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도리 찾아 8 천보
10월의 어느 주일, 예배를 마친 그이와 나는 예배당을 나와 정동길을 걸었다.
가을이 오는지 은행나무가 열매를 떨구기 시작했고, 덕분에 우리는 돌다리를 건너듯 열매를 피해 껑충껑충 걸었다. 늦더위가 물러가지 않았지만 공기는 분명 가을의 선선함을 품고 있었다. 정동길은 늘 들뜬 사람들로 붐비지만, 열 시 반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걷던 우리는 나선김에 둔덕전에서 열리는 젊은 작가와 디즈니의 협업 전시를 보기로 했다. 일찍 일어난 새는 사람 많은 시간을 피해 전시를 볼 수 있으니까.
덕수궁은 시청 주변 빌딩 벽에 비하면 낮은 담을 가졌지만, 일단 그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세상과 완전히 차단된다. 무례한 확성기 소리가 넘어온다 해도, 궁을 지킨 오랜 나무들이 소음 따위 무심히 흡수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걷는 걸음은 느려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하늘과 땅이 펼쳐진 곳을 걷고 있자니, 여유가 넘치고 평안이 가득했다. 돌계단을 반대로 올라가 즉조당의 열린 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사진도 찍었다.
미키, 미니와 도널드 덕까지 있으니 말할 것도 없이 전시는 귀여웠다. 게다가 둔덕전의 색감이 너무 멋져서 우리는 또 사진을 찍었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둘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24시간 전담 마크하던 시절에 그토록 꿈에 그리던 시간인데 막상 이리되니 어색하지만, 둘이 보내는 시간을 누리고 즐기자고 손가락을 걸고 또 건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모처럼 한 껏 들떠서 제법 그 약속을 잘 지켜냈다. 사진마다 활짝 웃은 사람 둘이 있는 걸 보니 정말 그런 듯하다.
궁을 나와 다시 교회로 갔다. 지인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북카페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이 너무 좋아, 그대로 집으로 가기 아쉬운 날이었다. 커피를 사들고 우리만의 계절 실감 비밀 아지트인 배재 빌딩 앞 벤치로 갔다. 각자의 책을 꺼내 한 시간 남짓 읽고, 읽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흘러가는 구름을 정처 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주일마다 가는 동네인데 마치 처음 방문한 데이트 코스인 것처럼, 그 동네를 걷고 누리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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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밤, 잠들기 위해 불을 끄고 침대에 눕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자기야 우리 목도리 어디 있지?”
불을 켰다. 그이는 트렁크를 확인하러 곧장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내내 즐거웠둔 그날, 우리는 쇼핑백 하나를 들고 다녔다. 캐시미어 목도리 두 개와 내 이름이 적힌 메모지가 들어있는 쇼핑백. 10월 초 교회 바자회에서 새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였고, 현장의 지인에게 부탁해 두 개를 구입한 뒤 예배 후에 전달받은 것이었다.
그이는 몇 년 동안 하나의 목도리를 겨우내 두르고 다녔다. 세월의 때가 묻어 까칠까칠해져 포근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목도리였다. 이제 그만 새 걸 사자 했지만, 차로 다니는 시간이 더 길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이는 사용하던 물건이 못 쓰게 되지 않는 한 새것을 들이지 않는다. 아껴 쓴다기보다 험히 쓰지 않고, 손에 익고 몸에 익는 걸 편하게 생각하고, 물건을 잘 잃어버리지 않아 길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괜찮아.” 언제나 같은 대답.
하지만 나는 안 괜찮았으므로, 올해는 기필코 겨울 목도리를 하나 사줘야지 맘먹고 있었다. 좋은 걸로. 그랬는데 마침 사진만으로도 마음에 드는 물건이 바자회에 나온 것이다. 기회가 좋아 가격까지 착해서 내 것도 하나 샀다. 두 개의 목도리를 득템 했고, 선물의 계절에 어울리는 준비가 시작되고, 구매처도 바자회라니! 완벽했다. 무엇인지 그이가 물어왔다. 얼마나 맞춤 맞는 구매였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지, 이번 겨울에 우리가 누릴 포근함에 대한 기대까지, 돌담길을 걸으며 높아진 목소리로 그이에게 말하고 또 말했다.
