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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u Feb 08. 2023

철학 2

나는 돌잡이 때 연필을 쥐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한글을 빨리 뗀다든지, 구구단을 빨리 외웠다든지 하는 천재성을 보인 적은 없지만 왜인지 내가 일곱 살쯤 가진 첫 번째 꿈은 과학자였다. 나는 과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혀의 위치에 따라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을 다르게 느낀다고 가르칠 때 직접 실험해 보고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물방울로 입구가 막힌 유리관에 손을 갖다 대면 온도가 올라가 물방울이 밀려난다고 답을 낸 중간고사 문제에 기존의 유리관 온도가 체온보다 높다면 오히려 수축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여 과학 선생님과 말싸움을 했던 기억도 있다. 나는 일단 무언가를 배우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 습관을 지닌 데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면 아버지는 바로 답을 주지 않고, 지구본이나 백과사전을 들고 와 오랜 시간에 걸쳐 답을 같이 찾아주셨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말에 물어본 건데 몇 시간씩 나를 붙들고 천천히 설명해 주는 게 좀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때 아버지께 인생에서 가장 크게 쓰일 재능을 얻었다. 짧은 한 줄의 명제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 이는 학자의 역량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나 같은 습관을 지닌 학생을 별로 안 좋아했다. 학교에서는 주어진 답을 빨리, 많이 푸는 학생을 선호했다. 미분을 왜 하는지 물어봐도 어른들은 미분의 풀이법만 알려줬다. 나는 그런 학교 공부가 재미없었고, 점점 열등생이 되어갔다. 어느새 나의 꿈도 돈을 많이 버는 기업가가 되어있었다.


그때는 무언가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은 학교, 학원의 지겨운 반복이었고 모든 일과는 아침 여섯 시에 시작해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그런데 그 많은 시간은 대부분 책상에 앉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나갔다. 토씨 하나 바꿔가며 말장난하는 수준의 문제가 기출변형이라며 출제되고, 그런 지겨운 오지선다 문제가 끊임없이 늘어져 눈을 피로하게 했다. 책을 백오십여 권 넘게 읽은 지금까지도, 나는 왜 그때 제한 시간에 맞추어 글에 세모 네모 밑줄을 그어가며 빨리 읽는 연습을 했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읽기 어렵게 써놓은 글이 안 좋은 글이고, 정말 글이 이해 안 된다면 이해될 때까지 다시 읽어보면 된다. 그런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학교, 학원, 국가에서 권장하고 밀려나는 애들을 낙오자로 만들어버리니, 나는 학교가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기보다 그냥 생각 없이 복종하는 법을 강요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생각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그대로 행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문득,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정말 기업가가 되고 싶을까? 나는 신제품 개발과 유통, 회사 경영에 관심이 있을까? 아니었다. 내가 기업가를 선택한 이유는 그냥 돈이었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그 꿈을 포기했다.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혼란스럽고 무섭게 살아가던 도중,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게 되었다.


문과 계열에서도 가장 과학적인 분야여서 그럴까. 철학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아, 나는 생각하는 걸 좋아했었지. 그래 그러면 이 길로 가자.” 아주 간단하고,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 결정을 결코 환영하지 않았다. 학교, 학원 선생님에서부터 친구들까지, 세상 모두가 합세하여 열여덟의 고등학생에게 그러다 굶어 죽는다며 나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 많이 두려웠다. 온 세상이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다. “철학이 좋아서 철학을 공부하겠다.”라는 간단한 명제를 왜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할까. 그 외로움 속에 내 편이 되어준 건 그래도 아버지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이 잘 풀렸다. 나는 철학과로 진학했고, 그곳에는 오지선다 대신 “정부에 대해 비평하시오.” 같은 서술형 중간고사와, 정치적 발언을 꺼리지 않는 교수님과, 정의와 공생에 대해 논하는 학우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고등학교 때의 혼란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끝끝내 올바른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수십 배의 값진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다시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한다.


지금 내 나이가 스물여덟. 딱 10년 전에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많이 두렵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대학원에 진학하면 서른 살 언저리에 돈 한 푼 없는 무능한 어른이 될 텐데, 그 수모와 고난을 나는 견뎌낼 수 있을까. 두렵지만, 그래도 나아가려 한다.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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