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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Feb 13. 2023

잃어버린 장난감

영화 「토이스토리4」

동화를 들려주지 않는 나이

“To infinity, and beyond!” 호기심에 눌러본 버즈의 목소리는 그대로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목이 메어, 한동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만화 영화를 좋아했다. 주말에 친구 집에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부르고, 온 동네를 모험가 마냥 휘젓고 돌아다니면 금방 초저녁이 되었다. 집에 들어가 저녁을 먹으면, 그 시간 즈음에는 「도라에몽」이나 「스펀지밥」 같은 만화가 뚱뚱한 TV에서 방영되고 있었고, 나는 넋을 놓고 그 세계에 빠져 꿈에까지 그들과 함께했다. 다음날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는 어제의 만화 내용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소재 삼아 다시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동네에 수많은 세계를 입혀, 어떤 어른보다 넓은 세상을 가질 수 있었다.


여러 만화 비디오테이프 중에서도 내가 가장 아끼는 비디오는 아주 오래전부터 보아온, 전래동화 비디오였다.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로 시작하는 공익 광고가 지나고 나면, 어릴 때부터 수없이 봐온 전래동화가 시작된다. 모든 이야기를 외울 정도로 수없이 돌려봤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 비디오를 가장 아꼈던 것은, 이제 아무도 나에게 동화를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빼앗긴 나의 어린 마음

나는 집안의 장남이었다. 네 살 때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나는 ‘오빠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함부로 울어서도 안 됐고, 떼를 써서도 안 됐다. 내 세계의 전부였던 부모님은 이제 나보다 동생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에 몇 번 저항하다 언젠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모든 장녀, 장남들이 겪는 일이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온 세상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동생의 등장과, 집안의 여러 사정 때문에 나는 너무 빨리 커버렸다. 슬퍼서 울어도 아무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남자답게’ 그 슬픔을 목구멍으로 삼켜 넘겨야 했고, 그래야만 부모님은 대견하다며 나를 칭찬해 줬다. 그때부터 강한 척, 시크한 척은 다 하고 다녔지만 나에게는 아직 엄마가 필요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날이면, 나는 몰래 어릴 적에 보던 비디오를 틀었다. 비디오 속의 목소리는 내가 커도, 그때와 같은 목소리로 나를 아이처럼 대해주었다. 그것은 동생에게 빼앗긴 엄마의 대용품이었다. 비디오를 너무 많이 돌려봐 그 음성이 흐려질 때마다 나는 두려웠다. 비디오마저 잃게 되면, 이제 나를 아이로 대해주는 사람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많이 걱정하셨다. 애가 커도 유아적인 장난감, 비디오를 놓지 않으려고 하니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닐까 생각하셨나 보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치료한다고, 장난감과 비디오를 다 버리거나 친척에게 줘버리고는 했다. 열세 살에 부모님이 맞벌이하느라 밤까지 혼자 남겨져 있는 방 안에서, 끝내 숨겨 놨던 전래동화 카세트를 틀어 놓고 잠들었던 그때, 엄마가 들어와 이런 걸 왜 듣고 있냐며 꺼버렸던 그날이 기억난다. 그날로 나는 카세트테이프도, 나를 아이로 대해줬던 마지막 목소리도 모두 잃었다.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는데 혼자가 되어야 했고,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

그때의 일들은 평생, 그리고 아직까지도 내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는 친구들에게 묵직하고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각인되었고, 친구들을 많이 챙겼지만 내가 힘들 때 누구에게 의지하는 버릇은 들이지 못했다. 그런 듬직한 모습에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여자도 있었지만, 나는 연인에게까지 듬직한 모습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만큼은 애처럼 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내 마음속 장난감과, 비디오와, 카세트테이프를 들켜서는 안 됐고, 그런 방어적인 모습으로 사람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러한 상처들은 아직 아물지 않은 채,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아직도 내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모두의 가슴속에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 시절의 자신이 있다. 그 아이는 상처받은 그 모습 그대로, 우리의 마음속에 계속 남아 우리의 상처를 다시 돋우고는 한다.


그런데 이제는 마음속의 어린아이를 다독여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약한 자신의 모습을 자신에게 솔직히 드러내고 끊임없이 다독여주고 위로해줘야 한다. 괜찮다, 괜찮다 하고.


어른이 된 우리가 토이스토리4를 찾는 이유는 그런 위로의 과정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모두, 잃어버린 장난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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