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늦게 찾아온 사춘기

어쩌다 독립

by 어린왕자친구

보통 사춘기라 함은 흔히들 ‘중2병’이라고 부르는 그 시기를 의미한다. 요즘은 초등학교 5~6학년으로 더 빠르게 사춘기가 온다고 하지만 중2라는 시기에 가장 많이 찾아오기도 하고 자신들도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르는 행동들과 감정들로 복잡해지는 시기이다. 다들 어떤 사춘기를 보냈나요?


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 다 모두 엄하시고 특히 동생이 부모님의 속을 많이 썩이는 행동들을 해와서 나라도 피해를 주지 말자는 생각아래 내 학창 시절 사춘기는 그냥 물 흐르듯 지나왔다.

동생은 그냥 태어남과 동시에 매 순간이 사춘기였다. 그에 반해 나는 부모님 말씀에도 곧잘 순종하고 딱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심기를 건드려서 싸우면 내가 좋을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이미 너무 어릴 때 깨달아버렸다. 부모님과 같이 사는 내내 그냥 눈치 잘 봐서 그 속에서 살아남자고 생각했다. 사실 경제권도 없고 혼자 살 수 있는 무언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서 내가 지금 반항을 했다가는 집에서 영영 쫓겨나 있을 곳이 없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항을 하지 못했었다. 속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르지만 다 참았고 20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억압되어 왔던 나의 자아들을 분출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그럴 것을 알았는지 부모님은 아니나 다를까 20살이 되자마자 또 통금지옥에 갇히고 술을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 내가 하려는 일탈들 전부 제지당했다. 못하게 하면 할수록 나는 더 해보고 싶었다. 담배도 피워보고 싶고 새벽에 집을 들어가거나 첫차를 타고 집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20살 역시 모아둔 돈도 가진 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알바를 열심히 했다. 300만 원만 모으면 집을 나가려고 진짜 열심히 학교생활도 하고 알바도 하며 보냈다. 그리고 기숙사에 살겠다고 이야기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셔보고 친구들과 밤새서 노래방에도 있어보고 그랬다. 그렇게 21살, 남자친구도 못 만나게 했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이제 더 이상 듣고 살 수가 없었다. 친구들 모두 연애하고 나 좋다는 사람도 여럿 있는데 더 이상 연애를 안 하고 살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참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연애를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과 동시에 결혼은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근데 연애를 해서 어떤 남자가 괜찮은지 만나봐야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어 일단 무시하고 연애를 시작했다. 나 좋다면 닥치는 대로 다 만났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지만 나의 행동에서 티가 났었나 보다. 그래서 사실대로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니 부모님은 그 사람과 헤어지고 자기가 소개해주는 사람을 만나보라고 했다. 진짜 너무너무너무 싫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 있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하니 만나는 족족 ‘얘는 생긴 게 뭐가 어떻고 저째서 싫고 쟤는 뭐 이래서 싫고’ 싫은 이유만 수도 없이 내놓고 전혀 연애를 응원해주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응원받는 연애, 대학 시절 즐길 수 있는 그런 예쁜 연애를 하고 싶었다. 데이트 간다고 하면 부모님이 용돈도 조금 더 쥐어주고 맛있는 거 같이 사 먹으라고 하고 그런 부모님을 꿈꿨다. 데이트 후에는 부모님에게 오늘 데이트는 무엇을 했는지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이야기하는 족족 잔소리만 들을 것이 뻔했다.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이후

부모님에게 숨기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남자친구(지금까지 내가 몇 명의 남자를 만나왔는지 전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돈을 얼마나 모았는지(어떤 알바를 얼마나 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학교 생활이 어떤지(학교에서 내가 어떤 아이인지 절대 모른다)

-출석하고 튀다가 걸린 것(교수님께 어떻게 걸리고 어떻게 혼났는지 전혀 모른다)

-첫 경험(이건 들키면 최소 사망이다. 나를 죽이러 찾아올 것이다)

-외박(이것도 들키면 최소 사망이다. 아예 집이 아닌 곳에서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여행(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잘 수가 없기에 당일치기만 가능한데 대학생 때면 친구들과 여행 가서 2박 3일 놀다 오는 것이 또 그때만의 로망 아닌가. 이것도 들키면 최소사망이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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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게 숨기는 것이 많아지니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숨기는 게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나의 뒤늦은 사춘기도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일단 방에 들어오는 것이 싫었으며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쾌했다. 같은 집에 살지만 따로 살고 싶었고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너무 무관심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처음 본 부모님은 나를 미치광이 취급했다. ‘쟤가 어디서 뭘 잘못 먹어가지고 요즘 저래? 너는 우리를 부모로 생각하긴 하니? 너한테 가족은 뭐야?’등등의 말을 퍼부었다.