“고맙게 할게. 내 선물이니까 쇼핑백은 내가 들고.”
쇼핑백이 그이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날의 외출이, 나들이가 그렇게나 들뜨고 즐거웠던 건 아마 선물이야기로 시작되었기 때문일텐데.
바로 그 쇼핑백이 사라진 것을 화요일 밤에야 발견한 것이었다. 주차장에 다녀온 그이는 입을 닫고 있었다. 없구만. 나는 일단 자자며 진짜로 불을 껐다.
눈을 감고 누워 아무리 더듬어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날의 기억에서 쇼핑백이 까맣게 사라져 버렸다.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흩어져 버린 건가.
카페에 앉아 익명으로 존재하는 동안에도 옆 테이블의 사정을 파악하는 관찰 유전자를 타고났으며, 다이어리를 쓰는 습관 때문에 일상의 대부분을 기억하는 게 자연스럽고, 어지간한 기억들은 아직 쨍쨍해서 그때 있잖아,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따라가는 사람이 난데, 기억에서 그날의 쇼핑백이 사라졌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고, 말 그대로 별 일이었다. 머릿속을 아무리 뒤져도 안 보였다. 어디일까, 어디에 두었을까, 그날 걸었던 길을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걷고 또 걸었다. 다음날 아침에 카페로 전화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 식탁에서 그이는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 했다. 나처럼 밤새 그날을 걷고 또 걸었는 모양이다. 선물인데 잃어버려 미안하다고. 어떻게 이렇게 생각이 안나는지 당황스러워했다.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우리는 쇼핑백을 흔들며 들고만 다녔지 목도리는 꺼내보지도 않았다. 실물의 색은 어떤지, 잘 어울리는지, 촉감이 정말 부드러운지 확인도 않은 상태였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기억이 안 나니 어떻게 찾아야 할지도 막막했다. 답답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받자마자 꺼내서 둘러보기라도 할걸.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교회에 맡겨두고 다녀올 걸 아니 차에 가져다 놓고 돌아다닐걸. 이럴 줄 알았으면 목도리 쇼핑에 얽힌 사연을 그리 신나게 이야기하지 말 걸. 이럴 줄 알았으면 너무 많이 좋아하지 말 걸.
이럴 줄 몰랐지.
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런 실수를 했다는 사실에 자책하고, 기억이 나지 않아 막막하기까지. 실로 오랜만이었다. 남의 일 같았다.
소란한 밤에 아이가, 아빠 엄마도 주의를 좀 들어야겠네요, 하고 말한다. 그간 물건을 잃어버리고 들어와 들어야했던 온갖 잔소리를 그 한마디 담아 돌려주고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어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스스로 혼을 낸단다, 아이야. 밤 사이 그이도 나도 혼쭐이 났음이다. 대신 구입해 준 지인이, 밖에 나가면 30만 원인데 하며 말끝을 흐렸다.
오전에 시간이 빈 틈을 타 서둘러 외출 준비를 하고교회로 갔다. 이미 사흘이나 지났지만, 이대로 끝낼 수 없었다. 다시 짚어가 봐야했다.
목도리는, 쇼핑백은 없을 것이었다. 모르지 않았다. 심지어 전 날 가을을 부르는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헛걸음이 될 확률이 100에 가까웠다. 교회는 교인도 있지만, 외부인들도 많이 드나든다. 그 사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자꾸 피어났다. 커피를 기다리며 의자를 옮겨 앉았는데 그때 바닥에 두었다면 직원이 보았을지도, 교회 북카페 어딘가에 내려놓았는지도, 내 이름을 아는 누군가 메모지를 보고 따로 챙겼두었는지도, 공원 벤치에 덩그러니 남은 쇼핑백이 경비실에 맡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돌아서서는 없을 거야,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 편이 훨씬 당연한 걸,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이 기대가 되는 걸 막아섰다.
평소와 다른 장소로 나가 산책하는 것으로 가볍게 생각하자며, 집 밖으로 나섰다.
