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괜찮음을 기다리며
그이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사전 준비를 위해 하루 전 날 입원하고, 이튿날 수술, 그다음 날 퇴원이 예정된 스케줄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 일정도 짧고, 의자를 펼친 보호자 침대에서 당일 하루만 자면 되었지만, 그이의 보호자로 수술을 이라는 단얼 맞닥뜨리니 그 어떤 수술이라도 간단하다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태어나 수술이 처음인 그이는 모든 걸 어색해했고, 나는 그이의 그런 반응을 지켜보는 일이 낯설었다. 입원 수속을 모두 마치고, 단식 전의 마지막 식사를 같이하고, 따뜻한 물을 떠다 머리맡에 놓아주고는 나는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유서를 써봐. 자기 유서 써본 적 있어?”
나는 몇 번의 수술 경험이 있다. 수술 중에 죽을 것이라 비관하거나, 깨어나지 못할까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병원에서는 언제나 죽음이 떠오르고, 그럴 때면 다이어리를 쓰던 루틴을 대신해 현재의 내가 아닌 소중한 이들을 향해 무언가를 적었다. 그런 게 유서 아닌가. 오히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죽음은 무겁지 않았다. 무섭지 않았다. 물론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하고, 문장은 과하게 감상적이기도, 별 말 아닌 말들이 대부분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 유서들이 전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하지만 한 번씩 삶을 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은 죽음에 가까워지기보다 삶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낯선 병실에서의 첫날은 잠을 설치게 되니, 그의 시간에 격려를 더해주려 권해보았는데…… 썼으려나.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이 되어, 아이의 등교 준비를 해두고 바로 병실로 가 그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고요하고 분주한 병원의 새벽. 병실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간호사 선생님의 발소리, 체온 혈압을 측정하는 기기소리, 정보를 입력하는 키보드 소리가 낮게 깔렸다. 곧 그이의 침대 한가운데로 조명이 켜졌다. 수술 시간이 첫 타임으로 잡혔으니, 이제 일어나 내려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안녕! 잘 잤어?”
“왔네. 바로 잤어.”
그렇다면 다행이다.
배가 고프겠지만 첫 타임 수술이니 금식이 길어지지 않을 거라며 천만다행이라고, 간단한 수술이 니니 금방 끝날 거라고. ‘간단하다’는 그 말을 일부러 소리 내어해 보았다. 준비랄 것도 없는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수술실이 있는 2층으로 내려갔다. 휠체어에 앉은 그이는 수술준비실로 들어가고 손을 흔들던 나는 복도 건너의 보호자 대기실로 갔다.
보호자 대기실은 아직 한산했다.
커피 한 잔 마실까 하다가, 수술 현황 화면에 그이의 이름이 뜨는 걸 보고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기실 전면의 벽에 두 대의 커다란 티브이가 있었다. 하나는 환자가 대기실, 수술실 중 어디에 있는지와 수술 종료 후 회복실, 병실, 중환자실 중 어디로 옮겨졌는지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현황 화면이었다. 다른 하나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다.
수술 대기실에 들어간 환자 이름이 늘어갔다. 보호자 대기실의 의자도 점점 채워졌다. 밖은 아직 새벽의 하늘인데, 병원의 시간은 정오를 넘긴 것처럼 가득한 공기가 덥게 느껴졌다.
드라마가 나오는 화면은 내가 앉은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보던 드라마도 아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SNS 도 하고 뉴스를 검색하며 화면을 새로 고쳤다. 아무리 화면을 당겼다 놓아도, 새로울 게 없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비슷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 건너 하나씩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니구나 했다.
그이의 이름이 대기실에서 수술실로 넘어갔다.
수술 현황 화면의 환자 이름은 한 글자씩을 별표( * ) 뒤에 감추었다. 목록이 길어지고 그이의 이름이 뒤로 넘어가, 다시 찾고 또 확인하느라 화면을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있자니 목록의 이름들이 전부 아는 사람인 듯했다.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 목이 말랐다. 드라마가 나오는 티브이 앞에 자판기가 한 대 있었지만, 의자를 차지하지 못한 보호자 몇 명이 기대어 서 있었다. 반쯤 눈을 감고 기대어 선 그들에게 비켜달라 할 정도의 목마름은 아니었다. 전날 내려둔 그대로 들고 나온 가방에 마침 텀블러가 있었고 식은 보리차가 남아있어 다행히 입술은 적셨다. 예상 수술시간에서 이십 분 정도 지났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양손 가득 짐을 든 남자 보호자가 들어왔다.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고 나는 곳이니 한 사람 한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는데, 그는 유난히 시선을 끄는 움직임을 가진 사람이었다. 떠드는 사람은 없지만 작은 소란이 상주하던 보호자 대기실 공기가 순간 흐름을 멈추었다. 그 역시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손에 든 짐을 입구 바닥에 내려놓고는 맨 앞줄의 빈 의자에 앉았다. 앉았다 일어나기, 몇 번을 그렇게 했다. 그가 우왕좌왕하니, 드라마를 보던 보호자들의 고개가 이리저리 옮겨졌다.
