 제철과일을 픽업하고, 꽈배기와 왕만두까지 사들고 들어온다. 외출을 자주 하지 않아도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 그런 집을 둘도 없이 예쁜 공간으로 꾸며내겠어, 완전한 안락함을 주는 건 홈 스위트홈 우리 집뿐이지.’라고 생각하는 집에만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인플루언서 감성의 집순이는 아니다.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정돈과 청결 상태, 딱 그 정도를 유지하는데도 두어 달이면 슬리퍼가 닳아버리니 그 이상의 수고를 집에 들이고 싶지는 않은 평범한 집순이랄까.
그저 혼자 차지한 집의 고요가 소중하고, 집 밖에서 겪는 무례하고 불편한 상황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사람이다. 나는.
새로운 자극 대신, 통제 가능한 익숙함을 선택해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집 밖으로 나간 어느 날, 스멀스멀 신이 났다. 발걸음이 가벼웠고, 빨라졌다. 눈앞의 장면이 익숙해서 편한 것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듯 느껴져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처음 가본 공간에서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이 반짝 떠오르고, 그 순간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찰나의 환대가 나를 돌려세운 듯했다.
근사했다.
신나게 들어서서 환영을 받은 것인지, 예정된 환대에 내 차례가 닿은 것인지, 다른 곳으로 가도 그럴지, 알고 보니 나는 외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갑자기 내가 달라져버린 것인지 궁금했다. 조금 더 자주 나가볼까, 하는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들어서볼까, 하고 자라났다.
발걸음이 멈춘 곳에 걱정과 불안, 무례와 불쾌는 여전할 것이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반복될까 두렵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돌려세운 찰나를, 흘러가지는 지도 몰랐던 감각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다. 기다려진다. 기대되고.
집, 밖으로 나가본다.
일단 나가서, 있는 그대로를 경험해야겠다. 대단하지 않더라도 뭔가 다르길, 도망칠 일이 생겨도 완전히 문을 닫아 걸 정도는 아니길 바란다.
시원한 주스 한 잔 마시고,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