실제로 그 질문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기는 했다. 근데 나 역시 부모님에게 똑같이 질문하고 싶었다.

부모에게 자녀란 어떤 존재인가요?

부모님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자녀에게 갖고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 있나요?

그 모습에 부합하지 못했을 때 기분은 어떤가요?

자녀의 사춘기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금까지 자녀와 얼마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나요?

자녀의 상황과 마음을 얼마나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나요?

라고 물어보고 싶다.


부모님과의 싸움에 있어서는 회피의 성향을 갖고 있던 나는 속은 끓어오르지만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내 안에 분노는 점점 커져만 갔고 부모님 또한 내가 이야기를 안 하니 나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보통 사춘기에는 부모님들이 많이 참아주고 이해해 주며 자녀의 모습 그대로를 품어준다. 나도 누군가 나를 그렇게 품어주길,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이대로 이렇게 하찮고 이기적인 모습을 품어주길 바랐고 기대했다. 부모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한참을 못 미쳤고 미치광이 취급을 하며 ‘대학가 더니 몰래 술 몇 번 먹더니 술고래가 다 돼서 이제 저렇게 알코올중독자처럼 행동한다’고까지 이야기하며 나의 마음에 깊고도 깊은 상처를 냈다. 굳이 저렇게까지 말을 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었다. 가끔은 부모지만 없어졌으면 한다. 내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다 막는 기분이다. 내 모습 그대로를 받아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있기는 할까 싶은 순간이었다. 부모도 날 이렇게 생각하는데 과연 그 누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지 궁금했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사랑했다.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 나조차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생은 동생이라고 우리 집 막내 귀염둥이라며 언제나 귀여워하고 품어주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사춘기에 제멋대로 하는 아이였지만 동생은 아무리 이기적이고 부모님을 힘들게 해도 더 사랑을 부어줬다. 나에게 준 사랑도 있겠지만 내 마음까지 와닿지 않는 사랑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의 방식은 자녀들마다 다를 테지만 자녀에게 닿을 수 있도록 사랑해 주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모가 된다면 각 자녀마다 어떨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는지 아는 것이 너무 중요한 것 같다. 우리 부모님 덕분에 나는 부모가 된다면 자녀들에게 꼭 물어볼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대처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의 독립까지 와버렸는데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와 같은 연락이 4개월 이상이 된 지금 단 한 번도 없다. 할머니는 부모님께 내가 먼저 가서 그냥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리라는데 나는 뭐가 죄송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죄송한 것이 있어야 죄송하다고 말을 하는데 대체 어떤 부분에서 내가 죄송하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부모님의 사과 한마디면 또 바보 같이 마음이 풀어질 것이다. 그래도 부모님이니까. 자신들의 방법으로 사랑을 주었다고 하는데 내가 못 받은 거지 그분들이 사랑을 안 준 것은 아니기에 충분히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 다만 ‘미안해.’라는 말 한마디 안 해준 채로 내가 그냥 죄송하다고 말하는 거? 이번 일은 있을 수 없다. 잘못을 알아야 진심으로 사과를 하지… 잘못도 모르겠는데 사과를 하라니 말도 안 된다.


부모의 입장이 아직 안되어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부모가 된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겠다.


사춘기는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 찾아오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 누구는 일찍, 누구는 조금 늦게.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지금 사춘기라는 것을 인지하면 조금 낫다. 그리고 사춘기에는 주변에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되 기본적인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 많이 삐뚤어지지 않는다. 만약 주변에 지금 사춘기를 겪는 사람이 있다면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으면 한다. 사춘기인 사람도 많이 힘들 테지만 그런 경험들로 하여금 또 한 번의 성장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건강한 어른이 된다는 것,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사춘기를 이미 지나온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나의 사춘기를 되돌아보고 그동안 고생했을 분들께 큰 허그를 선사하길 바란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사춘기를 잘 보내오고 있는 나 자신을 가장 크게 안아주길 바란다. 매일 아침 내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제일 사랑해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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