“현정이 들어갔습니다. 네, 괜찮아요. 네네. 현정이가 일주일 전에 가방을 다 싸놔 가지고요.”
겨우 자리에 앉은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수술 환자 대기실 목록에 김*정이라는 이름이 새로 올라왔다. 현정이는 김현정인가보다. 현정이는 머리도 감았고, 일주일 전에 출산 준비 가방을 미리 싸두었으며, 아마도 저 짐이 그 가방인 모양이었다. 꼼꼼하게 싸느라 짐이 좀 많지만,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 바로 그 가방에 막 태어난 아기를 위한 기저귀가 빠진 것을 방금 알게 되어 아주 큰 일이라고 했다. 같은 내용의 통화를 세 번이나 들었다. 현정이의 이름이 수술실로 넘어갔다. 괜찮다는 대답을 연신 하는 그의 목소리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아빠가 되는 일은 정말 떨리는 일이니 괜찮을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다. 대부분의 보호자들도 아는 모양이었다. ‘휴대폰 통화는 대기실 밖에서’ 해야 하지만, 심지어 안내 문구도 있지만 누구도 그에게 나가서 통화하라 말하지 않았다.
의자 끝에 걸터앉거나 동행에게 몸을 반쯤 기대거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거나, 두 손으로 꼭 쥐고 있거나. 입술에 침을 바르며 끝이 있는 기다림을 버티는 것이 보호자들의 일이다. 내쉬는 한숨이 깊어 그 끝에 걸린 긴장은 강력하지만, 그 힘으로도 기다림의 끝에 있을 어떤 일에까지는 차마 가지 못한다. 상상으로도 가지 못한다. 짐작하고 앞서 가기보다 그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는 듯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다들. 병원에서 톡으로 진행 여부를 알려주지만, 보호자들은 대기실을 뜨지 못한다. 드라마의 내용을 알지 못해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던 참에 현정의 등장이, 아니 현정이 보호자의 등장이 보호자 대기실에 균열을 일으켰다. 현정이도 아기도 다 괜찮을 것이었고, 아빠만 얼른 괜찮아지면 되는 수술이었다. 새 생명을 맞는 수술. 삶과 더 가까이 닿은, 죽음이 떠오를 틈이 없는, 웃고 설레도 괜찮을.
아기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오길, 내가 보호하는 그이 역시 건강하게 나오길, 여기 보호자들의 입술이 바짝 마르기 전에 환자들의 수술이 잘 끝나길 기도했다.
현정이 보호자가 지금 막 들어온 또 다른 보호자를 반갑게 맞는다. 이른 아침 온 동네를 뒤져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저귀를 사가지고 오신 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많던 짐이 하나 더 늘었지만, 이제 더 이상의 큰 일은 없을 테니 부디 정말로 괜찮아지기를. 그러는 사이 대기실의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그이의 이름이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갔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건너온 복도를 다시 건너, 수술실 앞으로 갔다.
마취에서 깨어나느라 이번엔 그이의 입술이 마를 것이다. 앉아 있느라 굳어버린 다리를 부지런히 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삶으로 한 뼘쯤 더 들어간 것 같다. 아니지 그이는 마취 중이었으니 보호자인 나만 그랬겠구나. 긴장도 기다림도, 멈추지 않는 생각과 생각을 떨어내려는 수고도 보호자만의 일이었다. 죽음을 떠올리지만, 병원은 사실 수많은 삶이 깨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그이가 나오면 반갑게 맞아야겠다. 폐로 호흡하며 마취를 떨어내야 하는 회복의 시간 동안 대기실에서 일어난 일들을 전부 들려줘 웃게 해야지.
다시 갈 일이 없길 바라지만, 다음번에 마실 물은 미리 챙겨야겠구나 싶다. 보호자 대기실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