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독립

어쩌다 독립

by 어린왕자친구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도 챙기고 입히고 먹이고 돌보며 지내왔습니다. 동생과는 3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부모님은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저를 다 큰아이로 취급했습니다.

엄마의 사랑이 아직 고프고 부모님의 관심이 아직 필요한 4살이었지만 언제나 ‘네가 언니잖아. 양보해.’ ‘언니가 되가지고 울면 어떡해. 어서 뚝 그쳐!’ ‘왜 이렇게 애처럼 굴지?’ 라며 핀잔을 받았습니다.

사실 저도 눈물이 많고 감정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님 앞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도, 감정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갑니다. 흔히들, 성인이라고 하는 20살이 가까워져 갑니다. 이제는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냥 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나 저보다 말썽을 많이 피우는 동생 덕에 저는 ’의젓한 언니‘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습니다.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원하는 의젓한 모습의 사람이 되어야만 했어요. 사실 물건도 잘 잃어버리고 시간 개념도 그다지 있진 않고 밖에서 칠렐레 팔렐레 뛰어노는 것 좋아하고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에게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힘들다고 이야기 못하고, 그냥 따뜻한 허그가 필요한 날에도 안아달라고 한번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눈치가 빨랐던 저는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나를 예뻐해 줄지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회생활하랴 집에 돌아오면 육아하랴 부모님도 상당히 지치셨을 겁니다. 그래서 한 명이라도 부모님의 짐이 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항상. 아마 밥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이유도 편식을 많이 하는 동생과 비교돼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흔히들 부리는 ‘투정’한번 제대로 부린 적 없이 고등학생이 됩니다. 언제나 의젓하다고 생각하는 저를 향한 부모님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집에서는 내가 정말 나로 행동할 수가 없어서 중학교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합니다. 중학교 공부도 근데 한 문제만 틀려도 한 문제 틀려가지고 왔냐고 핀잔을 받았습니다. 이 또한 상처로 고스란히 남아있지만 나름의 삶의 방법을 또 터득합니다. 하여간 그래서 고등학교는 공부 좀 한다는 기숙사 학교를 가게 됩니다. 거기서 룸메이트들, 그리고 선생님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갑니다.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룸메이트들은 언제나 저를 귀여워해주고 보살펴주었습니다. 누군가 그렇게 보살펴주고 귀여워해주는 것이 필요했던 저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성장해 갑니다. 선생님들은 저를 보며 꼭 저와 같은 딸을 낳고 싶다고 말씀하실 만큼 밖에서 사람들이 보기에 꽤 괜찮은 아이로 자랐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도 무사히 잘 마치고 인간관계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무난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보였습니다. 이제 대학생이 되고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생깁니다. 어렸을 때의 결핍으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 사랑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남자친구와 조금만 깊은 관계가 되려고 하면 그 관계를 먼저 끝내버렸습니다. 왜 자꾸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두려워지고 깊은 관계가 되려고 하면 무서울까 생각을 해보니, 나름대로 깊은 관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서 또 멈칫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그대로 하는 부모가 될까 봐… 그 두려움들은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제 내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결핍으로 인해 진짜 어른이 된 지금 그 결핍들과 마주하는 순간들이 오고 말았습니다. 결핍에 대한 부분들을 알고 결혼을 하는 것과 모르고 결혼을 하는 것은 천지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이란 이제 진짜 둘만의 생활과 삶의 연속일 텐데 분명 서로의 결핍들이 다시 한번 나타나 방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어린 시절의 결핍들이 대물림 될까 봐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부모님과는 거리를 좀 두고 저를 보살펴가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면 아프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다들 나름대로의 상처와 말로 할 수 없었던 기억들, 은근히 성인이 된 지금 나를 찌르고 있는 아픔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 이 부분이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속에 있는 어린아이를 찾아 안아주고 싶었고 안아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받았던 상처들도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받아들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가 발견한 상처받은 나

-부모님의 사랑이 고프다

-부모님께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다

-아직 아이였던 나를 안아주셨으면 좋겠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밖에서 상처받고 돌아와 충분히 울 수 있는 안식처가 있으면 좋겠다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의젓하지 않은 내 모습도 받아주면 좋겠다

-동생에게 항상 양보하지 않아도 사랑해 주면 좋겠다

-이기적인 모습을 품어주셨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 주셨으면 좋겠다

-‘미안해’라는 말이 듣고 싶다

-‘네가 어떤 행동을 하든 사랑해, 언제나 내 딸이야’라는 말이 듣고 싶다

-‘힘들 때 언제든지 기대. 항상 네 옆에 있어’라는 말이 듣고 싶다

-부모님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딸인지 알고 싶다


이런 것을 안다는 것, 그리고 하나씩 적어 내려 간다는 것은 꽤나 아픈 기억들을 끄집어내고 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업입니다.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극복하고자 하는 힘이 있고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훨씬 큽니다. 아프지만 정리해 나가며 더 성장하고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에게 응원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K-장녀로 오랜 시간 가족을 위해 애쓰고 살았습니다. 때로는 그 무게가 버거워 눈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지만, 지금은 독립을 통해 비로소 나 자신을 마주하며 치유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아픔을 꺼내어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를 돌보는 시간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위로가 됩니다. 저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삶을 살 자격이 있다는 것을요. 혼자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 길 위에는 같은 상처를 가진 동료들이 있고 우리는 서로의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나 자신을 아끼는 삶으로 나아가봐요. 언젠가 지금의 시간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 될 테니까요.


생각해 보면 좋은 질문

1. 내가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2. 그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왜 그랬을까?

3.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얼마나 갖고 있나?

4. 가족의 기대와 나의 행복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살아왔다고 생각하는가?

5.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나 자신에게 고마운 점은 무엇일까?

6. 내가 나답게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7.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8. 내가 가진 상처는 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가?

9.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10. 5년 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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