카페에는 최근 일주일 사이에 들어온 분실물이 없다고 했다. 그날 우리의 주문을 받은 안경 쓴 직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믿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배재 빌딩 경비실에선 사흘이 지났다면 너무 오래되지 않았어요? 하고 되물으셨다. 식당은 이미 말끔히 청소가 되었고, 교회의 북카페나 분실물 함에도 쇼핑백은 없었다. 덕수궁 분실물 사무실에다 (정문 초소) 연락처와 물건에 대한 메모를 남겨두는 중에는, 글쎄요 하는 말을 계속 들어야 했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본 적 있으신지 스친 적 있으신지 물을 때마다, 혹시나 하는 얼굴이 되었다. 성실한 기대는 아니요,하는 답을 들으며 번번이 아쉬움을 겪었다. 없을 게 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랬다.
그 하루를 다시 걷는 동안 쇼핑백에 대한 기억만 깜깜했다. 여기서 이 자세로 사진 찍었지, 저 배경은 그날이 더 예뻤네, 커피는 라테였어 핫을 시켰는데 아이스를 줘서 다시 받았잖아, 여기 앉았을 때 아무개가 지나갔잖아, 책 얘기할 때 구름 모양이 이랬잖아. 하는 기억들은 고스란히 떠올랐다. 쇼핑백에 대한 기억‘만’ 어디에도 없었다. 더할 나위 없던 평안과 즐거움, 그러니까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된 날에, 하나의 물건에 대한 기억은 밀려난 모양이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정신없이 놀다 들어와 나의 질문에 말간 눈빛을 보내며 기억이 안 나요, 하던 아이의 표정이 새삼 이해되었다. 부주의해서가 아니라, 어떤 기억은 다른 기억에 밀려나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 좋아서, 어쩌면 너무 나빠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경험이 없어 몰랐을 뿐, 상상이 미치지 못 한 일이니 당황했던 것이다. 어떤 날엔 소소한 몇 가지는 잊히거나 저장될 틈이 없기도 하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비가 온 뒤 은행나무 열매는 더 많이 떨어졌고, 바람도 선선함에서 스산함으로 넘어갔다. 이틀 전에 반팔을 입고 정동길을 걷던 사람들이 목도리를 두른 채 걷고 있었다. 나만 목도리가 없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짧은 시간에 8 천보나 걸었다. 지하철로 가는 길에 사진첩을 열어 그날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여전히 활짝 웃고 있는 두 사람. 심지어 쇼핑백을 달랑달랑 들고 찍은 사진도 있다. 터덜터덜 걸으면서 다시 웃음이 났다.
이런 일이 일어났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저 그동안, 물건들과 오래오래 꽤 괜찮았던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이 목도리라, 포장을 뜯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선물이 되려던 것이니 수신인이 달라졌다 생각하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은 다시 걸은 길 위에 다 털어냈다.
지구상의 누군가는, 적어도 두 사람은 올 겨울을 포근하게 나게 될 테니. 몰래 가져갔데도, 모르고 가져갔데도 그러길 바랐다.
내 것인 줄 알았던 한 번도 본 적 없는, 잃어버린 목도리를 찾으러 지나간 그날을 다시 한번, 걸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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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 분실 꼬박 한 달이 지나고, 쇼핑백이 돌아왔다. 교회의 사무실로 누군가 들고 왔단다. 쇼핑백을 받은 분이 내 이름이 적힌 메모를 보고 수소문해 문자를 주셨다. 목도리의 여정이 궁금해 이런저런 상상을 하기도 했지만, 그 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때마침 겨울이 왔고, 목도리도 돌아왔으니 이만하면 잘 된 일이다.
행복한 하루였고, 그 하루를 한 번 더 걸었던 하루였다. 기대와 아쉬움이 뒤범벅이었지만 두 하루가 겹치는 자리에서는 웃고 말았다. 미안하다며 그이가 목도리 값을 내게 보냈는데, 이미 다 써버린 뒤다. 누가 누구에게 선물을 하게 된 것인가. 한 달이 지나도 잃어버린 물건이 돌아온다는 경험이라니, 아름다운 일이다. 내 물건이 아니었나 했는데, 그이에게 가야 할 선물이 분명했나 보다. 영하로 내려간 오늘 아침 그이는 서랍장 위에 올려둔 새 목도리를 들고 나와 내 앞에 섰다. 사라진 기억을 품은 목도리를 포근하게 잘 둘러주었다. 오래오래 하시오.
해피엔딩, 굿모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