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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똥 May 27. 2021

올빼미가 새벽 기상을 한다고?

세상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어날 시간을 알리는 '듣기 싫은 알람'이 울린다.

평소 기상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맞춰 놓은 알람 소리가 영 반갑지 않은 새벽이다. 비가 내리고 있는지 방안이 더욱 어두컴컴하다.

'회사 출근까지는 두 시간이나 더 잘 수 있는데 조금 더 잘까?' '새벽 기상? 올빼미족인 내가? 말도 안 돼!, 그건 남들 이야기야.'

 나는 유독 새벽이면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야 할지, 조금 더 자야 할지 머릿속은 온통 극복과 좌절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에잇! 별거 있어. 10분만 더 자자!'

몇 번이나 반복하여 울리는 귀찮은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는다.


창밖에 밝은 빛이 스치는 걸 느끼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출근시간 30분 전! 전쟁이다 전쟁!

곁에서 큰 소리로 코 골며 자는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지각이다!"

남편은 지각이란 말에 깜짝 놀라 헐레벌떡 일어난다. 남편이 놀란 이유는 지각 10분당 벌금이 만원이다. 얼마 전에는 30분이나 지각하여 3만 원을 낸 적도 있었다. 힘들게 출근했는데 하루 몇만 원이나 내고 일하는 심정은 꽤 참담하다.


남편은 지각으로 벌금을 충실하게 납부한단 이유로 선배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어김없이 출근시간을 놓쳐 급히 출근하는 남편을 향해 직장 선배들은 야 골리듯 한 마디 거든다.

"역시! 후배 덕분에 오늘도 맛있는 라면 먹는다! 간식 창고가 풍성해."

남편 회사는 지각 벌금을 모아서 간식을 샀다. 남편은 간식 창고를 빵빵하게 채워주는데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니 선배들은 매일 지각하는 남편이 예쁠 수밖에... 안타까운 현실이다.


"벌금을 내고 나면 온종일 일해도 봉사하고 오는 느낌이야. 이제부터 내 사전에 지각이란 없다."

남편은 종종 저녁마다 한결같은 다짐을 했다. 재밌는 건 저녁에는 다짐하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제발 좀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라고 흔들고 깨워도 단단한 목석이 따로 없는데 말이다.

"그러게 일찍 좀 자라니까. 어차피 벌금 내가 내는 거 아니니까. 알아서 해!"


남편은 지각대장! 나는 육상선수! 부부는 천생연분.

남편은 지각을 밥 먹듯이 한다면, 나는 아침마다 육상선수처럼 집에서 나오자마자 회사까지 엉덩이에 불나듯 뛴다. 회사 출근이 8시 30분인데, 지문 체크를 제시간에 하지 않으면 1분만 늦어도 9시 출근이 돼버린다. 지각 체크가 되는 날엔 퇴근이 30분이나 연장된다. 그러니 달리기 선수가 될 수밖에.

 내가 육상선수인걸 입증하는 부분은 정확히 30분에 지문 찍는 날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남들이 5분 동안 걸어갈 거리를 단 2분이면 가능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어김없이 100미터 달리기 시합을 했다. 출발선에서 준비 자세를 취하고, 탕! 소리가 울리면 동시에 출발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시작을 알리는 탕! 소리가 싫어서 매번 출발 지점에서 발을 헛디뎌 겨우 3등을 유지했던 소녀였다. 그랬던 내가 탕 소리고 뭐고, 무작정 달린다. 분명 이 정도 실력이라면 100미터 달리기 1등 감이다.


"어? 이건 분명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인데..."

점심 식사를 마치고 회사 근처에서 한가로운 산책을 하는데, 어디서 본 듯한 낯선 물건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 아파트 출입카드였다. 번개 같은 달리기 실력은 가방 안에 있던 개인 물품까지 땅바닥에 버려가며 고군분투했다는 사실이다. 회사 동료들은 아파트 출입카드를 주운 내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웃음을 지었다.


'평소보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난다면,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벌금도 안 낼 텐데...'

늘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 새벽 기상이었다. 저녁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아이들 밥 먹이고 재우고 나서야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가 끝나는 시간은 저녁 10시쯤. 씻고 마무리를 하면 11시가 가까워진다. 모든 걸 끝내고 침대에 들어가면 인터넷 삼매경이다. 새벽시간이 가까울수록 내 눈은 마치 아이 눈같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늦게 잠든 이유로 아침이면 아이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피곤에 절어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애써 찍어 바른 피부 화장은 들뜨기 일쑤, 썩은 동태눈을 뜨고 업무를 하고 있었다.

"어제 잠 못 잤어? 얼굴이 말이 아니네."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은 말을 했다.


사과처럼 단단한 결심이 필요한 때다. 더 이상 썩은 동태눈으로 살 수는 없다.'남들처럼 새벽 4시 30분은 아닐지라도 5시 30분이라도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보자!'

왠 걸!

첫날부터 못할 짓이다 못할 짓! 망할 놈의 잠이란 녀석이 온몸을 부여잡고 도저히 침대에서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습관이란 무섭다. 평소 일어나던 시간에서 조금 더 일찍 일어나려 하니 마음속 악마는 "더 자도 돼, 뭣하러 일찍 일어나?'라며 귓속말을 했다. 아무리 귀를 틀어막아도 소용없었다. 하는 수없이 저녁에 조금 더 일찍 잠을 자보기로 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자던 습관에서 저녁 11시에 잠을 잔 것이다. 어? 5시 30분 알람 소리에 맞춰 눈이 떠진다. 알람을 끄고 침대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베란다 커튼까지 걷어내고 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새벽 기상이었다.


아침 기상을 성공한 날이면, 조용한 음악과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한다. 온 세상이 고요한 이 시간, 내 마음도 잔잔한 파도처럼 편안했다. 혀끝에 닿는 차 한 잔을 입에 머금고 온 마음을 다해 자신에게 집중해본다. 명상, 이것이 말로만 듣던 명상이었다. 다른 잡념 없이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


언젠가부터 새벽 옷자락을 억지로 부여잡지 않아도 일어날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올빼미족이 새벽 기상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난생처음 느껴보았던 '고요함과 평온'. 이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새벽마다 차를 마시며 식탁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새벽이란 시간은 내게 선물처럼 우연한 기회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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