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을 위한 누군가 사용 설명서 - 주변인의 역할

공황장애와 공존하는 간호사 이야기

by 김널스


공황장애를 앓는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누군가의 중요한 ‘주변인’이 되었다.


하지만 주변인의 역할은 생각보다 어렵고,
때때로 잔인하다.

도와주고 싶지만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손을 내밀고 싶지만 언제, 어떻게 내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주변인은 묵묵한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고.

깊이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무관심하지 않은 사람.
곁을 맴도는 별처럼,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존재.

물론, 이 말은 쉬운 말이 아니다.
누군가가 아파할 때 그저 지켜보는 일은 의외로 더 고통스럽다.

‘어떻게든 바꿔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의 감정 쓰레기통이 될 수 있다.

그 말이 거칠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은 쉽게 전이된다.
상대가 느끼는 불안, 무기력, 분노,

그 모든 감정들이 주변인을 통과해 묵직한 무게로 가라앉는다.

감정을 컨트롤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보통 사람은 그걸 버티기 어렵다.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어버린다.


또한, 선의를 앞세운 개입은 때로 독이 된다.

누군가가 처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조언, 지금은 받아들일 수 없는 충고,

‘이게 맞아’라고 강요하는 태도는 도움이 아니라 압박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상처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회복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그 다양성을 무시한 조언은

아무리 따뜻한 말이라도 칼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리고, 바뀌지 않는 상대를 보며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 실망은 자신이 쏟은 진심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결국, 지키려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서게 된다.


‘방관자’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깊은 이해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단순한 공감이 아니다.
그 사람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말하지 않은 고통을 눈치채며,
내가 아닌 ‘그 사람의 시선’에서 그를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상처를 동반하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가족이라는 이름의 주변인을 떠올려보자.

내 아이가,
내 형제가,
내 부모가

어느 날,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면.

그리고 그 증상의 시발점이 어쩌면 나의 사소한 말,
나의 행동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껴진다면.

그때, 온전한 정신으로 견디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죄책감은 깊은 구덩이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
‘내 탓일지도 모른다.’
‘그땐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공황장애는 복잡한 원인의 결합이다.
개인의 기질, 성격, 환경, 과거의 경험들…
그 모든 요소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 날 한순간 터져 나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묵묵한 방관자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이 든다.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는 조금씩 자란다.


고통을 견디는 누군가도,
그 곁을 지키는 주변인도.

이해하고, 배려하고, 끝내는 위로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누군가의 ‘방관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해받은 사람이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처럼.


공황장애를 이겨내는 건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하지만 곁을 지키는 일 또한 하나의 전장이 될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이 너무 지치지 않기를.

그리고 필요할 때는 그 사람 곁에 서서
말없이 그늘이 되어주기를.

더위에 지친 누군가가 잠시 기대 쉴 수 있는
한여름의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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